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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Apr 26. 2021

빗나간 ‘자기부상열차 2020’ 꿈

보도와 논평 사이

 제때 멈추는 것도 달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빗나간 ‘자기부상열차 2020’ 꿈


 이상과 동떨어진 과학기술 정책과 연구 역량


 By Eun-yong Lee 


 ‘2020년 국내에서 상온 초전도체를 이용한 자기부상열차가 실용화할 것’이라는 한국 과학계의 예측이 크게 빗나갔다.

 17년 전인 2004년 과학기술 전문가 5414명이 참여한 ‘제3차 과학기술예측조사’에서 757명 ━ 1차 응답 354명, 2차 203명 ━ 이 짚은 상온 초전도체 이용 자기부상열차 실현의 해인 2020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쓰이기는커녕 초전도 기초기술 개발조차 아득히 멀다. 2차 응답자 203명 가운데 64명은 관련 분야 전공자로서 “연구 경험이 있거나 기술 개발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혀 당시 예측 신뢰도를 높였지만, 상온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는 백일몽이 됐다.

 지난 17년 동안 이어진 한국 과학계의 초전도체 이용 자기부상열차 정책 기획·지원 체계와 연구개발 역량이 ‘2020년 실용화’에 닿지 못한 것. 특히 제3차 과기예측조사는 정부가 직접 한 데다 2030년까지 펼칠 미래 국가유망기술개발종합계획과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의 바탕으로 ‘처음 활용한’ 터라 이상에 동떨어진 한국 과학계의 17년 발자취를 방증했다.

 “상온 초전도체요? 개발되면 노벨상감이겠죠.”

 이창영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하이퍼튜브연구팀장이 상온 초전도체를 이용한 자기부상열차 실현 여부를 두고 한 말이다. 노벨 과학상 정도는 따 놓은 당상이 될 만큼 상온 초전도체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그걸 이용하는 건 그야말로 꿈의 기술이라는 뜻. 한국 과학계가 고온 초전도체에 눈길을 뒀던 2004년에는 16년쯤 뒤 상온 초전도체를 찾거나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 듯하나 실제로는 달랐다.

 초전도체는 섭씨 영하 240도 근처인 임계온도 아래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물질. 세계 과학계가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이른바 ‘고온 초전도체’를 찾고는 있지만 2016년까지 섭씨 영하 143도에 접근했을 뿐이다. 고온 초전도체는 저온 초전도체와 달리 원자 구조가 복잡해 과학계가 아직 원리를 다 밝히지 못했다. 보통 영상 15도쯤인 자연 그대로의 온도(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게 가능할지를 장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창영 팀장이 상온 초전도체 이용 자기부상열차 실현 시기를 두고 “(옛 과학자들이) 되게 긍정적으로 예측하신 것 같다”고 짚고 “개발되면 노벨상감”이라고 본 까닭이다.

 이는 곧 노벨상과 한국 과학계 현실 사이 격차이기도 했다. 2019년까지 한국 과학계가 상온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재료를 개발할 것이라는 17년 전 예측 또한 크게 빗나갔다.  

                            

▴2004년 제3차 과학기술예측조사의 소재와 생산 분야 94개 과제 가운데 초전도 관련 예측 실현 시기와 전문가 응답 수. 10번과 9번 과제는 예측이 크게 빗나갔고, 언제 이뤄질


 암담한 현실


 지난 32년 동안 다진 상전도 흡인식 자기부상열차 개발 경험과 시험 설비들로 한국 과학계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이제라도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인가.

 “자기부상열차에 초전도를 쓰려면 먼저 달려야만 합니다. 기술 자체가 적어도 시속 100km를 넘어야만 (열차가) 부상하거든요.”

 이창영 철도기술연 하이퍼튜브팀장의 말.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개발에 필요한 설비 바탕을 짚었다. 열차를 궤도 위에 띄운 뒤 달리는 게 아니라 시속 100km를 넘겨 달리면서 부상해 초고속으로 나아간다는 것. 한데 철도기술연이 2011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160억 원을 들여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할 때 만든 충북 오송 시험 노선은 120m에 지나지 않았다.

 이 팀장은 “(그때 예산으로는 초전도 반발식으로) 달리는 트랙을 만들 수 없었고,  기껏해야 시속 30 ~ 40km쯤을 낼 만한 설비여서 거기서 쓸 수 있는, 달리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부상시킬 수 있는 상전도 자석 흡인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곧 한국 과학계 자기부상열차가 상전도 흡인식에 발이 묶인 까닭이다. 지금 연구개발 동력을 초전도 반발식으로 바꾸기도 어렵다.

 인천국제공항 자기부상열차 시범 노선을 만든 신병천 박사는 “한다면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해야 하는데, 기술을 개발해 (시속 550km 이상으로) 성능을 테스트하려면 시험선 구간이 최소 20km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비용이 조 단위로 들어간다”며 “이미 KTX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위한 노선을) 깔 데도 없고, 그게 결국 매몰비용이 될 것 같으니까 (정부가) 투자를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따라서 “지금 상태는 (반발식 연구를 새로 시작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신 박사는 덧붙였다. 그는 다만 철도기술연이 연구하는 “하이퍼루프에는 (초전도) 반발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과 꿈 차이. 철도기술연이 2020년 11월 보도자료로 제공한 하이퍼튜브 실험용 캡슐(왼쪽)과 하이퍼튜브 개념도.

