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져 보는 시간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오늘의 글감을 받았을 때 0.1초 만에 툭 나온 단어. 자타 공인 이 분야에서 젬병이 된 그것. 주부로 살면서 제일 자신 없고 재미도 없는 그것은 ‘요리’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세 자매가 알아서 놀고 밥도 챙겨야 했다. 맏이로서 밥상을 준비하려 하는데 엄마가 해놓으신 반찬들 말고 별식으로 수제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엄마가 만든 건 전부 맛있어서 그런 엄마의 딸이니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깨너머로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자연스레 요리하는 걸 좋아했던 거 같다. 변변한 레시피도 없이 감만으로 멸치육수를 내고 밀가루 반죽해서 떼어 넣고 이 양념 저 양념 대충 부었을 거다. 뭘 모르니 용감하게 만들었는데 거의 10인분 수준이 완성되었다. 동생들이 먹다 먹다 그만 먹으면 안 되냐며 힘들어했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 ㅎㅎ; 여기서 중요한 건 양 조절은 못했지만, 간은 제법 맞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도 음식 만드는 게 어려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바 없는 나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당연한 수순 밟듯 엄마집 근처에 살면서 내 집 살림까지 엄마가 다 챙겨주시게 되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엄마 도움을 받았다. 본의 아니게 요리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거다. 15년가량 그리 살다가 엄마가 막내 있는 곳으로 이사 가시고 주부로서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4년 된 것 같다. 이 말인즉 주체적 요리인생도 4년 됐다는 뜻이다. 결정적으로, 요리를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하등의 상관이 없음을 처절하게 실감한 세월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능력을 다 주시지는 않았다고 하지. 나만 봐도 그렇다. 사람에 대해 OO 머리가 있다/없다로 말할 때가 있다. 공부머리, 일머리, 살림머리, 요리머리 등등등. 내 경우는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확실히 있는 거 같다. 반면, 요리는 암만 노력해도 안된다. 뜻대로 안 되니 부담스럽게 여겨져 피하기 일쑤다.
따라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요리 영상을 저장해 놓고 그대로 해도 다섯 번 하면 서너 번은 희한한 맛이 나거나 2% 부족하다. 해도 해도 잘 안 돼서 나름 분석한 결과, 혀끝이 예리하지 못한 이유도 있는 거 같다. 양념 맞출 줄을 모르니 무슨 실력이 늘겠냐고.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코로나 시대에 급격히 발전한 배달 음식 문화. 이거 아니었음 우리 모자 어찌 살고 있을까 싶다. 아들이 하루는 그러더라. 음식 만든다고 돈 쓰고 시간 쓰고 애쓰는 거 하지 말라고. 엄마음식이 별로라서가 아니라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 바쁜데 밥 한다고 고생 안 해도 된다고. 배달음식 많으니 가성비 따져서 잘 시켜 먹자고. 처음 들었을 땐 그저 감동이었는데, 이내 아리송해졌다. 엄마표 음식 패싱 하겠다는 말을 고급 지게 돌려한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은 나만의 자격지심일까. 아몰랑...;
그럼에도 여전히 요리가 좋다. 가족을 위해 때로 나를 위해 밥을 차리는 일은 그 자체로 숭고한 의식이라 생각한다. 하여 노력과 도전이 있을 뿐 포기란 없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이 글을 보게 되었을 때,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요리가 뭐라고 이토록 아등바등했냐며 마치 가진 자의 여유 같은 걸 부릴 수 있길 바라보련다. 그래, 그래도 괜찮을 거야. 나는 계속 노력해 갈 거니깐.
아들, 그런 의미로다가 이번 주말에 수제비 해 먹자. 여름감자 잔뜩 넣고. 딱 기대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