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안꾸의 진정성
남들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잠들기 전에 다음 날 입을 옷을 정해놓고 자는 버릇이 있다. 대부분 금방 정하는데 쉽게 결정되지 않는 날은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내일 무슨 옷을 입을까의 문제는 나한테, 뭐 먹을까 와는 비교도 안 되는 중요한 문제인 셈이다.
지독히도 손재주가 없다 보니 화장을 잘하지도, 머리를 잘 만지지도 못해서 머리는 그저 단정하게, 화장은 나름 했다는 티가 날 정도로만 하고 산다. 하여 옷이라도 잘 입어야겠다는 의지는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 감사한 것 중 하나인데 큰 키와 좋은 체격을 주셔서 일명 옷발이 잘 받는 편인 것 같다. 이런 나도 아이 낳고 스멀스멀 살이 찌더니 과거에 입던 옷들을 못 입게 된 시기가 있었다. 디자인보다 사이즈 맞는 옷으로 대충 사서 입다가 2019년에 어떤 계기로 다이어트 제대로 해서 10kg 감량, 왕년의 옷발이 다시 살아날지 확인이 필요했다.
‘대충 사서 입던 옷’을 과감히 버리려고 옷장 정리하는데 원피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예전 회사 근처 옷집에서 산 짙은 브라운의 폭 좁은 원피스. 투박한 골드 버클이 달린 벨트가 포인트였는데 단점이라면 길이가 좀 짧다. 그래서 몇 번 못 입고 걸어놨나 본데 근 10년 만에 입고 거울 앞에 선 순간, 하아... 탄성이 나왔지. 미련 떨며 안 버리길 잘했네.
짧은 길이가 신경 쓰여 자주 입진 못했지만, 옷차림에 힘주고 싶은 날 이 원피스 하나로 실컷 뽐낼 수 있었다. 지금도 입으려면 입을 수 있는데 이 나이에 너무 꾸꾸일 듯하여 자제하련다.
꾸꾸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 경우는 꾸꾸하느니 안꾸가 나은 것 같다. 솔직히 치장할수록 이쁜 사람이 부럽지만 내가 그러면 스스로 어색해서 꾸밀 바엔 차라리 공들이지 않는 게 편하다. 사람이 매일 옷발 세울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옷을 잘 차려입는 일, 다시 말해 꾸안꾸를 잘하는 일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신경 썼다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속한 곳에서 역할에 어울리는 의복을 갖추고 그에 맞는 소임을 잘 해내겠다는, 사회인으로서의 의사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 이유만으로 나는 또 열심히 내일 입을 옷을 정할 것이다. 제대로 된 꾸안꾸가 선사할 멋진 하루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