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읽어주세요, 어느 잡지의 독백

나를 읽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by EURA





제가 이 서점으로 오기 전 아주 긴 시간을 보낸 곳은 빛도 색도 없는 곳이었어요. 오직 문틈과 창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공기에 배인 향만이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자극이었던 시간들... 어떻게 묘사를 해야 할 지도 난감하네요. 초침이나 시침의 움직임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몇 개의 커다란 공기 덩어리들로서 소화하다 보니 비로소 오늘을 맞이했지요.


물론 그 공기 덩어리들이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니에요. 어떤 것에는 장미꽃 향기가 나는 시간이 있었고, 어떤 것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건조함이 전해져 오기도 했어요. 저에게 계절은 공기의 향으로 느껴졌고, 그에 따라 제 기분도 달라졌지요.


저는 매일 공기 중의 어떤 것들을 호흡하면서 그 날의 형체를 상상하고 또 부수면서 살아갔어요. 매일 내 호흡만큼 느껴지는 향의 감각을 상상력으로 조각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거죠. 그 캄캄한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몰랐지만, 매일을 버티기보다는 느끼고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있다고 믿는 것들, 이를테면 오월의 라벤더, 칠월의 장미를 시각아 아닌 감각적으로 인지하며 살아왔던 거예요.


사실 아주 오랜 시간을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지내다 보면, 아득한 과거에 짧게나마 맛보았던 햇살의 따스함과 명랑함을 마냥 부정하고만 싶어 져요. 만약 아직까지 이 세상에 햇살이 있다면 나만 이렇게 비껴갈 수는 없어. ‘내 세상은 이렇게 어두운데, 저 어딘가에는 햇살이 있다면 억울하잖아’라고 생각하고 싶어 지죠. 저는 그랬어요. 무척 억울했죠. 그래서 지금 난 햇살이 사라진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주문을 걸고 살아왔어요. 때때로 차갑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공기들에 지루해질 때면 제 자신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는 것으로, 저를 읽는 것으로 다시 상상의 힘을 얻었어요.



이런 제 소개가 너무 늦었네요. 저는 Guilde du livre라는 출판사의 월보예요. <<Guilde du livre : Choix d’auteurs contemporains et classiques>>라는 제목으로, 동시대와 고전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출판사의 월보. 저는 1950 년대에 출판된 저와 비슷한 류의 월보 87권과 함께 종이 상자 안에서 살고 있었고 그중 저는 1954년 9월호에요. 이지스(Izis)가 찍은 꼴레뜨(Colette)의 생전 마지막 사진이 표지로 있는데, 1954년 8월 3일, 꼴레뜨(Colette)가 세상을 떠나고 바로 다음 달에 그녀를 추모하면서 발간된 호에요. 세상에 나오자마자 읽힌 적 없는 채로 박스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를 기리고 있다는 나름의 자부심과 각별함이 있어요. 각 호들마다 그 마다의 사건과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저는 꼴레뜨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는 저의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거든요.




막 꼴레뜨의 사진을 표지로 하고 인쇄가 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는,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어떤 생생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겠다는 설렘에 잔뜩 들떴던 기억이에요. 하지만 몇몇 주인을 찾아간 인쇄본들과는 달리, 저는 표지가 펼쳐지지도 못 한 채로 덮여 있었죠. 어느 날 상자로 옮겨져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 갇힌 이후로는 단 하루도 다름이 없는 계속 같은 날들의 반복이었어요. 늘 같았어요. ‘난 이곳에 있다’. 계속 있었어요. 사라지진 않았죠. 날 사라지게 할 만큼 커다란 변화가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오랫동안 제 삶은 그날그날의 공기들을 조각한 상상의 이미지들의 덩어리였을 뿐, 어떤 서사나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지루함이라는 말도 부족한 것 같아요. 매일 빈 백지를 하루 종일 읽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런 제 삶에 서사를 만들어 줄 만한 엄청난 혁명이 일어났어요. 특별한 예감이나 신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어느 날, 갑자기 주변의 공기의 흐름이 바빠졌죠. 매일의 공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저는, 미묘하게 변해가는 그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고 박스 안의 87권의 잡지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를 민감하게 기다렸어요!


