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만큼 중요한 건 상대가 듣고 싶도록 '잘 말하는 것'이 아닐까
경청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물론, 그 말에 깔린 내면의 동기와 정서에 집중하여 이에 공감하여 듣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지금까지도 본인의 장점을 어필하거나 자기소개서의 항목을 쓸 때도 '경청'이라는 미덕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경청은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는 걸까? 필자의 생각에 경청은 상대에 대한 애정의 표현임과 동시에 원만한 관계를 쌓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상대를 위한 태도인 것이다. 물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경청하여 그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도 상대를 위한 행동을 취해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이니 첫 시작은 결국 상대를 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경청하는 자세를 미덕으로 여기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말을 끊지 않는다, 부정적인 리액션은 안된다.. 등등 다양한 처세술과 자칭 인생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화에서 듣는 사람의 태도에 집중하여 이야기하곤 한다. 필자는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왜 듣는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걸까. 왜 상대가 듣고 싶도록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잘 말해야 하는지의 방법은 드문 걸까. 그리고 생각했다. 말하는 사람에게도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미덕이 필요하며, 경청만큼 중요한 건 상대가 듣고 싶도록 '잘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의 가족사항부터 좋아하는 음식까지 이야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물어보지 않았고, 필요하지 않고, 앞으로 유용하지도 않을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지식에 심취해 정보를 쏟아내는 사람. 둘의 공통점은 바로 함께 대화하기가 버거운 사람이란 것이다. 충분히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마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화법은 사람을 굉장히 대화하기 지치게 만든다.
사람들이 보기 좋고 읽기 쉽게 몇 번을 수정하고 편집하는 글처럼, 말을 할 때도 상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 싶은 말과 필요 없는 말을 구분하여 논리 정연하게 편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하지 않은 정보라 여겨지면 과감히 넘긴다. 같은 영상이나 글을 보더라도 끝까지 보는 사람이 있고 본인이 보고 싶은 장면 글만 보고 나머지는 휙휙 넘겨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 없는 말을 계속 듣고 있으라 하는 것은 마치 유튜브 광고 10개를 몰아보는 것처럼 지루한 일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청자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기 전, 한 번만 화자(나)의 태도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간혹 "넌 남의 말을 안 들어", "넌 남의 말을 들을 줄 몰라" 라며 청자의 태도에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청자에 따라 정말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이야기를 듣지 않고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면 한 번만 생각해보자. 내가 말을 듣기 좋고 편하게 정리하여 이야기했는지, 오히려 청자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은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