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도 미친다

<컴 앤 씨> (Idi I Smotri, 1985)

by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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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무희이다. 총과 칼을 들고 춤을 추는게 그리 멋있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무희와 사랑에 빠졌고 백사장에서 총을 찾았다. 외삼촌이 더러 말해왔었지, 총을 찾지 말라고. 푸르른 소년의 눈동자에는 오직 무희만 있었다. 화기의 굉음은 소년의 심장박동이었고 불꽃은 소년의 열정이었다. 그렇게 총을 찾아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더러 우시며 말했다,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소년은 우는 어머니에 안타까움과 성가심을 담아 쳐다봤다. 이미 소년은 결심했기 때문에 찾아온 소련 군인을 따라갔다. 회색빛과 어울리지 않는 초록 들판 위에서 어머니가 동생들을 안고 마차를 쫓았다. 마지막일줄 모르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달렸다. 어른이 된 것같은 앳된 소년은 큰 바지를 질질 끌며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들은 웃으며 인사하는 소년을 아니꼽게 바라보곤 궂은일을 시켰다. 전장에서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소년이 포기하는 것을 내심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소년은 그곳에서 어떤 소녀를 보았다. 주변 남자들의 꽃을 받고 손길을 받는 금발에 초록 눈빛 소녀, 소년은 소녀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소녀는 소년에 받은 꽃을 뿌려주었다. 희고 작은 꽃이었다.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같기도 하고, 명복을 비는 행위 같기도 하다. 그러던중 소년은 전장에 나서게 되었다. 줄을 맞춰 자신의 키만한 총을 겨우 다루며 늪을 밟아 나아갔다. 하지만 결국 앞서던 동료를 놓친 소년은 혼자 길을 개척해 나가게 되었다. "와그작" 그러던 도중 밟힌 새알, 썩어 이미 파리가 꼬여있었다. 제대로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썩어버린 것,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소년은 불쾌한 눈빛을 보였지만 그 속에서 동질감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전쟁터에 나선 순간부터 영혼은 썩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행스럽게도 숲속에서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소년을 데리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소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소년에게 웃어주기도 도발하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하며 소년을 잔뜩 조롱했다. 소년이 감추어놓았던 감정 모두를 안다는 듯이, 초록빛 눈에 광기가 들어섰다. 무서울 만큼 초록빛이 클로즈업 되고 동공은 작아졌다. 소년을 잡아먹을 준비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던중 갑자기 하늘이 죽음을 선포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독일 비행기에서 군인들이 쏟아져 내려온 것이다. 폭탄이 떨어지고 잠시나마 잠을 붙였던 집들이 초토화 되었다. 일제히 불길에 휩쌓이고 먼지안개가 자욱히 들어서자 소년과 소년은 달렸다. 그리고 집으로 되돌아가면서 모든 일을 청산하고, 거부하며, 악에 받친 삶을 시작한다.

<컴 앤 씨>는 제 2차 세계대전 시대를 살아가던 소년의 시선을 대변하는 영화이다. 소년의 관점에서 처음 접한 참사와 공포, 상실을 그리며 투쟁을 말한다. 가족, 동료, 동족에 닥쳐오는 독일군의 총알은 소년을 분노 서리게 하기 충분했다. 차례차례 죽어가는 소중한 것들, 인간으로서 잃는다는 것에서 나오는 허탈함, 분노, 광기, 슬픔. 어린 이는 폭탄이 떨어지던 그곳에서 죽었고 죽었어야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애송이가 미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경험하기 전에는 총칼을 든 군인이 멋있어보였겠지, 그리 전쟁터에서 마케팅을 하기도 하지만 위력감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호전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본 전쟁은 무희였고 가까이 가서야 춤 따위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이마에는 노인의 분노가 주름지고 스스로 소년이기를 버렸다. 온몸으로 맞서 싸우고 도망치고 분노하고 표현한다. 마지못해 소년은 미쳐버렸다. 고작 십 수 년 살아온 주제에 죽음을 알고 남을 밟고 살아남을 줄 안다. 동료가 죽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 노련한 군인이 되는 법을 배웠다. 찡그려지는 눈썹에서 잡다한 감정들이 빗발치고 항상 작아져있는 동공은 매섭기 짝이 없다. 그것은 아마 한(恨)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격양하여 진심으로 총을 쥘 수 없을테니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컴 앤 씨>에는 소년을 잃어가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는 존재가 있다. 아마 이 영화를 가장 난해하게 만든 포인트일텐데 바로 소년과 함께하던 소녀이다. 사실 영화에 소년과 소녀가 소통을 한 장면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소녀가 일방적으로 소년을 찾아가서 헛소리를 하고 조롱한다. 그러곤 갑자기 사라졌다가 위기가 끝나면 찾아오는데 결국 모습을 감춘다. 그녀의 마지막 등장은 소년이 그로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집(섬)에서 였다. 그 곳은 개연적으로 가족을 찾기 위해 도달한 곳이지만 몸부림치는 인간으로 각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각성한 그를 소녀는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고는 사라지는데, 소녀는 이 영화 상에서 소년의 순수함, 영혼, 어리석음, 어린 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사라지고 등장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 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게 당연해진다. 그녀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무서워 사라졌다가 긴장이 풀리면 어린 본성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년의 작은 마음이자 본성이라면 잔뜩 조롱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뜨리는 것도 용인된다.

전쟁은 영웅과 희생을 가장한 잔인한 인간의 가면무도회이다. 그 가면으로 인간을 현혹시킨다. 절대 속에 어떠한 총칼을 숨기고 있는지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 진정한 속내를 보는 때라면 인간이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일 것이다. 이 속내를 <컴 앤 씨>는 가장 보여주고 싶었다. 소년을 가장한 어리석은 인간이 전쟁을 통해 발견하는 죽음의 순간들, 가장 순수한 영혼이 극으로 몰리는 현실을 말이다. 전쟁의 현실에서 순수함은 버려지고 시체 덩어리만 남는다. 혹은 즐거움과 분노를 표방하는 대학살극이 남는다.

결국 전쟁을 통해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에게 남은 것은 살인과 시체 뿐이다. 합리화 되는 살인에 대하여 세계는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컴 앤 씨>는 이 점을 꼬집는다. 전쟁의 참상을 은폐하는 세계에 대하여 진실을 목도할 것을 말한다. 인간에게 남은 것은 살인과 시체 뿐이다. 인류의 전쟁은 화기의 발달과 함께 단순히 전쟁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인간성을 말살하겠지만 점점 더 그것을 합리화하게 될 것이다. 살인의 효율과 효과를 증대하기 위하여 화기가 발달하고 그것이 용인되어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쟁 영화는 폭로한다. 영웅, 희생, 군인이라는 성역으로 전쟁을 그려넣어 미화하고 온갖 종류의 폭력을 감추며 유흥거리로 소비하는 세상에 향하여, "와서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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