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나는 제주
짝과 벗과 내 살림살이는 그리 넉넉지 못했다. 지금도 매한가지. 한데 어찌 해마다 제주에 갔고 늘 가려할까.
잘고 시시하며 대수롭지 않은 걸 죄다 끌어모았다. 꾀와 슬기와 진득함과 동전과 항공 마일리지 따위. 동전 모이면 돈이 제법 됐으니까. (요즘엔 동전까지 그때그때 빨리 털어 쓰는 게 경제에 더 낫다고 봐 따로 모으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제주를 사랑하니 그쯤은 꾸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특히 마일리지.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항공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다는 데 눈길을 뒀다. 1998년쯤부터 자주 쓰는 은행 신용카드 두 장을 한국 항공사 두 곳 마일리지 쌓기에 이어 둔 것. 카드를 쓴 대로 얼마큼 마일리지가 쌓이는 짜임새. 일 년쯤 꾸준히 쌓은 마일리지로 제주 갈 비행기 표를 찾아 가지거나 작은 자동차를 빌려 썼다. 일이 년 치 항공 마일리지를 탈탈 털어 좋은(?) 호텔에 묵기도 했고.
마일리지로 묵은 한 호텔은 짝과 벗이 좋아하는 바닷가 모습과 수영장을 품었다. 나 또한 즐거웠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머물면 더욱 흐뭇했다. 이른바 성수기엔 누리기 힘든 사치였지만 사람 드물어지기 시작한 팔월 말이나 구월 초엔 얼마간 얻을 수 있는 비밀 같은 비밀 아닌 꾀.
마일리지가 모자라면 일 년쯤 더 쌓은 뒤 썼다. 이듬해에 닥닥 긁어 쓰면 더욱 즐거이 웃을 수 있는 걸 알았으니까. 내가 좀 무뎌서 서너 해 잇따라 제주에 닿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하지 않으면··· 가슴 아프지만, 몹시 슬프지만 짝과 벗과 나는 해마다 제주에 닿기 어렵지.’
마일리지로 잡아 둔 호텔에 묵을 날 다가오면 우체국에 갔다. 집으로 짐 부치러. 팔월 말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휴가를 내고 앞쪽 토요일 아침에 제주로 날아가 뒤쪽 일요일 밤까지 아흐레 동안 머무르느라 바리바리 싼 짐. 팔월 중순 화·수·목요일에 건너가 그다음 주 화·수·목요일까지 여드레 동안 머무르려고 싼 짝과 벗과 내 짐. 하루나 이틀 치만 가벼이 남기고 집으로 미리 부쳤다. 우체국에서. 천천히 닿는 택배로. 홀가분하게.
한라산이나 큰 오름에 오르려고 등산화를 신거나 따로 꾸렸는데 그것까지 죄다 도로 싸 들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아이고, 무거웠다. 어금니 사리문다면야 이고 지고 못할 것 없겠지만 쉬는 날 끝을 그리 애면글면해서야 어디···. 대여섯 해 애쓴 끝에 우체국을 그야말로 ‘발견!’했다.
국영 기업 우정사업본부 우체국 노동자께 짐 맡기는 게 믿음직했다. 늘 고마웠고. 1884년부터 백삼십칠 년째 삼천리 골골샅샅 시민 곁에 두고 세금 보태 살찌웠는데 어찌 믿음직스럽지 않고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삼십칠 년 동안 일제와 전쟁 따위 볼 꼴 못 볼 꼴 다 겪은 우편이라 믿지 않을 수도 없지, 뭐.
해마다 적자여서 어려운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에 작으나마 힘 보태고픈 마음도 담았다. 짐 맡기되 짐 든 집배 노동자가 시간에 쫓겨 다치거나 극한에 내몰리지 않게 ‘더욱더 많은 정규직 채용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라며.
누군가 막 종이비행기를 날린 성싶게 하늘로 바싹 올라붙는 진짜 비행기. 집 창밖 멀리 시시때때로.
제주 가는 비행기 잘 보이는 동네에 살았다. 2001년 삼월 24일 토요일부터 이십일 년째. 그게 어디 꼭 제주 가는 비행기였을까마는 마음엔 자꾸 그리 보이는 걸 어떡하나. 그리 보며 꾸준히 웃을 수밖에.
제주 자주 가려고 동네 자리까지 살핀 건 아니었다. 살다 보니 제주에 빨리 닿고 재빨리 돌아올 수 있어 좋았을 뿐. 죽 눌러앉았으니 제주에 익고 동네에 푹 익었다.
특히 벗은 공항 가까운 동네 한 도로 저쪽에서 팔 년, 이쪽에서 팔 년, 다시 저쪽에서 사 년, 이쪽에서 일 년째. 하니 그는 세상에 나와 이십일 년째 같은 동네에 살며 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해마다 제주에 갔다는 얘기가 되나. 열아홉 땐 바빠 틈을 내지 못했다. 아쉽게도. 스물엔 ‘코로나19’ 사태에 발목 잡혀 가지 못했고.
벗이 아쉬운 만큼 짝과 나도 입맛만 다셨다. 셋 즐거우려고 제주와 제주 사람에게 해로울 짓 하면 안 되니까. 백신 맞아 면역력 좀 얻고 바이러스 사그라드는 흐름 보이면 건너갈 테다. 마일리지 꽤 쌓였으니까.
“제주도 가고 싶네.”
벗 불쑥. 창밖 바라본 걸까. 2021년 사월 27일 화요일 저녁나절. 그때뿐인가. 벗은 잊힐 만하면 불쑥불쑥 가슴속 제주를 내보였다. 짝과 나는 웃었되 곧바로 갈 수 없어 한숨짓고.
“관광지는 딱히 가고 싶은 데가 없어.”
사월 말이면 바다에 들어갈 수 없겠고 관광할 만한 곳 찾아가는 건 오래전부터 크게 힘쓰지 않았으니 딱히 갈 마음 없겠지, 뭐. ‘그럼 뭘까. 새로운 오름? 한라산? 아, 한라산은··· 무서운데.’
“제주에 가서 먹고 싶네. 식도락 여행처럼. 아침에 돔베고기 먹고, 점심엔···, 저녁에 흑돼지 먹고. (그게) 첫날. 두 번째 날 열한 시 반쯤 일어나서 회를 먹어. 짐도 없을 거야. 배낭 하나만 가져가.”
맙소사. 식도락이라니. 짝과 나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제주 아닌가. 벗은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 어쩌지. 나 요즘 고기 먹는 거 두고 생각 많은데. 어떡하나. 모르겠다. 짐짓 한 귀로 흘려 보자.’
“◯◯◯◯◯◯에 가. ◯◯◯점. 마라도 가서 먹고.”
멈추지 않는 벗. 제주 사람 좋아한다는 집밥 같은 상차림과 짬뽕과 볶음밥을 바랐다. 마라도에서 먹겠다는 건 아마도 짜장면일 테고. 어이없어 웃는 짝. 잠자코 있는 나.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한 귀로 빨리 흘러 나가기를 바랐다. 꼴깍. ‘가만 이, 이게 뭐야. 침 넘어가잖아. 살살 달래 오름이나 바닷가로 꼬드겨야 할 텐데.’
창밖 하늘로 바싹 올라붙는 비행기에 자꾸 마음이 들러붙었다. 찰싹. 마음 들붙어야 갈 수 있었고. 음. 짝과 벗과 나의 제주 가는 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