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반짝

하여 나는 제주

by 글 짓는 은용이

“그때 거기 어디였지? 오징어 산 데.”

“오징어?”

“응. 반건조 오징어 샀잖아. 작은 포구에서. 거기 참 예뻤는데.”

맞다 맞아. 샀지. 아름다운 포구에서 말랑말랑한 오징어를. “제주에도 오징어가 있네!”라고 무식 뽐내며 사서는 “맛있다”고 헤벌쭉 웃었다. 그게 한치인지 오징어였는지도 모른 채.

Y와 Y를 짝으로 둔 이도 거기 함께 있었다. 1997년 팔월 19일 화요일. 화순에서 제주 남서와 북서쪽 바닷가를 돌아 공항에 갈 때. 배 부른 항아리처럼 굽어서는 오름에 폭 안긴 포구. 눈 돌리면 검푸른 바다와 검붉은 조각 섬 서넛.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보기 좋아 눈에 담고 먹기 좋아 입에 넣었을 뿐. ‘언젠가 꼭 여기 다시 오자’고 짝과 마음 맞추지도 않았고.

한데 갑자기 생각났다. 2003년 팔월 22일 화요일부터 해마다 제주에 안기기 시작해 칠팔 년쯤 지났을 때. 꾸준히 여름 제주를 찾아가 웃었는데 ‘왠지 뭔가 못내’ 찜찜했고, 그게 ‘반건조 오징어 샀던 예쁜 포구’를 다시 보지 못했기 때문인 걸 알았다. 그 무렵까지 칠팔 년쯤 들락였으니 어쩌다 저절로 눈에 띌 만도 한데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 거기 참 예뻤는데··· 근데 거기가 어디지?”

해마다 바닷가로 난 길 ━ 해안도로 ━ 알림판을 만나면 들어가 봤다. 그 포구 없었고. 해마다 지도 펼쳐 두고 몇몇 ‘포구’를 짚어 봤다. 도무지 모르겠고. 나중엔 기어이 “화순과 제주 사이 바닷가가 아닌가 봐. 내가 착각한 모양이네.” “음··· 포구이긴 한 건가?” “혹시 (천구백) 구십칠 년이 아니라 이천 년이었나.” ‘그래, 서쪽이 아니라 벗이 짝 배 안에 있을 때 ━ 2000년 ━ 본 제주 남동쪽 바닷가 어디쯤일지도 몰라. 아니, 그때 동쪽으로 가긴 했나. 이호와 제주 사이인가. 아니, 삼양과 제주 사이일지도 모르겠네.’

뒤죽박죽. 나는 모든 길을 다 잃은 듯했다.


차귀였다. 차귀도 포구. 사람 살지 않는 차귀도엔 포구라고 일컬을 게 따로 없고, 차귀도가 바라다보이는 당산봉 아래에 포구가 있는데 왜 ‘차귀도 포구’라 했을까.

뱀신 ‘차귀’를 기린 집이 당산봉에 있었기 때문. 당산봉을 ‘차귀오름’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여 ‘차귀도 포구’를 그냥 ‘차귀 포구’라 일컫기도 한 듯한데 그곳이 바로 거기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2010년쯤부터 여긴가 싶어 기웃, 저긴가 싶어 기웃기웃했지만 끝내 닿지 못한 것. 2018년 일월 30일 화요일에야 알았다. 그러고 보니 모두 화요일. 사람 없어 더 고요한 포구 주차장 옆 화장실에 간 짝 기다리며 당산봉 쪽 바라보다가 번쩍. ‘여기였구나! 음··· 주차장이 새로 생긴 것 같네.’

1997년 팔월 19일 화요일 모습과 많이 달라진 성싶었다. 선착장에 없던 주차장이 생겼고 ━ 그때에도 주차장이 있긴 했다면 좀 넓어진 듯싶고 ━ 낯선 건물도 두서넛. 더 많은 배. 하여 몰라봤을까. 우습게도 짝과 벗과 나는 2010년께 차귀도 포구에 한 번 닿았다. 한치를 오징어로 알고 샀던 예쁜 포구가 어디였는지 막 궁금해지기 시작했을 무렵에.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예약해 둔 ‘차귀 배낚시’ 시간에 대려 서두른 끝에 포구에 닿았고 차귀도 언저리 바다에서 두 시간 반쯤 머문 뒤 떠나온 것.