들어본 적 없었던 소리가 점점 가깝게 느껴지고, 처음 맡는 향이 공기를 꽉 채우고, 박스 위를 덮고 있던 먼지들이 달싹 달싹거렸죠. 그리고 빛이 들어왔어요. 캄캄했던 시간들의 균열을 알리는 빛이 드디어 들어온 거예요. 그 빛이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과거의 시간을 찢어 새 시간을 알리는듯한 기록적인 순간이었어요. 열린 적이 없었던 문이 열리고, 몇 가지의 인공조명들이 분주하게 우리 주위를 덮치고, 우리는 새로운 공기에 휩싸였어요. 무언가 더 큰일이 일어날 거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죠. 분명한 건 우리 삶에 드디어 사건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 행위는 없이 감각만 있었던 우리의 일상에 엄청난 일탈이 비집고 들어왔고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 우리에겐 ‘혁명’으로 불릴 만큼 중대한 일이 된 거죠.


우리는 누군가에게 들려 동굴 같은 그곳을 마침내 탈출했어요. 생의 가장 격렬한 움직임이었네요. 그렇게 들쳐 나온 세상에는 덮치듯 우리를 습격한 인공조명과는 전혀 다른 빛이 있었어요. 그 빛에는 온기가 있었고, 촉촉했고, 무엇보다 생기가 있었죠. 드디어 햇살을 만난 거예요. 아득히도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직접 닿아 본 적이 없는 그 따뜻한 햇살을 드디어 만났고, 그제야 저는 이해하게 되었어요. 햇살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세상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그 숱한 세월에도, 그는 세상에게 그의 방식으로 온기와 빛을 나눠주고 있었다는 것을. 공기 중에 묻어났던 그 달큰한 아카시아의 향도, 빗물을 잔뜩 머금은 흙이 마를 때 나던 대지의 냄새도 햇살이 전해주는 감각이었던 것을. 결국 햇살이 전해주고자 했던 것은 빛의 감각이 아닌 생명력의 감각이었다는 것을 다시 만난 햇살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어요.


그 햇살을 향기가 아닌 밝기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억울하게 생각해왔지만, 캄캄했기에 오히려 온몸을 열어 다채로운 향을 맡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제게 닿았던 모든 공기에게서 언제나 느껴지던 그 따스함의 감각이 바로 햇살의 기운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니, 보지는 못했지만 늘 함께였다는 생각에 위로까지 되더군요.



제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향기로 햇살을 느껴오다 비로소 떠나온 곳은 Guilde du livre의 관계자였던 Bruno 씨의 집이에요. 그가 퇴사를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 온 더미 중의 일부죠. 상자 속 우리는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뒤져서 찾아야 하는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마치 아주 오래된, 다시 생각할 이유가 없는 기억처럼 말이죠.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 버려져 있던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주인이라고 말할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버려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그저 스스로 고독했고 스스로 외로웠을 뿐이죠.


우리를 이곳에 옮겨두고 이 집은 아주 오랫동안 골칫덩이였다고 해요.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루앙(rouen) 근처의 작은 별장이었는데, Bruno 씨의 두 딸들이 모두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살림을 차린 덕분에 이 집은 누구의 것도 아닌 채로 누구에게도 관리받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거죠. Bruno 씨가 세상을 떠나고, 루앙의 그 별장을 누구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아 부동산에 내놓았는데, 남겨져 있던 짐들을 정리하다가 “잡지”라고 써져 있는 박스들은 서점에 팔리게 된 거죠. 아주 헐값에. 다행히 프랑스는 오래된 잡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 나라라서, 우리의 행선지가 소각장이 아닌 서점이 되었어요. 그렇게 저는 친구들과 함께 이곳 파리의 서점 ofr로 옮겨지게 되었죠.


