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발톱 두 개

하여 나는 제주

by 글 짓는 은용이

“한번 가 보긴 해얄 텐데.”

“응. 한 번쯤은.”

한라산. 가슴은 아니었고 뒷머리나 눈언저리 어디쯤 얹힌 듯했다. 제주 한가운데 선 채 하늘에 닿기로는 볼록하고 땅에 닿기로는 길게 가로누운 듯 넉넉한 산등성이. 제주 안 어딜 가나 고개 돌리면 늘 거기 있는. 가파도에서도 보이고. 일출봉과 비양도에서도 보이는.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을 때 많지만 늘 거기 있음을 알 수 있는 무게.

짝과 나는 한라산 바라보는 것 좋아했되 오르고 싶진 않았다. 다른 산도 웬만해선 찾아 오르지 않았고. 산에 가느니 바다에 눕겠다 하기 일쑤.

벗은 산 어디서나 팔팔했다. 아차산과 인왕산과 관악산과 광덕산 들. 관악산과 광덕산은 끝까지 오르지 않았다. 설악산도 비룡폭포와 흔들바위까지만. 열 살 무렵까지였으니까, 걸맞을 만큼만.

줄에 매단 상자 타고 올라간 설악산 권금성과 덕유산 향적봉까지 손가락에 꼽는 건 매우 간지럽되 어떻든 짝과 벗과 나는 가끔 함께 산속이나 꼭대기에 서 보긴 했다. 아, 지리산 성삼재로부터 노고단까지 오르기도 했고. 가뿐히. 지리산 국립공원 능선 따라 걸으며 여러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건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짝이 스무 살 때 그리해 봤다지만 그건 그때 일일 뿐.


“한라산 가 봤어?”

종종 들렸다. 한라산에 올라가 봤느냐는 물음. 가끔 “백록담 봤겠네?”도. 여름 제주 사랑해 해마다 간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제주 어디가 어느 때 어찌 좋은지 어떤 이와 이야기 나누다가 불쑥. 마땅히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을 봤어야 옳다는 듯이.

“아니, 산은 별로···.”

“왜? 한라산이 얼마나 좋은데!”

이쯤 되면 밭다리걸기. 그가 땀 흠뻑 흘리며 산꼭대기에 오른 뒤 얻는 어마어마한 기쁨 같은 밭다리후리기로 기어이 넘어뜨리려 들면 나는 좀 어지러웠다. 대개는 “산은 별로”라는 내 말 듣고 한라산에 올라 보라는 말을 매조지거나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게 마련이지만 밭다리 걸었다가 급기야 후리는 이가 있으니.

나는 이렇게 말해야 좋을지 저렇게 웃어야 나을지 몰라 허둥거렸다. 짝도 종종 비슷한 일 겪었고. 음. 가슴속 짐 같은 건 아니었되 뒷머리나 눈언저리 어디쯤 얹힌 무엇.


“한데 한라산은··· 쉽지 않을 텐데.”

짝과 나는 두렵진 않았되 속을 좀 태웠다. 녹록지 않을 테니까. 벗이 아홉 살쯤 됐을 때 ‘한번 해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버거울 듯해 접었다. 이듬해 ━ 2010년 ━ 팔월 ‘좋은 날 만나면 이번에 올라가 볼까’ 싶어 등산화 챙겨 갔지만 머뭇머뭇. 애꿎은 신발에게 눈총 쏘다 돌아왔다. 그해 팔월 21일부터 27일까지 곽지와 협재와 함덕, 다시 협재 바닷가에서 쉬다가 가까운 곳 한 군데 들러 천천히 거니느라 바빴기에. 마라도에도 다녀왔고. 아쉬운 대로 절물오름 꼭대기에 올라가 한라산을 바라보긴 했지만 등산화를 꺼내 신기엔 좀 낯간지러웠다.

