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던
미술 영역은 잘 모르고 그다지 관심도 없지만, 유독 수채화는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기분이 든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교정이 참 예뻤다. 5월이 되면 교정 배경으로 사생 대회를 했는데, 그림에 절대적으로 소질 없는 나는 대충 시늉만 내고 다른 애들 그림 구경하기 바빴다. 눈이 즐겁다는 말을 태어나서 이때 처음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배경이 좋으니 어떤 장소를 대상으로 삼든 멋진 표현이 가능했다.
반에 진짜 잘 그리는 애가 있어서 그 애 옆에 앉아서 대놓고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4B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더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붓을 물에 적신 후 물감을 묻혀 쓱쓱 싹싹, 거칠었다가 신중했다가... 동급생의 붓 터치가 너무 화려하고 멋있어서 한참을 넋 놓고 보았던 것 같다.
그 아이의 팔레트가 나의 것과 사뭇 달랐던 것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가 보아도 그림 좀 그려본 사람이라는 티가 확 나는 그런 팔레트. 내 것은 정반대였지. 한 번 쓰고 오면 그날 바로 깨끗이 씻어서 싹 말려놓고 다음 수업 때 새것처럼 들고 갔다.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사람한테 나올 수 없는 패턴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 것은 아니었다. 새하얀 물감판 위로 온갖 다양한 색이 차곡차곡 각자의 칸에 자리하고서는 어떤 색은 잘 안 썼는지 딱딱하게 굳어버려 물로 녹이기 쉽지 않아 보였고, 어떤 건 중앙 넓은 공간에 뽐내듯 배치되어 있었다. 한 편의 수채화 같기도 한 것이 그 모습 그대로 작품으로 전시되어도 좋을 거 같았다. 뛰어난 그림 실력만큼이나 손때 묻은 팔레트가 부러웠다면 과장일까. 살면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팔레트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림 그리는 일과 글 쓰는 일은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바탕이다. 미술에서 팔레트가 필수이듯 치열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감정과 사유의 팔레트가 필요하다.
몇 달 전부터 매일 글감을 받아 글을 쓰고 있다. 화려함보다 은은한 다정함으로 주어진 원고지를 채우고 싶다.
나만의 글쓰기 팔레트에도 경험과 깨달음의 물감들이 섞여 진솔한 색으로 남기를.
실패와 방황의 순간까지 그 안에 스며들어 내 영혼을 성숙한 빛으로 물들여주기를,
반 친구의 팔레트를 떠올리게 된 이 밤에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