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야 사는 삶

삶을 더 우아하게 만드는 사소함에 관하여

by EURA


안녕하세요 티스푼씨 오늘은 당신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거예요.

우쭐해할 건 없어요. 그냥 당신이 궁금했어요. 늘 처연한 자세로 어딘가에 놓여져 있는 당신을 보면서 꼭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거든요.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동정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알고 싶어 졌어요. 우선,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 별다를 건 없어요. 날이 좀 풀려서 테라스 자리로 종종 외근을 간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에요.


그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궁금해요.


- 글쎄요, 뭐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매일 아침 프랑스인 치고 꽤나 꼼꼼하고 깔끔한 우리 주인은 우리 티스푼들을 모두 모아 마른행주로 박박 문질러줘요. 간밤에 먼지라도 들었을까 그러는가 본데, 사실 뭐 그다지 다를 건 없죠. 그래도 주인 나름의 의식이니까 존중해요. 그리고는 다시 서랍장에 놓아두고 손님이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우리 중에 한 명을 집어 내놓는 거죠.

그러면 손님의 기호에 따라 다르지만 설탕을 드시는 손님을 만나면 난 머리에 설탕을 담아 뜨거운 커피 속으로 들어가서 아주 어지러울 정도로 몇 바퀴 돌아요. 다시 탁자에 놓이고, 손님이 자리를 뜰 때까지 거기 있는 거죠. 때때로 내 머리에 남은 커피나 거품을 입으로 가져가는 손님도 있는데 손님이 미남이면 완전 감사하죠. 개인적으론 콧수염이나 턱수염이 있는 손님이면 더 좋고요. 뭐 가끔 구취가 심한 손님이라고 해도 어쩌겠어요? 그게 우리 직업인데요. 종종카푸치노나 라떼를 시킨 손님들 중에는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은 거품을 드시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땐 우리도 '그래 힘 내보자' 하고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고는 자리로 돌아오죠. 주인이 우리를 다시 데려와, 차가운 수돗물과 자몽향이 나는 세제로 씻겨주고는 카페가 마감할 때까지 뭐 반복이죠.




주로 어떤 커피를 선호하세요?


- 그건 개인차가 있어요. 저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단연 카페 알롱제죠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도 괜찮고요. 그런데 에스프레소는 뭔가 충분히 잠기는 기분이 아니어서 어떨 때는 내가 일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죠. 물론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거품이 있는 까페오레(라떼)나 크렘 혹은 카푸치노류를 더 선호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그 '폭신폭신함'이 좋다는군요. 폭신함은 잠깐인데 말이죠. 게다가 카푸치노류들은 손님들이 거품이 망가질까 봐 우리를 굉장히 조심히 휘젓거든요? 저는 그게 싫더라고요. 뭔가 미적지근하달까. 모르겠어요. 일하는 느낌이 나지는 않죠. 하지만 이건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주어지는 순간에 최선을 다 하고 맡은 일을 즐기는 게 정답이지 않나 싶어요. 아 , 그런데 정말이지 아주 뜨거운 여름의 카푸치노 행은 정말 싫어요. 아우, 그건 상상도 하기 싫네요!!!


이름은 티스푼인데 커피숍에서 일하시는데, 그건 어떠신가요?


-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커피도 넓은 의미에서 티의 일종이고 아무래도 맑은 차에 들어가는 일보다는, 짜릿한 커피 속으로 들어가는 편을 더 선호하거든요.


그 외에도 직업에 대한 불만이랄까? 어떤 게 있을까요?


- 불만까지는 아니지만, 아마 우리 티스푼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거예요. '언제까지 설탕만 나르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죠. 물론 나는 내 직업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어요. 내가 없다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맛있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죠. 우리가 없어도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우리는 '기호'를 보다 섬세하게 제련하는 도 구니 까요. 하지만 역시 서운한 점은 있어요. 사람들은 이 모든 공을 '설탕'에게 돌린다는 점이죠. 인정해요. 설탕의 역할이 중요하죠. 우리는 대체 가능한 아이들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우리들도 모이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야 우리는 뭘까? 우리는 스푼도 아니고 설탕도 아니잖아. 심지어 슈가 스틱도 있는데 우리는 삶의 이유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같은 질문들이요. 사실 그래요. 가끔 일반 가정집으로 간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이나 요플레 용으로 제법 스푼적인 삶을 산다고들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커피숍에 팔려왔거든요.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면 우리는 평생 설탕만 나르며 살겠죠. 운이 좋아 어떤 손님이 우리를 훔쳐가 새 세상을 열어주면 아이스크림이라는 온도 푸딩이라는 감촉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주인님을 생각하면 또 못 할 일이죠.


그렇지만 일반 스푼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도 사명감이 있어요. '우아함' 그게 우리의 소명이고 또 사명이죠. 우리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고 무용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로 거기서 오는 '우아함'이 있는 거죠. 사실 우리의 조상은 영국 왕실이거든요. 아시죠? 영국 왕실에서 인도와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마시기 시작할 때, 우리가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일반 테이블 스푼과는 다른 목적으로 태어난 거죠. 물론 시간이 지나 우리의 상징성이 '계량'으로 변화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적 소명을 잊지 않고 지금 본업에 충실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점이, '설탕만 나르는 지루한 일생'이라는 고민에 대한 위안이 되기도 하고 또 일종의 자긍심을 주기도 하죠.


