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아쉬움을 남기며 순자의 권학편을 마음에 새겨본다!
올해 초에 방송대 식품영양학과 3학년으로 편입해서 이제 한 학년을 마무리한다.
1학기는 시작이라는 긴장감으로 비교적 학업에 집중했지만, 2학기는 공부보다 사회적인 네트워킹으로 마음이 쏠렸다. 긴장감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벌써 식상해진 걸까?
중간시험이나 과제물은 어렵지 않게 무난히 지나갔지만, 기말시험이 다가오자 시간의 촉박함이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1차 기말시험 12/1(일) 단체급식관리, 조리원리, 식생활과 문화 3과목인데 계획대로 무난하게 치렀다. 2차 시험은 12/8(일) 식품미생물학, 지역사회영양학, 임상영양학인데 문제는 바로 2차 시험에서 드러났다.
12/3(화) 퇴근 후,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밤 10시 30분이 조금 넘었을까.
아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튜브 MBC 실시간 뉴스를 클릭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 제정신이야." 새벽까지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권에 민감하다. 아니 인권에 대해서 늘 감수성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일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부터 기말시험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을 펼쳐도 눈은 뉴스특보를 향하고 있었다.
퇴근 후 공부를 해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토요일은 아예 여의도 국회 앞에서 퇴진을 외치며 밤 9시 30분까지 있었다.
일요일 아침 평소에 없던 편두통은 머리를 혼미하게 만들었고, 오후까지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채 기말시험을 보러 갔다.
난 대통령이 비상계엄령 선포로 한주를 날려서 시험을 망쳤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차근차근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던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 학년을 아쉬움으로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다 보니 순자의 권학편이 떠오른다.
적토성산(積土成山) 풍우흥언(風雨興焉) 한 줌의 흙이 모여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적수성연(積水成淵) 교룡생언(蛟龍生焉) 작은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면 물고기가 생겨나며
적선성덕(積善成德) 신명자득(神明自得) 성심비언(聖心備焉)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갖추어진다.
고부적규보(故不積蹞步) 무이지천리(無以致千里) 그러므로 반걸음이라도 가지 않으면 천리 길을 갈 수가 없고
부적소류(不積小流) 무이성강해(無以成江海) 작은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 수 없다.
출처 순자 권학편
결국 공부를 하는 것도 한 줌의 흙이 모여 산을 이루듯 차근차근 쌓아가는 일임에 틀림없다.
비상계엄령 선포로 잠시 공부를 못했다 할지라도 차근차근 공부의 양을 쌓았다면 그리 망할 일도 아니다.
비록 마지막 기말시험 두 과목이 망했지만 다른 과목들 덕분에 겨우 반액 장학금은 받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학문에 대한 아쉬움이 꿈틀꿈틀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순자의 권학편에 나온 한자성어를 가슴에 새긴다.
여의도 국회 앞에 간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쌓아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민주주의는 소중한 것이고,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젊은 친구들의 축제 분위기와 같은 시위현장들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소신 발언을 하는 다수의 학생·젊은 친구들이 자랑스러웠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뭉클했다. 역시 대한민국이다. 끄떡없다.
적積 적積 적積...
한 줌의 흙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작은 물이 쌓여 연못을 이루며 선이 쌓여 덕을 이루 듯이 공부도 뭔가를 쌓아가는 일이다. 반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강과 바다는 아니어도 연못이라도 이루고 싶은 심정이다.
한 해동안 고생한 나에게 고생했다고 '토닥토닥' 하며 2025년 4학년에는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서 반 걸음씩 반 걸음씩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추천도서
<오십에 읽는 순자> 최종엽 작가
꼭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