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보다 격리 좋아하는 편
보통 무균실이라 하면 외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된 공간을 말한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가 감염 없이 회복할 수 있도록 보호받는 곳.
근본 치료는 밖에서 받지만, 병을 이기려면 치료실과 무균실 둘 다 필요하다.
몸이 아플 때뿐 아니라 마음이 그럴 때도 무균실과 치료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는 다시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덧나지 않게 보호해 줄 무균실은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그런 곳은 거실 원탁인데 마침 오늘, 일과 마치자마자 어서 원탁 앞으로! 를 외쳐야 했다.
오전에 상사와 ‘또’ 의견 대립이 있었다.
한 팀원이 OOO 심사에 필요한 자료라며 IT부에 다운로드를 요청하는 문서를 상신했다. 우리가 시스템 내부에 접근할 수 없으니 권한 가진 부서에 요청한 것.
달랑 한 건이고 복잡한 일도 아니어서 이견 없이 승인했고 부서장 결재가 남았는데, 이 분이 나 아닌 팀원을 부르더니 불필요한 요청 아니냐는 식으로 추궁했다.
그분 논리에 일면 맞는 부분도 있지만, 이 일로 두 시간을 매달린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처럼 크게 상처받지는 않는다는 것. 자주 겪다 보니 맷집이 세진 거겠지. 언제부턴가 웬만한 일로는 상처받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덜 상처받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짜증이 솟구치면 잠깐 핸드폰으로 딴짓하거나 내 상태를 모르는 동료와 시시한 말장난을 한다. 그러면 한결 가벼워진다.
상사와의 잦은 생각 차이, 거기서 오는 대립으로 어딘가 어색한 관계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이면, 그리고 근거와 경험이 있으면 아래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굴복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로 결심한 게 있다.
이 피할 수 없는 갈등을 만성 바이러스로 여기기로. 그리고 감정 무균실을 통해 바이러스에 취약해지지 않도록 나를 잘 관리하기로.
이 글 마치는 대로,
오늘의 시달림을 털어내기 위해 감정 무균 상태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