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Dunkirk, 2017)
* 스포일러 없습니다
'컴앤씨(1989)'와 '스탈린그라드(1993)' 이후로 전쟁 영화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할리우드식 전쟁 영화로 입문했지만 엄청난 화기 아래에 놓인 인간을 보는 순간 허무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특히 '컴앤씨(1989)'는 고어 영화로 더 알려진 만큼 참사를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그 이후로 한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유흥거리로 보는 것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죽어갔던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웅을 추앙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개인이 어떻게 죽어갔고 그 순간이 얼마나 허무했으며 어떻게 처절히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전쟁을 산업화하지 않는 영화의 도덕이라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덩케르크'는 매력있는 영화이다. 보통 인간의 내면을 그린 영화들은 화려함이 비교적 줄어들 법한데 '덩케르크'는 어느 정도 시각 효과를 잡으면서 인간의 눈빛을 잘 잡아냈다. 알지 못하는 동료라는 관계가 눈빛을 더욱 발하게 하는 장치일 것이다. 인간의 눈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흰자위가 더욱 크고 홍채가 작은데, 눈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것이 원시 인류가 언어 없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이었다. 이런 원시 인류의 소통 방법이 전쟁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그 상황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성적 과정을 생략하고 본성만으로 살아남는 것은 참 잔인한 감동인 것 같다. 놀란 감독이 이런 의도로 설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은 '덩케르크'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화려한 연출을 중시하는 편이라면 다소 심심한 전쟁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영국군의 전투 역량보다도 생존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투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할리우드식 연출을 기대했다면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만족스러운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덩케르크'가 개봉 직후에는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또한 처음 보았을 때는 감독이 어디에 초점을 두었는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는데 두 번째로 보았을 때는 눈빛을 읽게 되니 숨통이 조였고 세 번째로 보니 의미심장한 눈빛과 표정, 심장 박동 같은 배경 음악을 읽게 되어 숨이 막혔다. 보면 볼수록 많은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되는 영화이다. 볼 때마다 배우들의 눈빛에서 더욱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말로 딱잡아 이야기 할 수 없지만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아듣는 미묘한 감정들 말이다. 내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얼마나 감정을 대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배우의 표정연기를 좋아한다면 확실하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죽음의 사선에 직면한 사람들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들, 어쩔 수 없이 내몰아야 하는 감정,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감정 등 전장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감정들이 담겨있다. 군인을 객체화하지 않고 살고 싶은 인간을 보여준다. 유능한 군인을 선망하지 않고 무능한 군인을 탓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것에 축하하고 고맙게 여기는, 어찌보면 마음이 편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진심으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군인들에 경의를 표하고 그들이 결국 모두 평화를 맞이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