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에 맡겨보다

이런 날 저랬던 이야기

by 정은유


출근길,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부고 문자를 받았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 이사님(부서장) 시아버지가 끝내 돌아가신 거였다. 사무실 들어가서 이사님과 통화 후 직원들에게 소식 공유하고, 부탁받은 대로 인사팀에 필요한 사항들을 요청했다. 늘 해본 일처럼 익숙하고 침착하게. 이런 걸 두고 연륜이라 하는 거겠지.


오늘 또 한 사람의 우주가 사라졌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어제의 흐름을 이어받아 흘러야 할 곳으로 흘렀다. 나도 마음 한편이 한 번씩 싸해진 것 말고는 그런대로 순탄했다. 평범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미 아는 나이. 오늘의 순탄함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도착한 글감이 ‘체력’이었다. ‘체력‘ 하면 내가 또 할 말이 많지, 뭐부터 꺼내야 좋을까 하면서 일과 시작했는데, 예상 못한 일로 리셋 상태다. 내일 장례식장 갈 거라 하루가 길 테니 오늘 많이 자두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될 것 같다.






내 주변에 체력 좋은 사람 꼽으라면 절대지존이 한 명 있다. 바로 우리 엄마. 팔순의 나이에도 당신에게 주어진 체력을 100프로 이상 뽑아내서 모든 일에 열정을 다한다. 행동이든 마음이든 쏟아내야 할 곳을 만나면 물러서는 법이 없다. 일, 살림, 육아 등 전 분야에서 내가 기억하는 한 그렇다. 엄마도 사람인데 피곤한 날 없었을 거며 마음 힘든 날 없었을까. 그렇지만 엄마는 우리 세 자매에게 한평생 최선을 다하셨다. 엄마의 희생으로 부유하지 못한 형편임에도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큰 기억으로 남은 일들이 몇 개 있는데 하나만 풀어보면, 고등학교 때 일명 야자가 있어서 도시락을 두 개 싸가야 했다. 책가방에 도시락 가방까지 들고 다니는 게 귀찮고 무거워서 아니, 애들이 저녁에 컵라면 사 먹는 게 좋아 보여서(당시 신상으로 나온 짜장 범벅이 인기 있던 시기였다.) 하루는 엄마에게 말했다. 저녁에 가끔이라도 컵라면 먹으면 안 되냐고, 맨날 도시락 먹는 거 질린다고 했다. 예상대로 안된다고 하는 거다. 밥을 먹어야 기운 나서 공부도 할 거 아니냐고, 엄마도 도시락 안 싸면 좋은데 나 위해서 싸주는 거라며 일언지하에 컷 당했다. 그 후 졸업 때까지 그 흔한 컵라면 한 번을 못 먹었다는 이야기.


그땐 엄마가 유행도 모르는 촌스러운 엄마에 내 기분 몰라주는 걸 섭섭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알았다. 누군가를 위해 손수 밥 짓는 일은 결코 가벼운 노동이 아님을. 무엇보다 그 일을 쉼 없이 이어간다는 건 노동 이상의 가치 매김이 없으면 불가능한 행위임을 너무 늦게 깨달은 거다. 엄마의 숭고한 사랑 제대로 받고 자란 나는 어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엄마를 보면 신기하다.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영양제를 잘 챙긴다거나 좋은 음식만 먹는 것도 아닌데, 한 번씩 통화할 때 들리는 엄마 목소리엔 힘이 느껴진다. 내가 혹여 걱정할까 억지로 힘낸 걸지 모르지. 그런데 그것 역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한창 젊은 내가 되레 지쳐있을 때가 많으니 엄마와 비교하면 나는 참 약골인 셈이다. 엄마 체력 나한테도 좀 물려주지 그랬어요. 제일 닮고 싶은 게 이 부분인데 너무나 안 닮았으니... 휴, 어쩔 수 없죠 뭐.


엄마에 비해서도, 평균적으로도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회사 마치고 저녁에 글 한 편씩 쓰는 것만으로 에너지 고갈 느낌이다. 주말은 그래서 온전한 쉼이 필요하여 비자발적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집순이면 어떻고 바깥순이면 어때. 나만의 체력으로 평범한 하루들을 무사히 이어가는 것, 이 자체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