그 덕에 우리는, 잡지와 예술서적을 팔고 때때로는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살고 있답니다. 파리에서 가장 멋쟁이들이 놀러 온다는 이 서점에서 살게 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어요. 하지만 하루도 지루할 날이 없어요. 제 삶엔 드디어 일상이라는 것이 생겼고, 관찰할 수 있는 풍경이 생겼고, 동사들을 활용해 제 하루를 묘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오전에는 아직 지난 새벽의 숙취가 풀리지 않은 예술가들이 잠이 덜 깬 채로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들어와요. 그들은 몇몇 사진집을 들춰보고, 벽면에 전시되어있는 작품들을 보고, 오래된 사진집 몇 권을 사서 나가기도 하죠. 그들에게서 나는 매일 다른 술 냄새를 맡는 일은 즐거워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술이 있다는 걸, 그 창고에 갇혀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거죠!! 물론 술 취한 사람만 들어오는 건 아니고, 때때로는 제 옆에 쌓인 패션잡지의 표지보다 훨씬 멋진 옷차림의 사람들이 들어와요. 그들은 두리번거리면서 패션잡지를 펼쳐봐요. 때때로는 창 밖으로 번져오는 햇살을 받으면서 스스로의 사진을 찍기도 해요. 보통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이곳 ofr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라기 보단, 우리 옆의 broken arm이라는 매장에 들르기 위한 사람들이 많죠. 저도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어 짐작하건 데 그곳은 굉장히 멋진 곳인가 봐요.


이런저런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수시로 열리는 문가를 바라보고, 바람에 살랑이는 모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나의 모든 날들은 옳게도 즐거워요. 햇살만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라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 더 바라는 것이 생긴 지금이 스스로에게 염치없이 느껴지기도 해요.


물론 갇혀있던 시간에 비하면 지금은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지만, 저에겐 여전히 해소되지 아쉬움이 있어요. 그건 바로 제가 읽혀진 적이 없는 잡지라는 거예요. 제 입으로 말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아픈 부분이죠. 글을 엮은 형태로 태어나 한 번도 진지하게 읽혀진 적이 없다는 것은 참 슬퍼요. 누군가가 슬쩍 넘겨본 적은 있지만, 제가 품은 좋은 글들이 진지하게 읽힌 적이 아직은 없어요.


손이 무딘 손님에게 들려 찢기더라도, 다 읽고 나를 어딘가 구석에 쳐박아 두더라도 제가 품은 한 줄이 한 문장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울림을 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왜냐면 저는 아주 아주 사랑스러운 존재거든요. 저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납작해지고 탈수된, 가격도 매겨지지 않은 무료 월보지만 제 안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이지스(Izis)가 마지막으로 찍은 Colette의 사진, 필리프 쥘리앙의 (Philippe Julian) 삽화, 1954년도에 쓴 장 뒤비뇨(Jean Duvignaud)의 글, 클라라 말로(Clara malreaux)의 글, 체슬라브 밀로즈 (Czeslaw Milosz)의 글 까지… 저만 품고 있기엔 아쉬운, 정말 좋은 글들이 제 안에 숨겨져 있죠. 그 글들이 새롭게 읽히고, 또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랜 시간 향기로 감각하며 살았던 제가 밝기로 햇살을 맞이했을 때의 그 감각적 흥분을 제 안의 문장으로 누군가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햇살 같은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읽어준다면- 나의 한 줄이 누군가에게 내가 기다리던 햇살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요?