일 년 뒤. 2011년 팔월 20일 토요일 아침. 등산화를 신고 김포공항에 갔다. ‘이번엔 꼭 한라산에 가겠다’고 마음 다지기 위해 신은 건 아니었고 가방 무게를 줄이고 싶었을 뿐.

곽지 바닷가에서 일 년 치 쌓인 숨 트고 구엄 하늘 바라본 그날 밤. 짝과 벗과 나는 뜻 모았다. 이튿날 한라산에 가기로. 뒷머리나 눈언저리 어디쯤 얹힌 한라산을 내려놓자 했다. “내일(21일) 안 가면 이십팔 일까지 내내 한라산이 눈에 밟힐 것 같지 않아?” 하며. “응. 그렇겠지?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라고.


성판악. 2011년 팔월 21일 일요일 아침 여덟 시 반쯤. 비 올 것 같다더니 왔다. ‘비 오는데 올라갈 수 있을까. 올라가도 될까.’ 성판악 탐방 안내소 앞마당에 자동차가 넘쳤다. ‘비 오는데 사람이 많네. 일요일이라 그런가. 우리도 부딪혀 보자.’

짝과 벗과 나는 비옷 뒤집어쓰고 웃기 시작했다. 여덟 시 오십 분쯤부터. 진달래밭까지 세 시간쯤 걸릴 텐데 거길 늦어도 열두 시 반에 지나쳐야만 백록담에 갈 수 있다니 짝과 벗과 내 시간은 빠듯. 그렇다고 숨 돌리지 않을 수 있나. 이쪽 보며 사진 찍고 저쪽 보며 웃었다. 활짝.

“좋다. 바람 깨끗하고. 비도 좋고.”

참 좋았는데. 비 묻은 바람 마신 가슴이 촉촉했는데. 한 시간쯤 뒤부터 나는 웃긴 했으되 절로 “아이고” 앓는 소리. 짝도 그랬고. 오로지 열한 살 된 벗만 팔팔했다.

한데 이게 웬일. 꽃 진 진달래밭에 생각보다 일찍 닿았다. 열한 시 반쯤에. 점심 먹고 넉넉히 백록담으로 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 굴뚝 같았지만 장딴지 천근 허벅지 만근. ‘아이고, 죽을 것 같다. 다리가 이대로 굳는 거 아닐까.’


진달래밭에 누웠던 몸 어찌어찌 일으켜 백록담을 바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2.3킬로미터. 한 시간 반쯤 걷는 길. 살다 처음으로 바닷물 표면으로부터 높이가 1,900미터라고 쓰인 표지를 봤고, 살다 처음으로 거기를 걸어 올라 지나쳤다. 비구름이 발아래 멀찍이 흐르는 걸 보기도 했고. ‘그럼 오십 미터만 더 오르면 백록담이겠네. 한데 거참 괴롭다. 꼭대기까지 죄다 계단인 건가.’


백록담에 닿았다. 천근 장딴지 만근 허벅지 겨우겨우 들어올려. 한 시간 십 분쯤 걸렸을까. 남쪽일 것 같은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온 구름이 백록담을 덮었다가 북쪽일 듯싶은 쪽 하늘로 솟구쳐 사라졌다. 말끔히. ‘한데 이런 젠장. 올라온 지 이십 분밖에 안 됐는데 내려가라 하네.’

오후 두 시. 모두 내려가라 했다. 그래야 안전하다며. 안전이고 뭐고 나는 지금 당장 죽을 듯한데 내려가라니 어쩌나.

벗은 흔들리지 않고 팔팔했다. 짝은··· ‘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나만 어금니 사리물면 모두 살아 웃을 수 있겠구나.’


