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나치 놈들!

<퓨리(fury)> , 2014

by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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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쟁터라는 야만의 땅,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곳에 섰는가? 무엇이 그들을 몰아넣었는가?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그곳에 남은 것은 짐승과도 같은 격한 분노와 시체 덩어리 뿐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전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위대한 혁명과 철학이 만들어낸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철저히 짓밟는 인류의 전통, 바로 전쟁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전쟁터에 선 이들은 국가를 위하여 발을 들였겠지만 이젠 동료를 지키고 살리기 위하여 충분히 슬퍼하며 그리고 또 그렇게 많이 잃어가며 총을 손에 쥔다.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전우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인간임을 포기하게 한다. 전우를 살리려는 인간의 마음과 적에 대한 증오심과 살해, 인간과 짐승이 공존하는 것이다. 언제나 전쟁은 인간의 말살을 가져온다. 죽이는 자든 죽임을 당하는 자든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인간임을 잃는다. 인간임을 상실한 그에게는 도덕 원칙이나 의무론적 도덕 관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더 많이 죽이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진다. 전쟁은 바로 이것을 노리는 것이다. 인류의 적인 전쟁은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빼앗아 아무 존재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려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다. 극적이면 극적일수록 철저히 무너지는 인간을 바라보며 조롱한다. 다른 인간에 대한 적의와 격노만 남아 짐승과 같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 전쟁은 그것을 원한다. 마치 인간의 타락을 원하는 악마처럼 말이다.

'퓨리(fury)'라는 전차에 탄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어떤 이유로 참전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을 삶에 묶어두는 것은 전우라는 것. 전우를 위하여 기꺼이 인간임을 지켜내며 인간임을 포기한다. 그들은 전우를 지키기 위하여 살아남아야 하고 죽여야 하며 죽어가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인간을 죽인다니, 정말 모순적인 상황아닌가? 전쟁은 그런 모순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모순이야 말로 인간의 행동과 철학의 상반됨을 보여주어 인간 이성의 참패를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모순이야말로 또 다른 인간성이다. 어떠한 짐승도 동료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동료를 생각하는 고차원적인 이해와 사랑으로 희생한다. 자신의 생명을 죽이고 전우를 지켜낸다.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에서도 전우애라는 사랑이 이겨낸다. 그래서 결국 인간성은 살아남는다. 비록 죽음이 가득하더라도 사랑만은 남아있는 곳이 전쟁터이다. 우리는 결국 알 수 있다. 전쟁이 모든 것을 죽이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 어떤 전투에서도 전우애는 남아있다는 사실을.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다른 인간성 혹은 사랑 또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바로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영화 <퓨리(fury)>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꼽자면 바로 '바이블'인데 바이블은 성경을 의미한다. 이 인물은 순전히 종교적인 인물이다. 성경 말씀대로 자신이 희생을 위해 나서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더 집중하여 볼 것은 '바이블(성경)'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상징이다. 전차 '퓨리'에 탄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가 히틀러도 사랑하냐 질문하며 처한 현실과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예수의 사랑을 의심한다. 그러나 '퓨리'만 남았던 그 전투에서 바이블은 읊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결국 전차 '퓨리'는 다른 전우들을 위하여 한몸을 던져 악으로 묘사되는 독일 나치 친위대를 처단했다. 그리곤 전차 '퓨리'는 사거리 한 가운데서 멈춰섰고 그 길을 다른 동료들이 지나갔다. 사거리는 마치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퓨리는 예수의 희생을 의미하듯이 남겨져 있는채로 줌 아웃되며 말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퓨리가 따랐다는 듯이.

인간은 죽었지만 인간성과 사랑은 살아남았기에 결국 전쟁은 완전히 실패했다. 인간의 말살은 오히려 인간성을 부각시켜주었다. 학살 속에 두드러지는 전우와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 그것을 죽음으로 값을 치루더라도 해내는 인간의 신념. 영화 <퓨리(fury)>는 이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다. 모든 죽음에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숭고해진다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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