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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Sep 25. 2021

안방에 앉아 담배 피우는 아빠

밥풀 풀이 6

 “빨대 좀 줘.”

 오래전 내 뒤를 이어 한 중앙행정기관을 드나들게 된 자의 말. ‘빨대’는 기자끼리 열쇠 정보원을 일컬을 때 쓰였다. 한 기관 안팎을 취재하다 보면 꿀 같은 정보를 많이 가진 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들이고 싶다’는 욕심이 담긴, 좀 못된 말이다. 정보원을 존중하는 마음보다 이용하고픈 마음이 더 많이 담겼으니까. 땀 흘려 취재하지 않고 편히 일해 보자는 게으른 마음도 담겼고.

 꿀인 줄 알고 들이마신 게 소태일 때도 있기에 ‘빨대’는 뒤처진 말이 된 지 오래다. 하여 ‘제보자’라고 일컫는 게 좋겠다. 감춰 보살펴야 할 호루라기니까. 시민 알 권리를 위해 앞서 짚어 주는 지팡이니까.

 한데 “빨대 좀” 달라니. 몹시 나쁜 요구였다. 그자와 내 사이가 제아무리 좋다 한들 열쇠 정보원을 알려 줄 순 없으니까. 알려 주자마자 제보자는 그 기관에 남아 있기 힘들 테고, 나는 기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책임을 저버리게 될 테니까. 결코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빨대’를 주지 않은 게 앙금이었을까. 그자가 벽돌을 들어 나를 때리려 했다. 내 왼손으로 그자의 벽돌 든 손을 붙들어 버틸 때 들려온 말.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내가 진짜, 너, 이 XXX, 사람 사서 죽여 버리고 싶다.”

 나는 그리 말한 그자와 훌쩍 멀어졌다. 나는 그자가 나 때문에 그때까지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곰곰 거듭 짚어 봐도 그자가 돈 주고 산 사람에게 죽어야 할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나는 참으로 무딘 건가.

 “나는 그냥 안방에서 피는데.”

 그자와 내 사이가 멀어지기 전 ━ 매우 오래전 ━ 그자가 한 말. 술자리에서 동료 여럿이 가족에게 담배 연기가 닿는 게 걱정돼 베란다로 간다는 둥 집 밖으로 나간다는 둥 할 때 그자가 툭 던지듯 말했다. 웃으며. 다들 “너무한다”며 어이없어 했되 그저 흘려듣고 말았다. 술자리 우스개 같았으니까.

 <밥풀을 긁어내는 마음으로> 속 ‘병 같은 남성성’을 쓸 때 불현듯 그자가 생각났다. 안방에 앉아 담배 피운다는 말 때문에.

 65쪽. 홍승희는 <붉은 선>에서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아니 잠든 후에도 아빠의 욕설과 발소리, 문을 쾅쾅 닫는 소리가 지배하던 집은 내게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고 알렸다. “밤이면 아빠가 내뿜는 담배 연기를 피하고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 했다”고 덧붙였고. 아빠에게 욕하지 말라고 정중하게 말해도 “집기가 날아오거나 욕설이 더 심해졌다”니, 나는 놀라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홍승희의 아빠와 그자. 설거지를 할까. 음. 둘에게 집과 가족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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