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성 ㄴㄹ
오늘은 초성이 ㄴㄹ인 단어로 글 써보려 한다.
보자마자 떠오른 건 ‘나라’였다. 그런데 그다지 할 말이 없더라. 패스하고 다음 단어, ‘노력’이 나왔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이 정도면 애쓰며 사는 거 같아서 딱히 할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하나씩 치우다 보니 더 생각나는 게 없어서 ChatGPT에게 물어봤다. 이런저런 단어들 중에 하나가 솟아오르더니 가슴으로 쿵 내려앉았다. 오늘 ‘노련’으로 가보자.
내 나이 쉰 살쯤 되면 매사 노련미가 넘쳐 어려운 거 없이 살 줄 알았다. 인생에서 제일 치열한 40대를 잘 통과해서 50이 되었을 거니 누릴 거 누리며 인생 여유만만하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좌충우돌 우당탕탕 시리즈물이 벌써 몇 편째 업데이트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늙는 게 두렵다가도 중년의 나이쯤 큰 어른이 되어있을 나를 상상하곤 했던 옛날의 내가 좀 우습다.
육아와 살림은 여전히 어렵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별로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서로에게 넘치는 애정과 응원이 없었다면 난 참 안 괜찮은 딸이면서 언니로 벌써 찍혔을 거다. 내가 이만큼이나 평안한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건 근본적으로 가족이란 존재 자체가 주는 힘이라 믿고 싶다.
회사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노련한 것 같다. 한 우물 판지 20년도 훌쩍 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고. 한 번씩 큰 사건 터지면 머리 아프긴 해도 해결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진다. Trouble shooting에서 얻은 경험치가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더 큰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맷집이 되고, 그게 새로운 경험치가 되고... 의 반복.
그러나, 시간과 경험의 비례와 상관없이 늘 어렵기만 한 것. 인간관계.
노련하다는 건 오랜 시간 동안 경험을 쌓아 익숙하고 능란해지는 거라는데, 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는 어렵기만 한지.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도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려나.
오늘도 누군가의 언행으로 스트레스받았다. 6월부터 자꾸 반복되는 중이다. 상처 난 자리가 아물기 전에 다시 헤집히는 느낌. 그냥 내가 먼저 기대를 내려놓으면 될 텐데, 지랄 맞게 집착하는 성격 탓에 쉽지 않다. 이렇게 글로 적고 읽고 상기하는 수밖에.
내 책임이 아닌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에 노련해지고 싶다. 저 일은 내가 끌어안고 있을 필요 없으니 마음에 우산이라도 씌워서 눈을 가려볼까.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이내 노련해질 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