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엄 이재훈

하여 나는 제주

by 글 짓는 은용이

마지막엔 네발로 기고팠을 만큼 한라산은 짝과 벗과 내 가슴속 깊이 아로새겨졌다. 애월 구엄 잠잘 곳으로 돌아가 씻고 몸 부리느라 애먹었고.

겨우겨우 몸 좀 추스르고 난 뒤엔 마땅히 뭘 먹어야 했다. 하지만 아홉 시간이나 걷고 난 몸으로 어딜 더 움직일 수 있나. 잠잘 곳 앞 구엄포구 중엄 마을 해녀의 집으로 갔다. 터벅터벅. 어항에 한치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낙지와 해삼 같은 해물 조금 두고 소주 네댓 잔 넘긴 곳.

팔월 말 밤. 제주가 비수기로 접어들어 가을 곧 올 걸 느끼는 때. 돌소금밭 옆 구엄포구 중엄 마을 해녀의 집 속 해녀 두 분이 졸린 눈 들춰 짝과 벗과 나를 맞았다. 찾아갔을 때마다 아마도 다른 해녀. 중엄 마을 해녀가 두 분씩 차례차례 돌아가며 손님을 맡는다 했으니까.

짝과 나는 고요한 구엄포구에서 느긋이 한잔하는 재미에 맛 들인 지 오래. 한치 회를 처음 맛본 곳이었다. 한치가 있을 때보다 없을 적 더 많았지만 늘 소주에 한치를 곁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찾아갔다. 포구 건너편에 잠잘 곳 마련해 가며.


짝과 나는 그랬는데 벗은 구엄에서 어떤 재미가 있었을까. 뜻밖에도 그곳을 좋아했다. 값싼 데다 어느 해엔 코를 틀어쥐어야 할 정도로 퀴퀴했던 잠잘 곳이었음에도.

“거긴 자주 가서 그런지 마음이 편했고, 아침에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가 좋았고, 조금 늦게 도착한 날 석양도 예뻤어.”

벗은 구엄포구 그때그때를 모두 가슴속에 담아 둔 거였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돌소금밭 있되 누구나 감탄할 만한 멋진 바닷가라 할 수 없음에도. 마음 편하고 바다 좋으며 해 예쁜 곳이라니. 가난한 아빠가 애써 찾은 잠잘 곳을 좋아한 벗에게 어찌 아니 고마우리. 나는 벗을 사랑한다.


곽지과물 바닷가에서 해 질 녘까지 머문 뒤 구엄포구로 돌아갔다. 2016년 팔월 6일 토요일. 같은 잠자리 이틀째. 씻고 몸 조금 부린 뒤 다시 중엄 마을 해녀의 집으로. 한치가 없어서 ━ 살아 있는 한치를 만나는 건 늘 쉽지 않아 ━ 작은 해물 등속에 소주 서너 잔 곁들였다.

구엄 마을 안쪽에서 사람 그림자 셋이 해녀의 집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은 어깨 넓이가 예사롭지 않았고. 중엄 마을 해녀에게 “이모”라 했나. “어머니”라 부른 듯도 했고. 아무튼 가수 이정. 어깨 넓은 이. 그와 함께 와 어머니 같은 중엄 마을 해녀에게 ‘오늘은 어항에 무엇 있는지’를 물은 이는 가수 이재훈. ‘더 이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를 부른 쿨 이재훈. 또 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되 딱 동네 친구 셋이 마실 나온 모습.

벗과 구엄 사는 이재훈이 탁자에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 만난 기념으로. 여행하는 사람 사진 속에 흔쾌히 함께 담겨 준 이재훈. 웃으며. 그는 해녀의 집에서 해물 등속 사 들고 구엄포구 방파제 끝 어둠 안에 묻혔다. 이정과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웃으며.

짝과 벗과 나는 가끔 보는 티브이 속 이재훈 덕분에 조용한 구엄포구 밤바다를 되살린다. 하여 고맙고.

그가 나쁜 일 없이 더 오래 노래하고 티브이에서 자주 웃길 나는 바란다.

2013년 팔월 제주 농협 어항 속 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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