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조절 가능할까요
나는 태어나기를 운동과는 연이 없는 사람 같다.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끔찍할 정도로 무섭고 싫었다.
빵점 맞아도 좋으니 모든 평가에서 열외 되고 싶었는데 받아줄 리 없을 거라
투명인간 최면 걸고 꾸역꾸역 견뎠던 기억이 난다.
제일 안 되는 게 100 미터 달리기.
이거 할 때는 거인국 나라에 떨어진 난쟁이가 따로 없다.
반에서 제일 잘 뛴 애 기록이 12~13초대였던 거 같은데 그들이 1도 부럽지 않았다.
내가 제일 부러운 기록은 19초대다. 어떻게 20초 안으로 끊을 수가 있지.
아무리 노력해도 나한테 19초는 넘사벽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체력 검사 같은 게 없어서 너무 좋았다.
초시계 켜놓고 전력 질주 안 시키는 그들의 세상은 한 마디로 평화였다.
대신 달리기와 비교도 안될 만큼의 고도의 전략과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철인 3종 경기가 기다리고 있더라.
준비운동과 연습만 하다가 본격 실전에 나선 20대,
물속에 던져진 듯 허우적대며 시작한 수영 구간이었다.
요령을 몰라서 자꾸 숨이 막히고 방향도 헷갈렸지만,
물 위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애썼던 날들 덕분에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이어진 30대 길은 자전거 구간.
물에서 나와 당당히 땅 위를 밟는 게 짜릿한 상쾌함이더니
기대와 달리 자꾸 체인에 발이 걸리고 오르막 앞에서 헉헉댔다.
회사일은 매일 야근이 필요했고, 엄마가 그리운 아이 때문에 마음 아프다고
나의 엄마에게 고마움은커녕 짜증만 냈다.
남편과도 누가 더 힘든가를 놓고 자주 다투고 미워했던 시간이 많았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들인데, 내 마음에 한 톨의 여유도 없어서 그런 거고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음을 안다.
그래도 자전거 경기는 아니, 나의 30대는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일들 다반사 속에서 다행히 바퀴는 앞으로 굴렀다.
아이가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크는 걸 바라보는 일,
엄마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에 편안함이 깃드는 건
한 번씩 불어오는 바람처럼 달콤한 보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달리기 구간을 지나고 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한 발짝 더 내딛는 일,
포기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 일,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인지도 모르겠다.
넘어질 듯 안 넘어질 듯 휘청거리는 순간이 많겠지.
끝까지 정상 완주를 위해 진정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시점,
뜨겁고 순수했던 전반부를 지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
빨리 달리는 것만이 최선이 아닌 걸 이제 안다. 초 단위 기록도 의미 없다.
그리하여 삶은 아슬아슬하고 힘든 철인 3종 경기 같지만
그 속은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 같은 것이기도 하여서
내일도 다치고 깨질지언정
씩씩하고 다정하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