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나는 제주
숲에 안개 서렸다. 거기 처음 갔을 때. 숲 안쪽으로부터 하얗게 스멀스멀 굴러오더니 짝과 벗과 내 몸에 맑고 깨끗이 들러붙었다. 이슬처럼 맺혀. 가슴에 꽉 찼다.
절물. 절 더하기 물. 절집 있었다 하고 샘물은 지금도 솟는 곳. 가뭄 들어 둘레 동네 우물이 다 말랐을 때에도 솟아 사람 살린 물. 오래전 제주 봉개 사람들이 삼나무 심어 가꾼 숲. ‘어라, 사람이 있다. 평상에 여럿 앉거나 누웠네.’
제주 사는 사람, 특히 봉개 마을 시민일 게 뚜렷한 여럿이 더위 잊는 소풍을 나온 듯했다. 몸에 비 같은 안개 들붙는데. 비가 오기도 했고.
하하, 짝과 벗과 나도 잘 알았다. 비 많이 오는 날 찰박찰박 몸에 물 묻는 느낌. 여름날 벗 다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철벅철벅하며 즐거웠지. 비 오는 날 안개에 안긴 절물 소풍은 좋을 터. 우산 받쳐도 좋고 없으면 더 좋고. ‘어라, 다른 평상에 사람이 더 있다. 소풍 나온 동아리가 드문드문 여럿이네.’
억수 같은 빗속 서귀포자연휴양림 계곡에서 느긋한 제주 사람 여럿을 보기도 했다. 짝과 벗과 나는 새까만 빗속에서 계곡물 불어 콸콸 넘치면 어쩌나 두려웠는데. 닭백숙이라도 나누는지 계곡 옆 제주 사람 여럿은 모두 홀딱 젖었되 얼굴에 넉넉한 마음이 고스란했다. ‘거참 부럽네.’
“여기서 잘 수도 있나 봐.”
“그런가 보네. 물어봐야겠다. 자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드높이 곧은 듯 굽은 소나무 숲 안갯속 헤쳐 간 길 끝에 꽃과 나무 이름 가진 집 여럿. 거기서 묵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짝과 벗과 나는 해마다 꼭 자려 했다. 이틀이나 사흘 안 되면 하루라도. 좋아서. ‘춘란’에 자러 가다가 노루 만났으니까. ‘왕벚나무’에서 설거지하다가 노루와 눈 마주쳤고. ‘새우란’에선 새벽 꿀잠 자다가 노루 울어 깼으니까. ‘복수초’에서도. 그때그때 까마귀는 또 얼마나 친구 같아 좋던지.
특히 큰바람 온 밤 ‘금낭화’에서. 2012년 팔월 27일 월요일. 태풍 볼라벤이 밤새 서귀포 남서쪽과 서쪽 지나 목포로 달려가는 걸 느끼며 잤다. 편안히. 절물이 고스란히 품어 줄 걸 알았으니까. 태풍이 지구를 조금 식힐 걸 알았고. 큰바람 지나가면 해 쨍할 것도 알았으니까.
절물은 내게 일 년 치 삶 표지이자 로터리 같았다. 제주에 다시 안긴 걸 알았되 돌아 나간 곳. 까만 밤 평상에 누워 삼나무 사이 별 보며. 노루 여럿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니 나도 한라산에 이어진 듯 어슴푸레 느낀 터. 바닷물 표면으로부터 697미터인 오름 꼭대기에 선 채 가까이 한라산 보고 멀리 제주시 바라보며. 제주공항에 가까워 서울로부터 빨리 닿고 재빨리 떠날 수 있는 곳. 발목 넘어 무릎에 닿을 듯한 눈에 푹푹 빠져 가며.
남쪽 바다로부터 산 넘어온 바람과 나무와 노루와 제주 사람 깃든 곳. 짝과 벗과 나도 그곳에 어울릴 수 있을까. 거기 깃들어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도 그렇고. 언젠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