(캡슐이 실제 차량 크기를 17분의 1로 축소한 모델이라지만, 17배로 늘려도 오른쪽 개념도 속 ‘열차’가 아닌 경차 수준일 것으로 추정됐다.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차량 연구를 함께할 수도 없어 캡슐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뒤 ‘가이드 와이어’에 끼워 달리게 했다. 왼쪽 사진에서 캡슐 구멍과 와이어를 확인할 수 있다. ) 


 철도기술연은 2009년 1월부터 ‘초고속 튜브 철도 핵심 기술 연구’로 이른바 ‘에이치티엑스(HTX)’를 연구해 왔고, 2018년 5월 내경 2.64m에 길이가 각각 6m와 4m인 원통형 진공 챔버 두 개를 이어 붙인 하이퍼루프(hyperloop) 실험실을 만들기도 했다. 10m짜리 진공 튜브다. 한데 튜브 안에 자기부상 차량이 없다. 차량이 들어 있더라도 10m로는 달려 볼 엄두를 낼 수 없다.

 이창영 팀장은 “챔버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여러 개로 쪼개어 만들 수밖에 없는 튜브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고 진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 이음매 재질 연구를 목적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본 것”이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특히 “(지금은 튜브가) 짧아서 안에 차량이 없습니다. 차량 안에도 많은 장치가 들어가는데 이게 튜브 안 진공 환경에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의 연구도 앞으로 필요”하고 “차량은 초전도 반발식으로 추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앞으로 연구가 얼마큼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추정 연구비만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국책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시작조차 못했다. 철도기술연이 2018년 8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3억8000만 원을 들여 예비타당성 ‘사전’ 기획 연구를 했을 뿐이다. 최근까지 큰 변화 없이 기초 연구만 해 왔다.

 하이퍼튜브를 대형 국책 과제로 삼아 개발을 시작하더라도 한국에 걸맞은 교통 체계일지는 의문이다. 이관섭 철도기술연구원 신교통혁신연구소장은 KTX 건설비의 절반쯤으로 봤지만, 산과 강과 도시가 많은 한국에서 튜브를 땅 위에 연결하는 것만으로 큰돈이 들 테고 땅속에 묻더라도 예산이 얼마나 들지 정확히 짚기 어렵다.

특히 진공 튜브에서 시속 1200km로 달리는 열차 안 승객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굽은 길에선 전투기에 버금갈 가속도 때문에 큰 압박을 느낄 수 있어 문제다.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 사이를 되도록 직선 튜브로 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계는 아직 직선으로 달리던 물체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편안히’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얻지 못했다.

 이관섭 소장은 이를 두고 “(서울과 부산 사이) 하이퍼튜브 (설계) 곡선 반경이 40km로 거의 직선”이고 “서울 부산 간 (튜브) 320km 중에서 터널이 40%로 (직선 주로를 확보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굽은 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하이퍼튜브가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은 여전히 많다. 


 나침반도 잃어

   

 한국 과학계는 그동안 흡인식과 반발식으로 나뉜 자기부상열차 연구 갈림길에 선 채 나침반을 잃어 나아갈 바를 짚지 못했다. 연구를 시작한 1989년부터 32년 동안 ‘초전도 전자석 없이’ 달려왔을 뿐이다. 초전도 반발식이어야 실현할 수 있을 영화 <백 투 더 퓨처> 속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나 시속 1200km짜리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향한 길에 서지 않은 것. 한국 시민이 오래전부터 상상하고 기대한 자기부상열차와 동떨어졌다.

 정부도 마찬가지. ‘최근’ 진행하는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실용화 사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기자의 관련 정보 공개 신청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사이를 오간 끝에 “정보부존재”라는 답변만 나왔다. “진행 중인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 실용화 사업이 없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2021년까지 큰 변화 없이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국토교통부 자기부상열차 사업 관련 공개 정보. 

(국토교통부 자기부상열차 사업 관련 공개 정보. 정보 공개 신청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순으로 넘겨졌다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에서 국토교통부로 되돌려진 끝에 나온 “정보부존재” 답변이다.)


 한국 시민 12만여 명은 1993년 8월 대전엑스포 때 560m짜리 편도 궤도에서 상전도 흡인식 자기부상열차를 처음 보거나 타 봤다. 그때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이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었다. 신병천 박사는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 사업에서 “오명 장관 역할이 컸다”며 “엑스포 때 자기부상열차를 데모하는 데 큰 영향이 있었고, (그가) 과학기술 부총리가 되면서 대형 국책 과제들을 좀 더 실용화 사업을 해서 국외에 나가자는 취지에서 (지원)했는데 그게 자기부상열차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던 것”이라고 짚었다.

 오명 전 장관은 그러나 과기부에 재임한 2004년 제3차 과기예측조사에서 자기부상열차를 비롯한 주요 과제의 실현 시기가 많이 빗나갔다는 지적에 “하도 오래된 얘기여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과기예측조사 같은) 장기적인 플랜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플랜 하고 시정해 가며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좋지 않을까” 하되 “요즘엔 (내가) 실무를 떠났기 때문에 이전 일을 두고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멜링 오네스가 발견한 수은의 초전도 현상은 2021년까지 110년 동안 세계 과학계 눈길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꿈도 함께 품었다. 쇠붙이를 공중에 띄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와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따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람이 탈 열차와 스케이트보드는커녕 아주 작은 ‘상온’ 초전도체 한 조각조차 110년째 개발되지 않았다. 임계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온 초전도체’ 연구가 궤도에 오른 1986년부터 헤아려도 35년 동안 애썼지만 아직 ‘상온’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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