그러나. 내려오는 길은 도무지 웃지 못할 아픔. 짝과 벗과 나 모두. 특히 나는 ‘이러다 무릎이 서너 쪽으로 쪼개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백록담에서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 짝은 산 내리막이 더욱 어려운 길인 걸 잘 알았기 때문. 아직 갈 길 멀고 힘들다는 걸 알기에 몸과 마음을 다 조여 둔 채였다. 나는 그러나 ━ 나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산 내리막이 더 괴롭고 어렵다는 걸 잘 알았지만 ━ 몸과 마음 조여 둘 새 없이 곧 모두 풀려 버릴 것 같은데 어쩌랴.

나는 백록담과 진달래밭 사이에 나타나는 계단마다 몸을 옆으로 돌려 내려섰다. 게처럼. 무릎 쪼개질 듯 아파서. 설설 기진 않았되 게걸음으로 내려설 때마다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계단 사라지고 길이 좀 판판해져서야 앞을 보고 걸을 수 있었고.

사람 몸이 그런 건가. 이 악물고 걷다 보니 웬만큼 걷겠더라. 무릎 아파도. 쪼개질 듯 아프긴 한데 웬지 진짜 쪼개질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랄까. 어금니가 빠지지 않는 한 악물고 발 앞으로 내디딜 만했다. 짝은 몸과 마음 단단히 조여 둔 덕인지 말없이 잘 걸었고. 벗은··· 하하, 생생하던 그도 웃음과 말 사라졌지. 짝과 벗과 나는 조용히 자기 몸 안으로 마음 가라앉힌 채 걸었다. 성판악 바라며.


세 시간 오십 분. 백록담에서 떠밀린 오후 두 시로부터 성판악까지. 짝과 벗과 나는 어딘가에 일하러 오전 아홉 시에 들고 오후 여섯 시에 나듯 아홉 시간 만에야 한라산에서 놓여났다. 아침 여덟 시 오십 분에 들어 오후 다섯 시 오십 분에 난 것. 음. 하루 죙(종)일.


나는 진달래밭으로부터 내리 딛는 걸음마다 느꼈다. ‘등산화가 작구나. 내 발에 맞는 게 아니었어.’ 설악 흔들바위나 비룡폭포쯤 다녀올 때엔 몰랐지만 한라산 백록담에선 뼈저렸다. 오를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지만 내려올 때 신발 안 두 새끼발가락이 짓눌리는 걸 새삼 안 것.

등산화가 작았다기보다 좁았다. 설악 비룡폭포 쯤 다녀올 때엔 넓은 발볼이 좁은 신발을 견뎠지만 아홉 시간을 걸어야 하는 성판악과 백록담 사이에선 등산화가 나를 비웃은 셈. 특히 진달래밭으로부터 꾸준히 내리닫는 네 시간 동안 매우 괴로웠는데 급기야 ‘성판악까지 600미터’ 표지를 봤을 때쯤엔 두 팔 더한 네발로 기고 싶을 지경. ‘산 즐겨 찾는 사람은 대체 뭘까. 이 아픔을 즐기는 건가. 이게 어디 아프다 뿐인가 이토록 괴로운데. 무릎 쪼개다 못해 빠갤 것 같은데. 이러다 죽겠다 싶은데. 한라산쯤에 익숙해지면 더 멀고 더욱 고팔픈 길을 찾아 나서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제정신일까.’

한라산은 내 몸에 자취를 뚜렷이 남겼다. 두 새끼발톱에 피멍. 한라산에서 놓여난 지 스무 날쯤 됐을 때 두 발톱 다 빠졌다. 발톱 빠진 곳에서 새 발톱 다시 자란다는 걸 한라산이 알게 했다.

둘 더. 두 뺨에 메소포타미아 반달 같은 얼룩이 끼었다. 비구름 위와 백록담 사이 쨍쨍한 햇볕이 땀 닦느라 맨 도화지 된 ━ 선(Sun) 스크린 사라진 ━ 뺨에 긴 반달 같은 얼룩 두 개를 그린 것. 왼쪽 뺨에 더 짙고 넓게. 해가 빚은 자국. 아직 남아 가끔 한라산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