맞아요, 티스푼은 고급스러움의 상징이었죠. 하지만 요즘 티스푼의 위상이 이전 같지 않은데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뭐 사실 고민 없는 사람과 고민 없는 직종이 어디 있겠냐만은. 사실 커피는 그 자리에서 따뜻할 때 마셔야 제 맛이거든요. 비하의 의도는 없습니다만, 설탕 시럽을 넣는 아이스커피는 커피도 아니에요. 요 전에 설탕이랑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너는 설탕시럽이 설탕이라고 생각해?' 아주 정색을 하더라고요. 설탕들 사이에서도 흑설탕파와 백설탕파, 각설탕파와 가루설탕파가 아주 민감하게 자존심 싸움을 하는데 거기에 설탕 시럽은 어유, 명함도 못 내밀거든요. 그런데, 온도와 향이 생명인 커피에 얼음과 시럽을 부운 커피라니! 그건 커피업계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아주 못 볼 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법 그 난리로부터 안전했던 파리에, 스타벅스가 들끓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된거죠. 아이스커피가 너무 많아요. 물론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 친구들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매일 스팀판에 누워있다더라고요. 손님들이 주로 나무 막대기로 설탕을 휘젓는다구요. 그런데 정말 그건 아니거든요.


설탕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예고 없이 커피에 담기는 거예요. 그들이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은, 제가 틀리지 않다면, 은스푼에 포근히 담겨 아주 정성스럽게 커피잔에 들어가 부드럽게 항해하면서 커피와 만나 녹아들 때에요. 종이 조가리에 들어있다가 대책 없이 찢겨져 뜨거운 커피 속으로 투하되어 나무 막대기로 저어지는 설탕의 삶은,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참 비참한 거죠. 설탕도 격이 있긴 하거든요. 이왕이면 좋은 그릇에 소중하게 담겨 있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물론 우리와 나무막대기씨 사이에 어떤 격이 있다는 건 아니에요. 나무막대기씨도 잘 풀렸다면 어디 가서 젓가락으로 잘 활동하고 계시지 않겠어요?


문제는 바로 '커피를 제대로 마시는 법'에 대한 겁니다. 무분별한 테이크아웃과 격식을 존중하지 않는 프랜차이즈가 우리 직업 자체에 위협을 주고 있어요! 나무 막대기에 얼마나 많은 먼지들이 있을 줄 알고 그걸 소중한 커피에 들이 미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직업이 그렇게 쉽게 대체 가능한 거였나 싶기도 하고. 물론 일반 가정집에서 젓가락을 쓰는 것 정도는 급하니까 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곳은 '커피 전문점'이잖아요. 그런 점은 정말 아쉽죠. 우리 주인님을 흉보는 것 같아 이런 이야긴 좀 그렇지만, 얼마 전부터 우리 커피숍도 테이크아웃을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주인님이 어디서 흉측한 플라스틱 막대를 가져와서는 테이크아웃하는 손님들에게 드리더라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게요,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직업들이 다양한 위기를 맞이하죠. 그 위기를 모면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티스푼 씨만의 계획이 있다면?


-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건 잘 알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게 될 것들은 사라져 간다는 것도 많이 목격했고요. 가장 가까운 곳에 주전자 형님이 그렇죠.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전자 형님은 우리 세계에서 상징적인 분이셨는데 전기포트가 각 일반화되면서 형님이 계실 곳이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점점 형님을 만드는 회사도 사라지고요. 그래도 티팟 형님이나 커피 주전자 누님은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외모도 출중하셔서 아직까지는 제 위치를 가지고 계시지만요. 아무튼, 다시 말해, 우리 커틀러리계에도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다양한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기도 하죠. 스푼과 포크가 합쳐진다거나 (개인적으로 혐오해요 이건 토끼귀를 한 곰과 다를 바가 없다고요!) 나이프와 포크가 합쳐진다거나 하는 일들이요.


제가 싫어한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죠. 이유가 있는 변화고 이유가 있는 개혁이니까요. 스푼도 아닌 데다가, 별 쓸모도 없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마 나무 막대기로 커피를 저어 마시는 순간과 우리로 커피를 젓는 데에서 느껴지는 '감정적인' 차이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미묘한 감정의 차이가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거고요. 우리는 삶의 풍요로움에, 다시 말해 사소한 삶이 더 우아해지는 것에 굉장한 기여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에 충실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더 반짝여야 하고 누구보다 더 매끈해야 하죠. 그래서 우리 주인은 늘 아침마다 마른행주로 우리를 닦으시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우리의 직업에 더 자신감을 갖도록 말이에요. 계획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저는 계속 빛나고 싶어요. 진한 커피 속으로 들어가는 뜨거운 순간을 즐기고 싶고, 설탕이 녹아가는 과정을 홀로 지켜보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더 느끼고 싶어요. 그냥 지금처럼 이라고 말하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맛있는 커피와 더 행복한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티스푼씨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 손님 앞에 커피가 놓이면, 손님들은 원하는 만큼의 설탕을 우리 머리에 담아 넣고는 다 저은 뒤에 우리를 테이블에 내려놓아요. 우리를 내려놓는 순간 '딱' 소리가 나고 그들의 커피타임이 시작되거든요. 나는 그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 역할을 하는 게 행복해요. 나는 내 할 일을 했고, 함께 온 손님들은 이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온 손님은 그들만의 커피 시간을 시작하니까요. 그들은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그들이 커피와 하나가 되는 시간을 알리는 알람인 거죠. 그리고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에겐 그 모든 순간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게 티스푼으로서의 삶이죠. 테이블에 놓여진 당신을 보면서, 처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의외로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군요.


많은 것들이 변하고 또 사라지는 시대에, 쓸모없다면 없는 티스푼으로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매일을 보람 있게 보내는 당신을 보니 감동적이네요. 앞으로도 종종 나의 플랫화이트에 담길 당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다음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