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나는 제주
물 빠진 제주 서쪽 바다를 사랑했다. 특히 협재. 물때 물어 아침에 보고 오후에 몸 담그며.
2004년 팔월 물 빠진 협재 바닷가를 처음 보고 숨 트며 웃은 짝과 벗과 나는 해마다 ‘거기 하늘과 바다와 바닷가 모래가 빚은 빛깔’을 봐야 했다. 늘 그리워했고. 그리웠던 나머지 먹구름 속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서쪽 하늘 바라보며 “저긴 해가 있네. 빨리 협재로 가자!” 했다. 작은 그늘막 하나 쳐 둔 채 뒹굴뒹굴.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바닷가에 누웠다가 하품했다가 비양도 바라봤다가 웃었다가 했다.
협재에서. 볕 쨍 났는데 바람마저 세찬 오후. 바람이 바닷가 저쪽 끝에서 덩치 큰 고무배를 들어 올리더니 이쪽 끝 너머 주차장까지 굴렸다. 햇살 반짝반짝한 아침. 발목까지 오른 물 속 발가락 사이로 솟은 모래알 낱낱을 셀 수 있을 듯했다. 갑작스레 비 쏟아진 오후. 송장헤엄 물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갑자기 비바람 몰아친 아침. 젖을 게 작은 그늘막과 수영복과 머리카락밖에 없어 까르르 웃었다. 볕 쨍 났고 바람 그만그만하지만 태풍 온다는 알림 때문에 바다에 들어갈 수 없던 오후. 장딴지 두드리는 잔물결과 가슴 채운 바람 덕에 마음이 부풀었다. 협재에서.
협재 옆 금능 바닷가에서 비양도 바라보며 웃을 줄도 알게 됐다. 2007년 팔월. 오후 내내 뒹굴다가 “우리, 저기 한번 가 보자”는 뜻 맞아 비양도로 건너갔다. 협재로부터 3킬로미터쯤 된다 하니 배 타고. 마음 같아선 물 빠졌을 때 걸어가다가 헤엄치고 싶었지만 ━ 물살에 밀려 어디로 어찌 흘러갈지 모르니 ━ 한림항에서 작은 배로.
뙤약볕 아래 고즈넉한 비양도 북쪽 둘레에서 아주 작은 게 한 마리를 만났다. 게 다치지 않게 조심히 들어 일곱 살 된 벗 손바닥 위에 올려 줬더니 키드득. 귀에 닿기로는 아마도 “키히”쯤으로. 작은 접시처럼 맞댄 자기 손바닥을 간지럽힌 게가 좋아 키드득키드득.
고려 때 ━ 목종 5년·1002년 ━ 마그마 솟구쳐 생긴 섬. 벗에게 살아 움직이는 게가 손바닥을 간지럽혀 웃을 수 있음을 알게 해 줘 고마웠다. 소중했고.
2007년 팔월엔 밥 사 먹을 데가 하나였다. 한림 오갈 배 닿는 곳 가까이에 메뉴 서너 개. 하여 짝과 벗과 나는 그 집 마당 평상에 앉아 보말죽 하나와 라면 두 개. 한소끔 넘어 기다려서. 2021년 삼월 26일 송일준 피디 발길엔 갈치조림 하는 음식점이 닿았고, 눈길에 펜션과 카페도 띄었다. 그가 듣고 <송일준 PD 제주도 한 달 살기>에 알리기로는 주말에 칠팔백 명, 보통 날에도 이삼백 명이나 비양도를 찾는다니 식당과 펜션과 카페가 넉넉해졌을 만도 할 터.
송일준 피디는 1987년 MBC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찍느라 비양도를 찾았을 때엔 섬 둘레에 길조차 열려 있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가 본 삼십사 년 전 화산섬. 천 년쯤 전 바다 아래에서 솟아오른 섬. 더욱 ‘그대로’ 더 오래 아름답길.
“뭐야, 비양도?”
“그러게, 진짜 ‘비양도’라고 쓰여 있네.”
우도 안 작은 비양도. 2009년 팔월. 우도 동쪽에 붙은 땅인데 왜 섬이라 했을고. 붙어 있으니 그냥 우도일 텐데. 섬 동쪽 끝 등대로 가려면 길로 올라온 바닷물을 찰박찰박 밟아야 했다. 기분 좋게. ‘아, 물 들어왔을 땐 섬이로구나.’
이듬해 여름 우도 안 작은 비양도 동쪽 끝 등대 가는 길은 메말랐다. 물 밀려 나간 때였으니까. 협재 쪽 큰 비양도처럼 뙤약볕 아래 고즈넉. 찰박찰박한 바닷물 없으니 폴짝폴짝 뛰어오른 사진 찍기에 좋았더랬지. 새까맣게 그을리며.
벗이 우도 홍조단괴 서빈백사 바닷가에 처음 간 건 2003년 팔월. 그가 세 살 때. 물놀이하러 간 게 아닌 터라 벗 수영복을 가져가지 못했지만 그는 몸 적셨다. 바다에. 한국에 하나밖에 없다는 홍조단괴 바닷가에서.
벗은 뭐라 일컫기 어려운 물빛에 사로잡혀 도무지 헤어나지 못할 성싶었다. 푹. 짝과 나 또한 물빛과 물빛 하늘과 햇살과 바람이 판 덫에 빠졌다. 삶 내내 사로잡힐 빛 덫.
2009년 팔월 29일과 2010년 팔월 28일엔 바람 많은 섬. 2011년 팔월 26일엔 뙤약볕 아래 0.3제곱킬로미터쯤으로 판판한 곳. 어떤 때엔 비바람 거세 오가지 못할 만큼 동떨어진 섬. 11킬로미터. 모슬포엔 바람 없이 비 조금 비칠 뿐이지만 바다는 달라 배가 나갈 수 없는 날씨라는 얘기에 새삼 멀게 느낀 거리. 눈으로야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인 성싶지만.
마라도였다. 저 멀리 남쪽 바다 위 어렴풋이 고래 등 같은 섬. 때론 뚜렷한 큰 거북 등 같기도 한 곳. 남쪽 끝에 선 채 바람 맞으면 ‘태평양 바람’인 걸 알겠더라. 뙤약볕 아래에선 ‘적도 만큼’ 뜨겁지 않을까 했고.
바람 불어 좋고 뜨거워도 좋았다. 마라도에선. 생각 없이 바람만 마실 수 있어 좋고 널리 알려진 짜장면을 먹지 못해도 좋았다. 여름 막바지 오후 느지막이 막배 타려 하니 사람 적고 섬 중국집 문 닫히게 마련. 그래도 좋은 걸 어쩌나. 마라도에 거듭 갔다. 가려다 못 가 발길 돌린 적 많았고.
가파도. 마라도 갈 때 왼쪽, 모슬포로 나올 때 오른쪽에 나직이 엎드린 섬. 2012년 구월 2일 점심나절. 마라도 찍고 돌아 나온 배에서 벗과 짝과 나만 내렸다. 늦여름마저 다 지난 구월이었으니까. 가을 오려면 먼 듯했고.
그해 팔월 27일 제주 지나 서해로 간 볼라벤. 팔월 29일 제주 지나 완도로 간 덴빈. 남쪽 가파도에 두 태풍 자취 고스란했다. 길 깨지고 나무 쓰러진. 길 끊어지고 돌 어수선한. 뙤약볕 아래 고요한 섬.
북쪽으로 돌아들어 엎어지면 산방산에 닿을 듯하고 좀 아득히로는 한라산. ‘그래, 그렇지. 바라보는 쪽 달리 하면 더 잘 느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