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하여 나는 제주

by 글 짓는 은용이

“와··· 신기하다. 진짜 밝네.”

붉은 치마 같은 적상산과 품 넓은 덕유산 사이 한 골짜기 마을. 1977년과 1978년 여름밤. 초등학교 삼사 학년생이던 나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집 작은방에 배 깔고 누워 작은 병에 갓 잡아넣은 반딧불이 빛 좋아 마냥 웃었다.

여남은 마리. 내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집 마당과 둘레엔 반딧불이가 많았다. 특히 집 앞 개울 옆 호두나무와 둔덕에 깜박깜박 깜박깜박. 잠깐 동안 열쯤은 말할 것도 없고 스무 마리도 너끈히 잡아넣을 수 있을 만큼. 해선 안 될 짓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게 예뻐 많이 웃었다. 잊을 수 없을 초록빛 가슴에 새겼고.

곧 놓아주긴 했지만 한번 붙들린 반딧불이는 시름시름 앓듯 죽기 일쑤. 불쌍하고 미안해 더는 잡지 않았다.


1979년엔 반딧불이를 본 기억이 없다. 그해 여름 내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집에 가지 않았던 걸까. 이듬해에도 보지 못했다. 눈에 띄지 않으니 잊혔고.


“와··· 얘들 왜 이래? 이런 건 처음 보네.”

십 년 뒤. 1989년 여름밤. 경기 양평 사나사 계곡 들머리 한 군부대. 이십사 시와 두 시 사이 대대 탄약고에서 중대 장갑차고로 경계 근무지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연병장 쪽 하늘에 반딧불이가 꽉 찼다. 연병장과 장갑차고 사이로 서너 마리 날아다니더니만 곧바로 초록빛 수백 수천 떼춤.

김 병장은 “내가 여기서 여름만 세 번짼데 얘들 이러는 건 처음”이라며 잇따라 와, 와 했다. 이등병인 나는 아무 말 못한 채 놀라 입만 벙긋벙긋. 그리 많은 반딧불이를 본 건 나도 처음이었다. 두 번 본 적도 없고.


사나사 계곡 들머리에 계속 머문 1990년과 1991년 칠월 말까지 나는 반딧불이를 한 마리도 더 보지 못했다. 눈에 띄지 않으니 다시 잊혔고.


“어, 반딧불이다!”

“그러네, 통 안 보이더니 어째 나왔냐그래.”

오 년 뒤. 1996년 팔월. 결혼하기 전 짝을 짝의 어머니 아버지 집에 내려 주고 두어 시간 더 달려 내 어머니 아버지 사는 산속 사발 같은 무주(茂朱) 읍내로 내리닫는 언덕. 군 공무원일 듯한 이가 깃발 흔들어 내 차를 막아 세우고는 전조등을 끄게 했다. 등불을 모두 가리거나 끄게 한 등화관제 훈련. ‘아직도 이런 걸 해야 하나.’

자동차 등 끄고 엔진마저 끈 뒤 깜깜한 어둠 속으로 선뜻 나섰을 때 가녀린 초록빛 하나.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내 눈앞 지나 휘휘 언덕 옆 남대천 ━ 금강 위쪽 물줄기 ━ 쪽으로 날아갔다. 깜박깜박하며.

초록빛은, 등화관제하느라 답답해진 집을 나와 길가 평상에 앉아 있던 언덕바지 마을 사람 눈에도 띄어 “반딧불이다!” “통 안 보이더니 어째 나왔냐”며 신통하다는 칭찬 들었다.


무주에 가끔 갔고 여름에도 간 적 있지만 나는 내 어머니 아버지 사는 산속 사발 같은 동네에서 반딧불이를 다시 보지 못했다. 슬프게도. 내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집 둘레에서도 다시 보지 못했고.


“어, 반딧불이다! (읊조리듯) 세상에··· 진짜 반딧불이야.”

십팔 년 뒤. 2014년 팔월 13일 수요일 밤 여덟 시 사 분. 제주 교래자연휴양림 숲속 초가 방충망에 옅은 초록빛 하나. 지쳤을까. 깜박, 깜박, 깜박. 오랫동안 방충망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벗에게 “얘가 반딧불이”라고 말했다. “와··· 얘를 얼마 만에 보는 지 모르겠다. 예전엔 참 많았는데”라고 덧붙였고.

제주 중산간 숲 곶자왈에 반딧불이가 얼마간 살아 있는 모양이다. 2016년 오월 소설가 최상희가 <다시, 제주>에 “청수곶자왈은 여름이면 반딧불 빛으로 휩싸인다. 6월 장마 무렵부터 7월 한여름 밤이면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 숲 가득 신비로운 오로라 같은 빛 무리를 짓는다”고 쓰기도 했으니까. 사실이라면, 그가 직접 본 모습이라면 제주 곶자왈엔 아직 반딧불이 “수만 마리”가 살아 있을 터. 같은 해 구월 이담과 채지형이 낸 <제주 맛집>에도 제주 한경 청수는 “주로 농사를 짓고 넓은 곶자왈 지대가 있어서 가끔 반딧불 구경을 하러 가는 곳”이라 했다.

제주여행연구소가 2019년 오월에 낸 <모두의 제주>에도 반딧불이 자취가 보였다. 서귀포 하예 “열리해안산책로 초입 논짓물에서 멀지 않은 갯갓다리 주변은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청정구역”이고 “푸른 나무와 수풀로 우거진 예래천은 다슬기를 포함해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반딧불이가 종종 출현한다”고 쓴 것.

지켜야 하지 않을까. 반딧불이 사라지면 또 다른 동물과 식물과 미생물이 잇따라 죽고 사람도 견디기 힘들게 마련이다. 곶자왈 터 관광지 만들고 삼나무 잘라 찻길 넓히며 좋아라 웃을 일 아닌 것. 성산 쪽 곶자왈 마구 덮어 두 번째 제주공항 낼 일도 아니고.


벗은 뒷날 가끔 교래 숲속 초가 반딧불이 이야기를 했다. “살아 있는 반딧불이를 본 건 처음인데 그때 딱 한번뿐”이라고.

가끔가끔. 잊힐 만할 때. 제주 숲속 초록빛을 그리워했다.


2014년 팔월 13일 수요일 밤 여덟 시 사 분 교래자연휴양림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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