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소중한 평범

휴가였는데, 휴가여서...

by 정은유


모처럼 휴가였다.


날도 선선해졌겠다 읽고 싶은 책 하나 들고 카페나 가볼 생각이었다. 여름 내내 덥다는 핑계로 “집 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두문불출했으니 이제 슬슬 나가도 되는데, 망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니 못하고 하루가 갔다.






토요일 오후, 잠깐 졸다 깨서 휴대폰을 집었는데, 뉴스 알림에 낯선 단어 뒤로 ‘화재’가 보였다. 국가자원? 여기가 어디지, 정부기관 중 하나인가 본데 생소하여 그러려니 했다. 몇 시간 후, 재난문자가 떠서 보니까 국가자원 화재로 중단됐던 119 신고가 정상화되었다 했다. 전국 전화 119가 멈출 정도의 화재였다니, 그제야 뉴스를 찾아보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불이 나서 정부 시스템 수 백 개가 장애란다. 서버 여러 대가 타버렸다니 큰일이 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때부터였다. 휴가 붙여놓은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과 평안함의 주파수가 순식간에 카오스로 바뀐 것은. 정부기관 화재는 금융기관인 우리 회사에도 직격탄을 날릴 것이고, 대고객 서비스가 주 업무인 나는 이 사태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나절에 부서장과 팀장들이 들어있는 단톡방이 들썩했다. 다른 회사들이 발 빠르게 앱에 띄워놓은 공지사항을 공유하며, 우리 사정에 대해 얘기 나눴다. 대책도 세워보았다. 한데, 비대면 거래에서 제일 중요한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을 못하는 상황에서 나올만한 차선책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월요일에 휴가인데 쉬어도 되나, 취소하고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도 내 휴가 가지고 말한 사람 없지만 자진해서 휴가 취소를 알리는 게 맞을 거 같았다. 단체 대화가 일단락되어 조용해진 카톡창을 열었다. 조심스레 몇 글자 치다가 얼른 지웠다. 상황을 좀 지켜보고 일요일에 결정하기로 했다.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내 모든 관심과 에너지가 뉴스로 쏠렸다. 월요일 휴가의 취소 여부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재난으로 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아무 저항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게 무기력하고 참담해서였다. 쉽게 복구될 상황이 아님이 확인될수록 결론이 분명해졌다. 이럴 줄 모르고 휴가 낸 거고, 내가 나간다고 달라질 것 없을 테니 일정대로 쉬기로 말이다. 휴가자에 대한 배려는 아닐 텐데 토요일 이후로 카톡방은 조용했다.



종일 하릴없이 빈둥거리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발 동동 구르는 강아지처럼 갈피를 못 잡았다. 살면서 오늘처럼 한 주제로 많은 기사를 찾아본 적이 있었나 싶다. 그 와중에 마음이 좀 놓이는 내용도 있었다. 정부24 접근 방식에 따라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에 문제없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 회사가 여기 속할 수도 있으니 너무 비관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 최대한 일찍 출근해서 오늘 못 챙긴 거까지 잘 살펴야겠다.






지금의 혼돈은 평소 가볍게 생각했던 일들을 나만의 시선 즉,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는 특별한 성과나 비범한 사건만을 의미 있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뉴스 화면을 뒤덮는 스캔들이나 대단한 업적이 있어야만 이야기가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매일 아침 전산망이 켜지고, 119 신고가 정상 작동하며, 고객의 신원 확인이 문제없이 이루어지는 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과가 그 어떤 것보다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엔 안전의 중요성을 모르다가 무슨 일이 생겨야만 호들갑을 떤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다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당연하게 누리던 평범한 일상이 실은 이토록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었다는 걸 또다시 깨달았다.



우리 모두 이번 사건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일상의 질서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유지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질 때 삶이 얼마나 쉽게 혼돈에 빠질 수 있는지를.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평범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더 성심껏 준비하고 노력하길 바란다. 하루를 지탱하는 평범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비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시절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