“넣자마자 고기가 막 올라오는 거야. 우리 애들이 너무너무 좋아했어. 가족이 즐기기에 딱 좋더라”더니 굳이 “꼭 한번 해 보라”는 말 따라 배낚시하러 차귀에 갔던 짝과 벗과 나는 다시는 낚싯배를 타지 않았다. 낚싯대를 다시 든 적도 없고.

낚싯배에 탄 지 이십여 분 만에 짝과 벗과 내게 낚시가 맞지 않은 걸 알았다.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온 물고기가 파닥파닥하는 모습을 보고 ‘싱싱하겠다’고 느끼지 못했으니까. ‘많이 아프겠다’고 느꼈을 뿐. 특히 미늘. 낚시 끝 안쪽 갈고리. 바늘 문 물고기가 빠지지 않게 일부러 구부린 거스러미. 물고기 입에서 바늘 뺄 때 낚시미늘이 안쪽 살 찢는 걸 봤으니까. 나중에 물고기도 아픔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까지 들었으니 다시 낚싯배를 타거나 낚싯대를 들 까닭이 없다.

하여 몰라봤을까. 그곳이 해마다 궁금해하던 ‘오징어 산 작은 포구’인 걸. 포구와 차귀도 사이에 두 시간 반쯤 둥둥 떠 있었음에도 몰라보고 말았다. 싫으면 눈과 마음에 두 번 담지 않는 일 잦은 짝과 벗과 나. 탐탁지 않은 배낚시 때문에 차귀를 거기 두고 떠나온 채 ‘예뻤던 작은 포구’를 2018년 일월까지 그리워했다.

사람 드물어 고즈넉했던 옛 포구. 그립다. 배 드물어 여기저기 널린 오징어 ━ 사실은 한치였을 것 같아 ━ 돋보였던 옛 차귀. 아쉽다. 바람과 물결 잔잔히 사람 마음 감싼 옛 포구.


짝과 벗과 나는 제주 예쁜 곳에 붙박였다. 진득이. 눈에 넣을 곳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고. 느지막이 일어나 협재 바닷가 뙤약볕 아래 한나절, 어둑한 함덕 방파제 둑에서 서너 시간, 영실과 윗세오름 사이로 하룻날, 마라도 바람 타고 하룻낮. 느릿느릿 움직여 가파도 뙤약볕 아래 한나절, 해 질 녘 성산 일출봉에서 서너 시간, 성판악과 백록담 사이로 하룻날, 우도 바람 타고 하룻낮.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십육년 동안 해마다. 바닷가를 곽지와 금능과 김녕과 함덕과 표선과 삼양으로 바꿔 가며. 마라도에 다시 가고 비양도에도 가 보며. 우도 속 작은 비양도 보고 웃으며. 어둑한 곳을 구엄과 절물과 교래와 서귀포 중산간으로 바꿔 가며. 윗세오름 다시 찾고 새별오름 거듭 오르며.

특히 반짝반짝 반짝반짝. 김녕 아침 바다. 반짝반짝반짝한 1997년 팔월 18일 월요일 아침 김녕 바닷가엔 하얀 햇살 가득했다 할까. 아니, 가득가득가득했다 하자. 세상이 너무 하얘 “눈에 하얀 멍 들었다!”고 소리치는 게 나으려나.

바람에 인 잔물결마다 일일이 치고 튕겨 난 하얀 햇살. 주름살 같은 물결이 얼굴 주름살로 이어졌다. 눈 뜰 수 없어 찡그렸되 웃는 얼굴로.

제주 바다 첫눈 느낌. 잊을 수 없어 짝과 나는 김녕 바닷가에 오래 누워 있으려 애썼다. 이천삼사오륙 년 해마다 벗도 함께. 해 질 녘 조금씩 드러나는 풀등에 기어이 누우려 애썼다. 찰랑찰랑 발목과 마음 핥는 물결 아래 풀등에 가로누웠고, 풀등 다 드러나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짝과 벗과 내가. 까르르까르르 새까맣게 탔지, 뭐.

2008년 팔월 함덕 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