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나는 제주
짝과 벗과 나는 해 질 녘 성산 일출봉에 반했다. 2009년 팔월 26일 수요일 오후. 해넘이에 맞춰 간 건 아니었고 별생각 없이 바닷물 표면으로부터 180미터쯤 되는 높이에 올라섰을 때 해가 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득한 한라산과 오르락내리락한 오름 사이로.
“아···.”
절로 트인 낮고 가벼운 소리. 한숨인 듯 웃음인 듯. 짝과 나는 벙글벙글 웃다 탄성 터뜨렸다 했다. “일출봉엔 해 질 때 와야겠네”라며.
곁 돌아보니 아홉 살 된 벗은 빨간 해와 검은 어스름에 붙들려 꽤 오랫동안 아무 말 없었다. 해 지는 쪽 난간 끌어안은 채. 좀 더 어린 날로부터 해 넘어가는 걸 종종 봤는데 일출봉에 오른 그날엔 두드러지게 조용했다.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을 뿐. “어때?” 하고 묻거나 “예쁘지!” 하고 추임새를 넣지 못했다.
짝과 벗과 나는 해 뜰 녘 성산 일출봉에 간 적 없다. 일러야 점심나절. 흔히는 해 쨍쨍하거나 비 부슬거리는 오후였다. 해 돋는 모습 보기 좋아 제주 제1 구경거리라는 데 왜 굳이 오후에?
일부러 해 뜰 녘을 피했거나 싫어한 건 결코 아니다. 제주에 안겨 쉬는 걸 사랑한 짝과 벗과 나는 아침 일찍 몸 일으켜 뭘 볼 생각이 아주 없었을 뿐. 뭘 봐야 한다기보다 제주에 가 여기저기 눕거나 앉아 숨 좀 쉬면 그만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셋 모두 게으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제주 품에 빨리 안기려고 토요일 아침 여섯 시 오십오 분 비행기를 타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성싶다. (쌓아 둔 항공 마일리지로 구할 수 있는 자리가 그 시간뿐이었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 다만 느긋이 숨 쉬고 움직이며 빨리 웃을 뿐이라 해 두자. 그리 믿고 있다. 가끔, 아주 가끔가끔 “우리 너무 게으른 것 아냐?”라고 서로 묻기도 하지만. 오륙 년 만에 문득 한두 번씩.
해 질 녘 예쁜 곳을 찾아갔다기보다 거기 있다 보니 해가 아름답게 넘어갔다. 금능 바닷가와 바다가 코앞인 금능 마을 작은 벤치에서. 특히 협재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해넘이 예쁜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에 짝과 벗과 내가 눕거나 앉아 있던 거였다. 서 있기도 했고.
곽지 바닷가에서도 해는 아름답게 넘어갔다. 함덕과 김녕도. 제주 동쪽 바닷가에서 웬 해넘이인가 싶겠지만, 숨 깊게 트였다. 예뻐서. 함덕 서쪽 하늘이. 아름다워서. 김녕 서쪽 하늘이.
오후 세 시 넘어서야 협재와 금능과 곽지와 함덕과 김녕 바닷가로 나가 누웠다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모래성 쌓았다가 허물었다가 한 까닭이었다. 해 넘어간 것 보고서야 그늘막 접고 어둑어둑해서야 바닷가를 떠났다. 제주 남쪽 표선에서도.
해 질 녘까지 버티면 늘 보람찼다. 특히 윗세오름으로부터 선작지왓 지나 영실로 내려올 때. 여러 사람 서둘러들 올라왔다 모두 내려간 뒤에야 영실을 바라고 걷는 짝과 벗과 내 뒤로 한라산 사는 노루가 따라왔다. 댓 발짝 떨어진 곳에 붙박여서는 짝과 벗과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녀석도 있었고. 사진 찍고 싶으면 얼마큼이든 찍으라는 듯 꼼짝없이.
찰칵찰칵. 카메라 들어도 가만있고 휴대폰 들어도 잠자코. 하니 해 질 녘까지 버티며 웃을 만하지 않은가.
점심나절 지나 게으르게 움직인 탓일 텐데 이야기를 너무 아름답게 꾸몄다고 누군가 혹시 짚는다면? 뭐, 특별히 “아니”라며 목청 돋울 생각 없다. 짝과 벗과 나는 늘 그리 즐거웠으니까. 영실과 윗세오름 사이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두루 널리 하늘로 트인 선작지왓이 좋다. 해가 구름에 잠겨도 좋고.
또 갈 테다. 느지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