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이지 말입니다.
다시 잔금이다. 지난주에 얘기한 적 있는, 불타는 금요일 말고 잔잔한 금요일 그거 말이다.
일주일 잘 견딘 보상이라도 받은 듯 퇴근 발걸음이 이렇게나 가벼울 일인지, 한 손에 먹을거리 그득 담긴 종이가방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서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잔금의 힘이 이리도 강력하다.
레몬맛 나는 무알코올 맥주 한 캔 따서 와인 잔에 따르고, 전리품 전시하듯 가방 속 음식들을 비닐만 뜯어 고대로 식탁에 펼쳤다. 백화점 지하 푸드 코너에서 마감 세일로 사 온 떡볶이와 튀김, 반반 만두(고기 반, 김치 반)가 그 어떤 황제의 만찬보다 훌륭했을지 모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뒤에 어김없이 찾아온 쓰기의 시간. 으아, 오늘은 조금 아니, 솔찬히 꾀가 났다. 배도 부르겠다 밤새 놀기만 해도 좋을 텐데 이런 날에도 할 거 해야 하다니 잔뜩 오른 흥이 풍선 바람 빠질 때처럼 허무해져 버렸다. 어, 저기, 허무한 건 허무한 거고 말은 바로 하자. 글 쓰는 거 빼먹지 말라고 강요한 사람 없는데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 안 되지. 스스로 규정한 것에 상황 탓은 금물.
과식이 부른 식곤증 때문인지 슬슬 눈이 감기는 게 온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 몸이 어느새 소파 위에 있었다, 잠들었다 눈 뜨니 자정이 넘어버렸고, 들뜬 기분도 차분해졌다. 밤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시간대만큼 고요한 비장함이 또 있을까. 모두가 잠든 시각, 조용히 새 날 맞을 준비를 하는 이 시간대의 그것 앞에서 나도 덩달아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글쓰기 하면서 얻은 좋은 점 중 하나는 ‘자기만족의 허와 실’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것 아닐까 싶다. 순간의 유희에 가득 찼다가도 차갑고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면 금세 비어버리는 마음, 그 허전함까지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진짜 자기만족이란 그래서 찰나의 충만보다 그 뒤에 남는 공허까지 껴안고 나아가는 힘인지도 모른다.
궁극의 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제하고 단련하는 것, 글쓰기가 주는 영향력이 이 정도였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매일의 글쓰기가 나를 다시 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