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와 부산 사이

하여 나는 제주

by 글 짓는 은용이

“예쁘죠.”

내 오른쪽 귀와 뒤통수 사이에서 들려온 목소리. 승무원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눈웃음으로. 아름다운 곳 바라보며 좋은 느낌 품을 줄 아는 이였다.

“네, 참 예쁘네요.”

창밖 아래 그저 ‘새파랗다’ 할 수 없을 ━ 입술 달싹거렸되 뭐라 일컫지 못할 ━ 바다색과 하얀 실낱 같은 바닷가와 검푸른 똬리 오름이 듬성듬성 멈춘 듯 흐르는 모습에 빠져 굳은 내 숨과 몸을 풀었다.

“저도 여기 지날 때마다 내려다보는데 정말 아름다워요.”

“몇 번 가 보긴 했는데 이렇게 보는 건 처음입니다. 아름답네요.”

제주였다. 2001년 팔월 18일 토요일 오후. 아름다운 섬 북서쪽으로 날아들어 북쪽 지나 북동쪽으로 흘러갈 때까지. 나는 눈 떼지 못했다. 그곳에. 화장실 다녀오다 만난 작은 창 아래 북쪽 제주에 붙들려 붙박였다. 눈길과 몸과 숨과 마음 온통.


그해 그달 13일 베이징에 간 나는 지갑을 잃었다. 정보통신기술(IT)에 관심 많아진 중국을 취재하러 간 첫날 저녁. 약속에 늦을까 봐 호텔에 짐 던져두고 부랴부랴 나갔다가 흘린 듯 ━ 누군가 빼내어 간 듯 ━ 지갑이 사라진 걸 알았다.

살며 처음 당한 일. 한국에서든 바다 건너든 지갑 사라진 적 없었는데. 나는 화난 나머지 그걸 ‘베이징 첫인상’으로 품었다. 짜증 나 ‘중국 첫인상’으로 뛰어넘기기도 했고.

액땜으로 삼고 싶었지만 취재는 자꾸 뭘 써야 할지 모를 곳으로 흘렀다. 이틀 뒤 상하이로 갔지만 흐름은 매한가지. 마음 달뜨고 몸 허둥지둥. 끝내 서울에서 해 둔 취재 약속 몇 개마저 어그러져 나는 호텔에 널브러졌다. ‘큰일이네. 어떻게 쓰지. 뭘 쓸 수나 있을까.’

걱정 끝에 서울 갈 비행기를 앞당길 생각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웬걸, 앞당길 수 있기는커녕 예약해 둔 자리마저 사라진 게 아닌가. 성수기라, 특히 한국 가는 중국 사람이 많아서 사흘 전에 자리를 확정해 뒀어야 한다나. ‘뭐래니, 지금. 지갑 잃고 내내 허둥지둥했는데 끝이 꼭 이래야만 하는 거니.’

서둘러 탑승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 달라 했지만 이미 차례가 까마득. 공항에 나가 감나무 아래 누워 입 벌린 꼴로 하염없을 내 모습이 퍼뜩했다. 음. 자리를 새로 잡아 꽉 붙드는 건 사흘 뒤 뜰 비행기에나 할 수 있다나.

취재 일정에 맞춰 항공권과 숙박 예약을 한꺼번에 맡아 해 준 곳에 나는 투덜거렸다.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며.


“자리 하나 겨우 구했습니다. 그런데 김포가 아니고, 김해로 들어오시는 겁니다.”

투덜댄 뒤 한 시간쯤 지나 생긴 자리. 김해공항으로. 김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김포공항에 닿기로 했다. 달리 고를 게 없는 서울 가는 오직 한 길. 나는 “네? 김해로요?”라며 말 높이를 오른쪽 끝 위로 끌어올려 보긴 했되 마음은 벌써 ‘길 트여 그나마 잘됐네’로 가라앉았다. “고맙습니다”로 매조졌고. 하하 웃으며.

둥실. 그 길 바다에 제주가 떴다. 고오··· 비행기 배안 소리와 함께. “예쁘죠”와 더불어.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게. 내 나머지 삶 내내 제주에 붙들려 붙박일 듯한 느낌. 둥둥. 마음이 자꾸 들떠 제주 바라는 모습. 힘들 때 제주 그리며 풀고, 서러울 때 제주에 닿아 숨 돌렸다.

웃을 때에도. 제주 말하며 웃었다. 하품할 때에도. 제주 떠올라 질금했다. 태풍 올 때에도. 제주 가려고 날았다.

2014 08 09 항공우주박물관 마당.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