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에 대하여
지난 여름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처럼 한창 까불던 때의 일이다.
지급 파트 4명 중 2명이 휴가라 나와 사원급 직원 둘이서 하루 동안 몇 십억의 돈을 집행해야 하는 날이었다. 부재자가 있든 말든 모든 지급은 전산 시스템으로 처리하니까 문제건만 없으면 바쁘긴 해도 무난히 지나가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희한하게 기분이 싸했다. 막연한 긴장상태와는 다른 느낌의 그것.
늘 해오던 일이고 똘똘이(사원급 직원을 애칭 삼아 똘똘이라 부른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면서 커피 한 잔 들이켜고 털어냈다. 실제로도 그런 줄 알았다. 1시간 후쯤, 대박 사고를 치게 될 줄 모르고.
오전 내로 지급해야 하는 건들 하나씩 결재하고 있는데, 창구에 있는 똘똘이한테서 다급히 메신저가 왔다.
“팀장님, 송금이 안되고 자꾸 오류가 나요!”
“응? 갑자기 왜 그러지, IT에 확인 요청해~“
대수롭지 않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럴 때가 훨씬 많으니까. 그리고, 오늘만큼은 필시 그래야 한다고!
우리 부서 바로 옆에 IT가 있으니 돌발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서 좋다. 메신저로 말하기 답답한 내용이거나 심각한 일이면 쫓아가면 되니까 웬만한 일에 지레 겁내지 않는 편이다. 이번도 마찬가지.
몇십 분 후 똘똘이 이름의 메신저가 다시 깜박였다.
‘팀장님, 지금 송금 시스템에서 장애 났대요, 제가 연락할 때까지 A 대리님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상황 말하니까 확인해 본대요.“
”아 그래... 알겠어...“
이 대답 말고 덧붙일 말이 찾아지지 않았다. 일단 기다려야지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다시 몇십 분 후, 이번엔 내가 똘똘이를 찾았다. 한 시간 전의 싸함이 혹시 과학이었던 건가. 마냥 기다리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적 느낌.
”OO 씨, IT 연락 왔어?“
”아니요ㅠ 메신저 보냈는데 대답 없어요. 안 읽고 있어요“
”응 그럼, 한 번 더 연락해 볼래? 송금 늦어지면 고객들 연락 올 텐데...“
”아, 네!“
이러는 사이 10시 반이 넘었지만 아직 여유 있으니 다른 일하며 초조함 달래고 있던 중에 작업표시줄에 똘똘이 등장.
”팀장님, A 대리님이 아니라 B 차장님한테 메신저 왔는데, 20분쯤 전에 C 차장님한테 회사 전체 송금 장애 발생한 거 메신저로 알렸다면서, 공유받지 못했냐고 물으세요. 그래서, C 차장님 휴가라고 말했어요.”
“뭐라고? 지금 우리가 문제라는 건가.. 암튼 살펴보고 있다는 거지?”
까지 치고 엔터키를 누름과 동시에 IT A 대리가 나한테로 보낸 메신저가 조용히 깜박이고 있는 게 보였다. 엉겁결에 마우스를 눌렀고, 똘똘이에게 마저 할 얘기가 있어서 모니터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 채 몇 마디 더 치고 엔터키까지 야무지게 때리고서 고개를 든 순간...
오 마 이 갓 !
왜 A 대리 이름이 내 앞에 보이는 거지?
똘똘아, 넌 어 디 있 니... @.@;
서너 달 전이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는데 (아, 솔직히 말하면 애써 지워버린 기억이다.)
어휴, 우리 무대뽀 IT 님들 어쩔...ㅋㅋ
이라고 했던 것 같다.
대고객 업무에 관련된 전산장애를 전체 공지도 아니고 직원 한 명한테 그것도 하필 휴가자한테 메신저로 알려놓고 그걸로 할 일 했다고 여긴 건가 싶은 답답함에 나온 푸념이었는데,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심장 벌렁대는 걸 애써 외면하며 <메시지 편집>을 시도했지만, 그 사이에 읽은 상태로 바뀌어버리는 거지. T.T. 어쩔 쏘니 이 일을...
(그때 IT 운영팀 팀장님한테 들은 바로는, 장애가 몇 분 내로 해결될 걸로 보여서 전체 공지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고,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지 않길래 우리가 연락하기 직전에 전체 공지 준비하려 했다면서 사태 인식을 건성으로 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듣고 나니 충분히 이해될만한 부분이었다. 결론은, 내가 문제였다.)
미안하다 사과했고 괜찮다는 대답도 들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실수이고 사고라 부끄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다음 날이었나, 편의점 갈 일 있어서 들른 김에 통에 든 다크초콜릿 하나 사서 건네주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같은 층에서 일하니 복도나 화장실에서 그녀를 종종 만나는데, 고맙게도 아무 일 없는 듯 인사 나누며 지낸다.
옛날부터 잊을만하면 한 번씩 메신저 실수를 해왔다. 성격이 급해서인지 조심성이 부족한 건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계기로 다시 한번 각성하기로 하자.
메신저는 꼭 필요할 때, 필요한 얘기만.
엔터키 누르기 전에 상대방 이름 꼭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