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나는 제주
신천지미술관. 한때 제주 애월 광령에 있었는데 공룡 모형 잔뜩 세워 둔 곳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 한창 퍼지기 시작했을 때 눈총 맞은 ‘신천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1987년 사월 25일 문 연 뒤 2004년 유월 문 닫는다 했고 2005년 삼월 실제로 닫은 듯하니 십칠팔 년쯤 열려 있던 곳. 짝과 벗과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문 닫겠다고 밝힌 뒤인 2004년 팔월 24일과 28일 사이 어느 날 거기서 숨 텄다. ‘어쩐지 좀 서먹서먹하더라니. 사람 안 보이고 매점조차 없었지. 오로지 탄산 자판기만 하나 덩그러니 서 있었잖아.’
서먹했지만 되레 좋았다. 미술하는 사람 마음 담긴 조각 작품이 여기저기 많았으니까. 네 살 된 벗 걷거나 마음껏 뛸 때 거리낄 것 없었고.
발바닥에 닿는 땅이 조금씩 높아지는 듯싶더니 이른바 전망대에서는 눈길이 멀리 툭 트였다. 벗 눈에 “로봇 머리 같다”던 분홍빛 전망대. 한라산 보였고 애월 앞바다도 짚였다. 가슴속으로 들고나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지.
돌아 나오다가 눈살 접은 건 그 자리에 무슨 ‘복합’··· 아니, ‘종합’으로 꾸몄을 수도 있을 엄청난 물놀이 숙박 ‘타운’ 같은 걸 만들겠다는 알림 때문. ‘어휴, 짝과 벗과 내겐 걸맞지 않은 곳 되겠군.’
“차가워 너··· 무나. 속 시려 너··· 무나. 이빨이 너무 시려. 냉면 냉면 냉면. 가슴이 너무 시려. 냉면 냉면 냉면.”
소녀시대 제시카 목소리. 개그맨 박명수와 짝 이뤄 부른 ‘냉면’ 앞마디. 리듬과 노랫말 밝고 후련해 자꾸 생각나고 어디선가 들려오면 절로 따라 흥얼거렸다.
신천지미술관 있던 자리에 다시 갔다. 2008년 팔월 26일 화요일과 2009년 팔월 23일 일요일. 여덟아홉 살 벗이 한창 공룡 좋아할 때여서. 특히 2009년 팔월 그날. 삼백오십여 미술 조각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공룡 모형 잔뜩 본 뒤 옛 모습 그대로인 전망대를 바라고 걷다가 좀 어설픈 나무 미로 앞에 섰을 때 ‘냉면’이 들려 함께 흥얼흥얼. 하하. 그해 칠월 4일과 11일 벗이 좋아한 MBC <무한도전 ━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에서 처음 방송된 뒤 여기저기서 “냉면 냉면 냉면” 하던 터라 머릿속에 더욱 깊이 새겼다. 공룡 말고 신천지미술관 있던 자리에서 흥얼거린 ‘냉면’으로.
거긴 그해 그때가 마지막. 다시 가지 않았다. 벗이 공룡에 시큰둥해졌기에. ‘냉면’만 기억할 뿐 마음 다시 닿지 않았다.
사립이지만 사라졌으니 서귀포 색달에 있던 소리섬박물관도 좀 짚자. 비바람 세찰 때나 바닷가에서 마음껏 논 뒤 틈 좀 난 날 찾아가기에 좋았다. 특히 예닐곱 살 벗이 우당탕퉁탕 드럼 쳐 보고 쟁그랑쟁그랑 꽹과리 두드려 본 곳. 벗 옆에서 짝과 나도 덩달아 신났지. ‘한데 내년에도 똑같이 즐거울 수 있을까. 많은 사람 손 타다 보면 북 같은 게 찢어지기도 할 텐데.’
찢어졌다. 벗이 예닐곱 살 때 쳐 보던 드럼 작은북이 ━ 아마도 같은 북이 ━ 찢어져 파란 테이프로 땜질한 게 아닌가. 2008년 팔월 26일 월요일. 벗은 여덟 살. 벗이 예닐곱 살 때 쳐 보거나 두드리던 거의 모든 악기에 손때가 올랐다. 새것으로 바꾼 적이 아마도 없는 듯. 2009년 팔월 28일 금요일. 벗은 아홉 살. 한 해 걸러 찾아갔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듯했다. 2011년 팔월 26일 금요일. 벗은 열한 살.
거긴 그해 그때가 마지막. 한 번 더 한 해 거른 뒤 2013년 팔월 다시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절로 알 성싶었고. 짝과 벗과 나는 추억 하나를 잃었다. ‘음. 쉽지 않았겠지. 어려웠을 거야. 한결같이 오래가는 거.’
아쉬웠다. 소리섬박물관에 거듭 찾아간 건 벗이 북과 꽹과리와 아프리카 악기 들 두드리며 자기가 낸 소리를 가만히 느끼는 모습이 기꺼웠기 때문인데. 사라졌으니 서운할밖에.
