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배경 바꾸기
코로나가 횡행하던 시절, 회사에서 전 직원을 반으로 나누어 원격 교육이 있었다. 본사 주관의 의무교육이라 누구도 예외 없이 집에서 줌(Zoom)으로 접속해야 했다.
재택근무는 PC에 얼굴이나 집을 노출시킬 필요 없지만, 이 교육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같은 화면을 보는 사람들이 내 상체와 우리 집 한쪽 배경을 들여다보게 되는 상황.
그래봐야 지극히 적은 면적이겠으나, 전 직원의 절반에게 우리 집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줌이 제공하는 가상 배경을 내 그것으로 삼았다.
나 같은 사람이 몇 있었는데, 짓궂은 진행자(인사부장님)가 시작 초반에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배경 속 장소가 어디인지 맞히며 재밌어했다. 분위기를 풀려는 의도였겠지만, 아뿔싸. 나 지금 별나라에 있는데! 이제 와서 바꾸기도 뭐 하고, 사형수의 심정으로 인사부장님 놀림에 기꺼이 응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후 두 번째 줌 교육이 있었다. 이번엔 팀장급들만 참여했고 외부 강사가 강의를 맡았다. 첫 교육 때 제대로 놀림받았던 일이 떠올라 더 이상 가상 배경을 쓸 수 없었다. 집안의 벽이란 벽은 다 훑고 다녔다.
결국 거실이 제일 만만했는데, 노트북 카메라에 비친 나의 배경은 칙칙함 그 자체였다.
사실 남들은 별 관심 없을 것이다.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이상하지 않으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문제는 나였다. 보이는 것에 유난히 신경 쓰는 성격이라 이 상태로 놔둘 수 없었다.
결국 시트지를 붙이기로 했다. 쿠O에서 검색하니 수백 개가 쏟아졌다. 그중에서 가장 감각 있어 보이는 걸 골랐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한다 — 이건 나의 또 다른 성향이다. 접착제가 발라있으니 잘 자르기만 하면 되는데, 손은 느리고 요령은 없어서 교육 전날 자정 넘어서까지 낑낑댔다.
그래도 결과는 200% 만족!
산뜻한 배경 덕분에 교육도 무난히 마쳤고, 그 뒤로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제일 예쁜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일은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성공한 덧칠로 남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덧방에 가깝지만, 오늘 글감이 덧칠이니 이리 이름 붙이련다.
오늘 하루 틈틈이 ‘덧칠’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학창 시절 미술을 지지리도 못해서 그림 그릴 때마다 고역이었는데, 만약 무작정 덧칠만 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좀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색칠된 위에 새로운 색을 입히면 두 색이 어우러져 의외의 색이 나온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느껴지는 기대감, 설렘이 또 다른 색을 입히는 동력이 되고,
최종 결과물이 만족이든 아니든 덧칠, 즉, ‘보완’의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을까.
몇 해 전, 잘 보이고 싶은 욕심 하나로 썰렁한 벽에 시트지를 덧붙인 작업이 그랬듯,
반복되는 삶의 어느 한 귀퉁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보고 변화를 갖다 보면 뜻밖의 행복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당신의 삶에도 덧칠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주저하지 말고 붓을 들어라. 그 덧칠로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서 제법 그럴듯한 역작이 나올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