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를 위한 지금
내가 어릴 때 나의 엄마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헬리콥터 부모였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해서 피드백 주고, 잘한 일과 못한 일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칭찬과 꾸짖음을 확실히 했다. 특히, 잘못하거나 부족한 행동은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이 왜곡된 부분이 있겠지만, 뒷일이 무서워서 허튼짓 한번 못한 걸 보면 엄마의 통제가 심했다는 건 확실하다.
엄마가 너무 좋은데, 잔소리는 부담스러웠다. 그마저도 사랑이라는 걸 알지만 일일이 간섭당하는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않나. 사춘기 이후로 반항이라는 걸 하게 되면서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엄마 잔소리 필요 없다며 속된 말로 시건방을 떨기도 했다. 엄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을 다해 당신의 자녀를 양육하였다.
엄마의 사랑과 잔소리를 함께 먹으며 어른이 되고 중년에 접어든 지금껏 내 인생 전반을 지배해 온 신념 하나가 있다. 그리고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게 엄마의 잔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성년 되어서까지 자주 들었던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악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으니 바르게 살아라.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러려니 하고 착하게 굴어야 한다.”
당시엔 이해가 될 듯 말 듯했다. 손해 보는데 왜 참아야 하고, 남들은 여우처럼 구는데 나는 왜 그러면 안 되는지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리고 엄마는 어른인데, 논리로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 엄마가 하는 말이니 일단 기억하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모든 일상과 사고(思考)의 기준점이 되어버렸다.
회사일을 하거나 사적인 관계 유지에서 착하게 살아서 보는 손해이면 기꺼이 그쪽을 택하려 한다. 어떤 끝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을 두고 손익계산부터 하지 않는 거다. 그럴 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못할뿐더러 귀차니즘에겐 이런 상상만으로도 피곤한 일이다. 그냥, 내 판단하에 옳다고 믿고 누군가에게 도움 된다면 일 좀 더 하고 선행하는 것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물론, 착하게 살고 싶어 호구를 자처하는 건 아니다. 둘은 결이 다르다. 지금보다 한창 어릴 때 어리숙하게 굴다가 지인에게 돈도 뜯겨보고 말로 상처받은 적도 무수히 많았다. 어려서 야물지 못했을 거다. 반백 살의 중년이 된 지금은 착한데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 일종의 처세술을 수십 개쯤 갖고 있으니 다행인 걸로.
엄마의 무수히 많은 잔소리 중에 어째서 이 하나가 내 인생의 중심축이 된 건지 모를 일이다.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 바득바득 애쓰며 살아봐야 힘만 들 뿐이라는 걸 그때의 내가 알았을 리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차곡히 쌓여 미래의 어려운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어보련다. 착한 끝을 위해 오늘을 바르게 살자.
[번외 편]
엄마 잔소리 중에 두 번째로 유의미하게 남아있는 게 있다.
- 남자들은 여자에게 절대(?) 커피 한 잔도 공짜로 사주지 않는다. 뭐 사준다고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가지 말아라.
고이 키운 큰 딸이 사회생활 시작했답시고 아무나 만나고 다닐까 봐 내심 불안했던 엄마는 이런 말로 나에게 겁을 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약발이 오랫동안 먹혔다. 남자들의 호의에 경계심부터 들어서 첫 만남에서 썸으로 넘어가기까지 매우 소극적이었던 거 같다.
한데 지금은?
누가 나 밥 좀 사주면 좋겠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