제주 구좌 하도에 있는 해녀박물관. 놀이터처럼 꾸린 2층 ‘어린이해녀관’에 널찍한 물웅덩이를 만들어 두고는 소라 멍게 해삼 불가사리 들을 넣어 놓았다. 만져 보라고. 게와 날쌘 물고기도 몇 마리 있던 듯싶다. 한때 널리 퍼졌던 바다 생물 전시 체계였는데 그게 어디 한결같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사람 손에 잡혔다 놓여났다 두어 번이면 금세 시름시름. 곧 죽었겠지. 그럼 새 물에 새 생물을 다시 채워야 했을 거다. 사람에겐 손장난 해삼에겐 죽음. 박물관에 온 어린이에게 놀잇거리를 줘 마음 통하려 애쓴 걸 모르진 않겠는데 ━ 해녀가 바닷속에서 만나거나 잡아 올리는 생물인 걸 한번 느끼게 해 주려는 뜻은 걸 잘 알겠는데 ━ 글쎄,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음. 쉽지 않았겠지. 어려웠을 거야. 한결같이 오래가는 거.’
몇 년 뒤 해녀박물관에 다시 갔을 때 그 물웅덩이가 사라졌다. 다른 건 모두 남아 있고. 잘 없앤 거라고 나는 봤다. 그런 물웅덩이 없어도 해녀 삶 잘 내보일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일제에 맞서 힘차고 단단했던 구좌 성산 우도 해녀 모습까지 잘 내보일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해녀박물관이 어린이와 마음 섞여 흐를 좋은 얼개를 많이 마련하기를 바란다. 언젠가 다시 찾아가 보리라.
짝과 벗과 나는 제주 한 사립 박물관에 거듭 찾아갔는데 전시된 박물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안 간이음식점 부추전 때문이었다. 비바람 세차거나 매우 더울 때 큰 부추전 한 장을 탁자에 올려 두고는 시간을 함께 삼킨 것. 마음 트인다면야 허름해도 좋고 좁아도 좋다. 마음 트인다면야 먹을거리 있되 맛없어도 좋겠고.
마음 트여 닿는 곳. 벗과 함께 딴 새파란 귤을 짝의 어머니 아버지, 내 어머니 아버지께 부칠 수 있는 밭. 팔월 말께 나무에 달린 귤은 새파란 채로 더욱 맛있으니까. 제주도립미술관. 안팎이 죄 시원하고 아름답다. 국립제주박물관. 딱 한 번 갔는데 곧 다시 찾아갈 생각이다.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 잊지 말아야 할 아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역사. 이승만이 한 짓과 미군 실체를 벗이 제대로 알고 느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안팎이 모두 곰곰 고요하다. 비자림. 세찬 비바람 속에 걷다 지친 우비 안 다섯 살 벗 체온이 내 가슴으로 번졌다. ‘벗도 느꼈겠지.’
“쿠웅. 제주 강정 ‘구럼비’ 터지는 소리. 화약내. 노리쇠가 탄피를 가늠자 오른쪽으로 퉁겨 낸 뒤 약실에서 피어오른 냄새. 고폭탄이 포구를 떠난 뒤 사방을 무겁게 내리누른 바로 그 냄새.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다.”
한 신문 논설위원일 때 쓴 칼럼 앞머리. 2012년 삼월 29일 목요일. 그해 그달 6일부터 해군기지를 세우려고 터뜨리기 시작한 구럼비에서 죽음 냄새가 난다고 썼다. 구럼비 바닷가에 깃든 여러 생물이 죽고 해녀 또한 시름시름할 게 불 보듯 분명했기 때문. 평화로운 섬 제주에 웬 군사 기지란 말이냐. 일 벌어지면 해군기지에 미사일 날아들 게 뻔하지 않나. 숨 트고 마음 열어 함께 웃지는 못할 망정 군사 기지 세우고는 서로 노려본다. “평화”가 어디 말로만 오는가. 제주에서 사라진 것 참 많은 데 정작 없애야 할 건 해군 기지다.
“쿵. ‘세계 7대 자연경관’ 내려앉는 소리. 위산내. 명치끝이 타는 듯 따갑다가 울컥 목구멍을 역류한 냄새. 기침을 일으킬 정도로 묵은 데다 때론 알콜까지 섞였던 바로 그 냄새. 어찌할 수 없는 통증의 냄새다.”
같은 칼럼 두 번째 문단. “쿠웅 쿵.” 연거푸 깨지고 가라앉는 제주를 바라보는 게 안타까웠다. 세계에서 일곱 손가락에 꼽힐 아름다운 곳이 되고자 착한 마음 먹었던 건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공무원이 전화통 붙들고 혈세 211억 86만 원을 써 가며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뽑힐 일은 아니었다. 서버만 해외에 둔 채 전용회선으로 이어 사실상 국내전화였던 게 드러난 뒤 KT가 통화료를 깎아 줘 170억 2,600만 원으로 줄기는 했다지만 세금 허투루 쓴 책임까지 벗을 순 없으니까.
오래전부터 회자된 ‘세계 7대 불가사의’도 아니고, 무슨 애매모호한 사기업 뉴세븐원더스에게 오로지 전화 많이 건 결과로 뽑힌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니. 이백십일 억, 백칠십 억 원으로 억억대 가며.
위산 솟구쳐 속 쓰렸다. 그 돈이면 한라산 기슭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어우러져 제주에 스며든 사립 박물관이나 미술관 따위를 공유화할 수 있었을 텐데. 옛것 모두 부숴 버린 뒤 새 시멘트를 쌓지 않아도 됐을 것을. 제주 시민 복지에라도 썼다면 속이 이리 쓰리진 않았을 텐데.
이제 그 누구도 뉴세븐원더스 ‘세계 7대 자연경관’을 내세워 자랑하지 않는다. 아마도 낯부끄럽겠지. 어리석은 짓 되풀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