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보면 망신, 멀리서 보면 낭만
누구에게나 크게 망신당한 가슴 아픈 추억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수학여행. 1학년 전체가 대강당에 모여 있었고 레크레이션 강사는 각 반의 반장을 모두 무대 위로 소환했다. 그는 각 반의 반장에게 장기자랑을 주문하며 1반부터 차례대로 무대 앞으로 나올 것을 주문했다. 당시 9반의 여자 반장이던 나는 제발 이 순간이 어물쩍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앞 반의 끼 있는 친구들이 좌중을 휘어잡는 댄스를 선보일수록 부담만 커졌다. 내게는 춤도 끼도 없다. 나는 그 둘이 ‘완전히’ 소거된 채 태어난 사람이다.
7반 반장이 무대로 나갈 때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는 남자 반장에게 뭐 방법이 없냐고 다그쳤지만 나보다 더 숙맥인 그 애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도 그래야 했는데…
박수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리고, “9반 반장 나와주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홀린 듯 나 홀로 무대로, 중앙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게 됐다. 고개를 숙인 남자 반장을 야속하게 쳐다보면서
‘이건 책임감의 문제야, 난 우리 반을 대표해야 해, 아무것도 안 하면 욕을 먹을지도 몰라. 나라도 무언가를 해야 해…’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자, 이제 난 나간다!’라는 다짐으로, 단 한 번도 춰 본 적 없는 춤을….
추는 대신 내가 아는 동작 중에 가장 춤과 비슷한 무언가를 시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와 같은 자세로 빙글빙글 무대를 도는 일. 나는 최선을 다해서 힘 떨어진 팽이 같은 속도로 무대 위에서 돌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팽이가 아니었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아직 중력이 날 놓치지 않았을 때, 분명 나갈 때까지만 해도 내 귀에 함성 비슷한 게 들렸던 것 같데 장내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내가 너무 몰입했나? 무아지경? 아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전교생이 아연실색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참담해진 것이다.
그 참을 수 없는 적막과 소름 끼치는 고요를 견디고 딱 한 번만 부끄러웠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두고 두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내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숙연해진 분위기를 살려내라는 내면의 소리였을까? 목소리만 들리고 방법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탓에 나는 입고 있던 핑크색 후드 집엎을 벗어 관객 쪽으로 던졌다. 무대 위 락스타처럼까진 아니어도 영 이상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앞서 말했듯 끼가 없었고 그날따라 집업의 한쪽 팔이 유난히 안 벗겨지는 바람에 타이밍마저 이상해져 버렸다. 한마디로 폭망이었다. 당황해서 어느 쪽을 향해 던졌는지도, 그 이후로 내가 무슨 정신으로, 자리로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오랫동안, 심지어 대학교에 가서 우연히 만나게 된 동창들도 나에게 그날의 일을 되묻곤 했다.
“니가 그때 그 돌은 애 맞지? 근데 그때 옷은 왜 벗어 던진 거야?”
수치심은 거리감의 문제다. 그건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거리감에서 오기도 하고, 내가 추구하는 나와 내가 구현하는 나 사이의 거리감에서 오기도 한다. 누구라도 ‘돌은 애’라던가 ‘무대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진 애’ 따위로 기억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땐 그게 너무 싫었는데 비대한 자아상을 빼고 보니 ‘그 돌아버린 애’ 자체가 너무도 나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당황하면 뱅글뱅글 돌아버리는 사람.
어쩔 줄 모르면 가진 걸 하나씩 내려놓는 사람.
갑자기 튀어나온 의도 되지 않은 어설픈 움직임은 때때로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망신’이라 부른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준비하지 않은 동작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그 순간. 품위를 지키는 데는 확실히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무언가가 제대로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삶이 조금이라도 방향을 틀었던 시점들은 언제나 그 ‘어설픈 발끝’에서 시작되니까. 예기치 못한 발끝은 심지어 자신에 관한 의외의 사실을 알려준다. ‘도는 건 의외로 재밌다.’ 같은.
돌발적으로 보낸 문자, 저질러버린 고백처럼. 내가 망신이라고 믿어온 그 비틀리고 삐끗한 동작들은 내가 몰랐던 나를 알게 해주었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예상 밖의 행동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라는 지루한 세계관 속에서 계속 공전하고 있을 것이다. 가끔은 '타인이 보는 나'라는 허구의 상상을 깨고, '내가 바라는 나'라는 비대한 자아관을 탈출하면서 충만한 부끄러움을 느껴도 좋다.
20년 전에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그 아찔한 순간도, 시간이 흐르니 결국 한 줌의 낭만으로 남는다. 그 이후로 무수히 삐끗하고 궤도를 탈출했던 수많은 날의 나처럼. 앞으로도 나는 어딘가에서 또 비틀거리고, 어설프게 헛바퀴를 돌고 마음껏 부끄러워 할 것이다. 망신인줄 알았지만 낭만인 이야기들을 모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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