저는 좋은 작가를 추천하는 월보였고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 작가들은 더 훌륭한 작가가 되었어요. 지금만큼 그들이 빛나지 않았을 때도, 그들은 늘 좋은 빛을 발하는 작가 들이었겠지만 그 빛이 전달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죠. 체슬라브 밀로즈는 이미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었지만 이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알려져 있으니, 좋은 작가를 알아보고 그들의 글을 담는 저의 안목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

빛도 들지 않는 박스에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매일을 호흡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멋진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어요. 한 번도 제대로 읽힌 적이 없더라도 제가 괜찮은 존재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어요. 제가 “무언가”라는 확신도 져버린 적도 없었죠. 나를 완전히 믿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를 읽어주길 바란다는 마음이 어떤 나르시시즘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 하고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요? 제가 햇살에게 받은 그 감동을, 제가 소화한 이 좋은 글들을, 저로 매개 삼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이기심은 아니기를 바라요. 언젠가 저를 읽어주는 분이 나온다면, 이왕이면 저를 잘 읽어주는 분이라면 좋겠다는 것. 저의 무수한 많은 문장 속에서 한 문장이라도 그의 마음을 반짝거리게 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기를..


흘리듯 이야기한 적 있지만, 제 표지는 이지스(Izis)라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에요. 리투아니아 사람이었던 그는 1930년에 프랑스로 망명해 사진작가가 되었죠. 파리스매치의 포토저널리스트기도 했고 수많은 작가들과 함께 일했던 그가 꼴레뜨와 함께 작업한 지상의 낙원(Paradis terrestre)은 (어찌 보면 저의 아빠이기도 한) Guilde du livre에서 출판했어요. 지상의 낙원 책에 담긴 사진이, 바로 제 표지예요. 그가 찍은 사진을 품고 평생을 사랑하던 파리로 제가 돌아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는 감격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계속 기다릴 거예요. 저를 제대로 읽어줄 누군가를. 한눈에 내게 반하진 않아도, 계속해서 떠올라 저를 다시 잡아 올리더라도, 저를 집으로 데려가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릴 거예요. 그 집이 예쁘거나 따뜻하거나 깨끗하기를 바라진 않아요. 다시 어떤 캄캄한 세계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때의 시간은 이전의 그것과는 다를 거예요. 만약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나에게 시선을 맞추고, 나와 대화를 하고, 나를 읽어준다면, 그것은 평생의 햇살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일이겠죠. 햇살보다 따뜻한 눈길, 장미향이 깃든 공기보다 촉촉한 손길,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형성되는 어떤 공감, 그것들이 어쩌면 아직 제가 한 번도 완연하게 느껴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 감정을 이루는 것들이 아닐까요?


꽤 괜찮은 나라는 확신으로, 읽히길 기다릴 거예요. 아직은 읽히지 않았지만 괜찮아요. 시간이 필요할 뿐, 남은 시간 동안 저는 이 황홀한 햇살을 맞으며 기다리면 돼요. 내가 얼마나 근사한 존재인지 알아주고, 나를 읽어줄 누군가가 있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ps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한 것인지 헷갈리지만 손이 무척 시려져 ofr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선 에코백으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사실 이곳은 정말 좋은 책들이 괜찮은 가격에 소개되기도 하는. 세상의 가장 좋은 잡지들이 먼저 소개되기도 하는 중요한 곳이거든요.

손이 시리지 않았더라도 저는 ofr에 들어갔겠지만,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따뜻해지는 손에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서점에서 이런저런 잡지들을 둘러보고, 엽서들을 뒤져보다가, 계산대 옆에 '척'하고 놓여있는 guilde du livre를 만났습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꼴레뜨의 사진이 표지에 있어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어요. 수많은 guilde du livre 중 고르고 골라 마리 로랑생과 꼴레뜨가 표지였던 두 개를 각각 15유로에 샀습니다. 10유로일지도 모르겠네요. 정확한 가격이 기억이 안 날만큼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져 허겁지겁 집었나 봐요. 그때만 해도 사실 이 월보가 정확히 무엇에 관한 월보인지 또렷이 알기는 어려웠어요. 다만 1950년대의 잡지를 사 온다는 것에, 꼴레뜨와 마리 로랑생이 표지모델을 하던 시절의 잡지를 손에 쥐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어요.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이 엄청난 월보를 들여다보고 이 월보가 담고 있는 좋은 글들을 보면서 이 월보가 ofr에 도착하기 전의 여정을 상상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로 사라져 버렸다면 너무나 아까웠을 예쁜 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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