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함을 허무는 시작점

반말에 대하여

by 정은유


지난 월요일, 신입 직원 두 명이 입사했다. 서른 직전의 남사원과 여사원. 꼰대 왕선배 눈엔 풋풋한 젊음이 그저 이쁘더라.


2일 차인 어제 오후 내 차례의 OJT가 있었다. 원래대로 하면 미리 준비한 자료로 진짜 교육처럼 하는데, 두 분 모두 이 쪽 경력이 거의 없고 주어진 역할이 업무보조 단계라 각 잡고 실무 얘기하기가 애매했다. 사무실 밖 카페에서 자유로이 대화나 나누고 와야겠다 싶었다.


처음 본 이에게 으레 확인해야 할 것 중 하나, 커피 취향을 물으니 한 명은 아예 안 마신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하루 한 번만 먹는다고 한다. 둘 다 커피가 아닌 것을 주문했다. 난 자주 가는 카페이고 사장님이 날 알아보기도 하여 카푸치노 할 거냐 하는데, 사무실에 커피 있으니 다른 거 마시겠다고 하려다 그냥 알겠다 했다. 덕분에 카페인 과다 섭취.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한동안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조심스레 물었다. 마침 우리 셋 뿐이었다.


“언제부턴가 사원 직급인 분들 부를 때 이름에 ‘씨’를 안 붙이고 ‘님’을 붙이던데, 두 분한테 OO 씨~ 해도 돼요?”


여자 직원이 먼저 대답한다. “네, 그럼요!”


뒤이어 남자 직원도 “저도 ~씨가 편해요, 전 직장에서 저보다 엄청 나이 많으신 분이 저한테 ~님, ~님 하는데 불편하더라고요.”라고 했다.


다 같이 웃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이를 안 먹을 수는 없고, 올드 해질수록 심화되는 꼰대 습성.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피할 수 없는 중년의 심벌(?). 하여, 이왕이면 귄위적이지 않고 원만한 유대관계를 위해 불철주야 신경 쓰는 트렌드 민감형 선배가 되어보려 한다.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으나 마음조차 안 먹는 거랑은 천지차이니까 숨 쉴 때마다 다짐하기.


나랑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럴 거 같은데, 신입 직원이 오면 초반 탐색기를 거치고 난 뒤 눈치껏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말을 건넨다. 오늘부터 시이작! 하며 작정하는 게 아니고, 맨날 같이 일하고 밥 먹고 하다 보면 자연스레 편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때를 놓치지 않는 거다.


신입 직원의 나이, 성격, 태도에 따라서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하던데 평균 2주 지나면 기본 성향은 파악되는 것 같다. 그 무렵, 분위기 어색하지 않을 때 슬쩍 묻기. 말 편하게 해도 되냐고. 그동안 만나온 후배들 중에서 반말 문화에 대놓고 반발한 이는 없었던 것 같다. 속으로 안 내켰을 수 있는데, 전체 분위기를 위해 기꺼이 예스라 해준 후배들에게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가족, 친구 아닌 타인에게 반말하는 것을 단순히 ‘표현의 레벨’ 중 하나로만 볼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숨은 진짜 의미를 살펴보자면...


업무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다가도, 반말 섞인 장난 한마디에 툭 긴장이 풀리며 웃게 되는 여유. 실수로 자책하며 쫄아 있는 후배에게는 엄근진 충고대신 “야~ 너어~”로 시작하는 애교 섞인 구박 한마디에 굳었던 표정이 풀리는 순간 등. 반말은 둘 사이의 어색하고 불편한 담벼락을 허물기 위한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세상을 지배하는 건 오직 사람, 그 사람과 사람 간에 찐득한 유대만큼은 AI가 흉내 낼 수 있어도 대신할 순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이 순간, 친해지고 싶은데 말 걸기 망설여지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조만간 메신저 보내야겠다. 언제 밥 먹자고. 밥 먹으면서 인연 만들고 반말도 섞어보고 해야지. 내향형 71%의 I에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좋은 사람한테만큼은 먼저 다가갈 수 있겠지. 반말의 힘을 잘 써먹으면서 말이다. 내 마음이 진심이면 나도 그도 끝내 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