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일 짚고

하여 나는 제주

by 글 짓는 은용이

104일. 2003년 팔월 19일 화요일과 2018년 일월 30일 화요일 사이 십오 년 동안 짝과 벗과 내가 제주에 머문 날수. 벗이 짝 배 안에 있던 2000년 팔월 30일 수요일부터 구월 1일 금요일까지 사흘도 함께 머문 것으로 헤아리자면 107일. 짝과 나는 결혼 앞둔 1997년 팔월 17일 일요일부터 그달 20일 수요일까지 나흘 더 머물렀으니 111일. 벗도 초등학교·중학교 친구들과 사흘씩 두 차례 수학여행을 가 머물렀으니 113일. 나는 1998년 삼월 16일 월요일과 이튿날, 2007년 11월 22일 목요일과 이튿날 출장 가 머물렀으니 115일. 따로 또 같이 113일쯤이라 짚자. 113일.


짝과 벗과 나의 제주 사랑하기가 2018년 일월 30일 화요일 밤을 끝으로 잠깐 멈췄다. 그해 삼월 고등학교 삼 학년생 된 벗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 때문에. 한국 공교육이 부실한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내내 공교육 체계를 믿으려 애쓴 짝과 나는 벗에게 스스로 견딜 힘을 주고자 했다. 벗이 결국 잘 알아서 해냈지만 ━ 수학 이겨 내느라 사교육에도 얼마간 기댈 수밖에 없어 안쓰러웠지만 ━ 조금씩 올라서며 꿈에 다가가려는 그는 정말 대단했다.

2019년엔 짝과 벗과 내가 두루 바빴다. 2020년엔 ‘코로나19’가 세상을 깊이 가라앉혔고. 2021년도 매한가지. 그 사이 짝과 벗과 나의 제주는 가슴속에 더욱 깊이 내려앉아 그리웠다.


“제주 갈까. 가고 싶네.”

잊힐 만하면 솟는 벗의 제주 가고픈 마음.

“그럴래? 우리 가자.”

노래하듯 솟는 짝 화답.

“갈래? 가면 되지, 뭐.”

달뜬 마음 내리누르며 느긋한 척했되 ‘빨리 가자’ 안달한 나.

수능에 붙들리고 코로나19에 내리눌린 짝과 벗과 나는 쉬 띄운 바람과 달리 제주에 닿지 못했다. 특히 코로나19 등등하니 제주와 제주 시민을 위해, 짝과 벗과 나를 위해 참았다. 꾹. 신용카드로 항공 마일리지 꾸준히 쌓아 가며.


“한라산 갈까.”

잊힐 만하면 솟는 벗의 한라산 오르고픈 마음.

“한라산? 아··· 글쎄, 한라산은···.”

우물쭈물 주춤주춤 짝 대답.

“나도 한라산은 무서운데.”

애써 웃으려 했으되 진짜 두려운 나.

2019년부터 이어진 기다림은 한라산처럼 뚜렷하거나 식도락처럼 흐리터분한 그림을 낳았다. 가고싶되 한라산처럼 뚜렷해야 빨리 닿을 수 있을 듯했고, 때론 식도락처럼 흐리터분해야 갈 수라도 있을 성싶었다.


“제주 한 달 살이 해 보고 싶어. 해 볼까.”

벗은 이것저것 마음 무거워질 때면 한 달 살이를 꺼내기도 했다. 큰 등짐 내려놓은 날 밤에 제주로 가고 싶다고.

“그럴래? 우리 가자. 아빠는 일해야 하니까 두고 가면 되지, 뭐. 너랑 나랑 제주에 있고, 아빠는 주말에 다녀가면 되겠네.”

짝은 나를 서울에, 버려두고라도, 벗과 함께 제주에서 한 달쯤 살고프다 했다. 시큰둥. 나는 짝과 벗에게 배신감 들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되 나만 제주에 한 달 동안 머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그저 안타까웠다. ‘아, 안 돼. 안 될 말이다. 괴로울 거야. 안 돼. 아, 안 돼.’


코로나19는 여태 ━ 2021년 ━ 등등하고, 짝과 벗과 나는 제주에서 한 달 살아 보기를 이루지 못했다. 오래전 품은 “제주에서 일 년이나 이 년쯤 살아 보자”는 바람도 여태 그저 바람일 뿐이고. 음. 짝과 벗과 내가 안길 앞날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113일 짚고 난 뒤 책과 티브이와 인터넷 따위에서 제주가 보이면 웬만해선 모를 곳이 없는 듯싶다. 내비게이션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니까. 웬만하면 이제 다른 곳으로 눈길 돌릴 만도 한데 그리되지 않았고.

“동네 마트에 장 보러 나온 것 같네.”

짝 말. 언젠가 제주공항에 내려 자동차 빌린 뒤 장 보러 찾은 곳에서. 출출해 짜장면과 해물뚝배기 따위 기다릴 때. 정말 동네 시장에 나온 듯해 나 또한 피식 웃음이 났다. 창밖 파아란 제주 북쪽 바다가 짝과 벗과 나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 하지 않았을까. ‘쟤들 대체 뭐래니. 여기가 자기 동넨 줄 아나 봐.’

짝과 벗과 나는 그동안 관광객에게 널리 알려진 곳으로부터 제주 사람 삶 가까이로 조금씩 다가선 여행을 한 듯싶다. 먹을거리도 마찬가지. 해물뚝배기와 옥돔구이와 흑돼지 일색에서 집밥 한 상이나 고기국수 등속으로 넓어졌다. 제주나 서귀포 동네 통닭과 피자와 짜장면도 그렇고. 해마다 거기 닿다 보니 제주 사람이 세 손가락에 꼽는다는 제주와 애월과 서귀포 중국집 짬뽕을 모두 먹어 봤고, 이 가운데 한 곳은 짝과 벗 입맛에 딱 맞아 짜장면과 탕수육과 볶음밥까지 먹게 됐다. 그 집 문 닫고 쉬는 날이 언젠지도 알게 됐고.

짝과 나는 “국립제주박물관 앞 흐드러진 벚꽃”을 본 벗이 부럽다. 여름 내내 서귀포 황우지를 즐기는 어떤 이가 부럽기도 하고. 제주 삼백육십 오름을 죄 올라 본 이도 몹시 부럽다. 산을 따로 골똘히 찾지 않음에도 오름 즐기는 이가 부럽다니 내 마음은 거참 알다가도 모를 일. “백사 일, 백십삼 일” 하며 곰곰 꼽아 봤되 제주엔 아직 가 보지 못한 곳 느끼지 못한 때 많은 걸 짝과 벗과 나는 잘 안다. ‘제주에 다시 가야 할 까닭이겠지.’

제주에 자꾸 마음 가닿지만 곶자왈 밀어 두 번째 공항 만드는 건 싫다. 곧바로 뜨지 못하는 제주공항 비행기 안에 앉아 답답한 적 가끔 있었지만 결코 두 번째 공항을 바라지 않는다. 답답하겠지만 제주공항 비행기 안에서 좀 더 기다려 줄 마음도 있고.

2021년 유월 11일 제주 제2 공항 예정지 둘레 산과 숲을 깨뜨리고,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는 곳에 몰래 근린생활시설을 만들려 한 사람 여럿이 경찰에 붙들렸다. 땅값 높이려고 법률로 묶어 둔 선을 넘은 것. 제주 두 번째 공항에 들러붙는 여러 탐욕이 두렵다. 제주를 망칠 것 같아서.

중산간 삼나무 잘라 내고 길 넓히는 것도 싫다. 나무 자르는 걸 바라지 않는다. 길 막혀 답답해도 좀 더 기다려 줄 마음도 있고.

반딧불이 살아 있다는 청수곶자왈과 논짓물과 갯각다리와 예래천을 따로 찾아가지도 않겠다. 사람 발길 손길 숨길 더 타지 않는 게 반딧불이에게 좋을 성싶어서. 혹시나 청수곶자왈과 논짓물과 갯각다리와 예래천 둘레 가까운 곳까지 날아다니던 반딧불이 한두 서너 마리와 우연히 마주치면 웃겠다. ‘너 살아 있구나. 반갑고 참 고맙다’며 활짝 웃어 주고 말리라.


앞자리 등받이 티브이 속 항로 표시가 이제 막 제주 하늘로 들어선 걸 알게 했다. 2001년 삼월 20일 화요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시드니로 가는 길. 티브이 속 항로 지도는 태평양을 위로 두고 한라산 오른쪽을 꿰뚫을 태세였다. 늘 백두산을 꼭대기로 둔 지도만 보다가 제주를 머리로 삼은 걸 보니 이채로웠고. ‘제주네··· 작년 프라피룬 속 서귀포가 참 좋았지. 낙하산 같은 것 달라 하면 줄까. 서귀포 앞 밤바다에 퐁 뛰어내리면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