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읽는 언어, 혼자의 태도
마치 21세기 최고의 발견이 ‘혼자’인 것처럼 ‘혼’을 접두사로 삼은 수많은 단어들이 탄생하고 있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혼코노까지(혼자 코인 노래방) … 일상적인 단어도 행위의 주어가 ‘혼자’가 되면 돌연 각별해져 새로운 명칭을 얻는다. ‘혼ㅇ’만의 영역이 아니다. 인구 구조,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혼자’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개인주의, 1인 가구, 1인용 삶, 독거노인, 싱글라이프 심지어 최근에는 ‘혼족’과 ‘혼 라이프’까지, 우리 사회가 지금 가장 관심을 두는 타깃이자 ‘상황’은 바로 ‘혼자’다. 혼자의 언급량 증가, 혼밥, 혼술의 언급량 증가 역시 ‘혼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data_1: 혼자 언급량 변화 (10만 건당 빈도))
Surce | SOCIALmetrics™, blog , 2017.01.01 ~ 2019.08.31
(data_2: 혼자 vs 같이 연관 속성 비교 top 20)
Surce | SOCIALmetrics™, blog , 2017.01.01 ~ 2019.08.31
‘혼자’는 책임, 의무, 부담, 눈치가 없는 시간이다. 타인에 대한 책임, 관계에 대한 의무, 배려를 위한 눈치가 없는 자유의 시간. 메뉴 걱정 없는 혼밥, 주사 부담 없는 혼술, 남 눈치를 안 봐도 되는 혼행처럼 혼자는 행위의 의미를 가볍게 한다. 부담스러운 관계의 의무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혼자’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혼자가 되기를 결심하고 타인에 대한 심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혼자의 상황을 즐긴다.
하지만 지금을 ‘혼자’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관계의 가능성이 무한한 이 시대에 온전한 ‘혼자’는 가능한 일일까?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아직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클릭 하나로 그 전화번호부 몇 권만큼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그 가능성은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넘어, 10만 팔로워 100만 팔로워로 확장되며 1,000만이나 1억 명도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 기술혁신 덕에 ‘혼자’인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가능하지만, 무한한 관계의 연결에 접속을 끊기란 쉽지 않다.
혼족 열풍 속, 물리적으로 혼자인 상황은 더 빈번해졌지만 온전한 혼자의 경험은 더 희귀해졌다. 밥, 영화, 여행 등의 행위를 혼자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친구와 카톡을 하고, 인스타그램 속 인친(인스타 친구)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유튜브로 타인의 일상을 기록한 VLOG를 감상한다. 상황적으로는 혼자지만 끊임없이 연결되어있고 언제나 접속되어 있고 타인의 생활과 일상에 닿아 있다. 혼밥 하기 좋기로 소문난 식당을 가보자. 혼자 묵묵히 밥을 먹는 사람 중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켜고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콘텐츠는 ‘타인’이 추천해주거나 ‘사람들의 리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 확률이 높다. 연결과 접속 간섭과 추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금, 행위와 상황으로서의 혼자는 더는 온전치 못하다. 이제 다른 차원의 혼자를 이야기해야 할 때가 왔다.
완벽한 혼자는 없지만 좀 더 성숙한 혼자는 가능하다. ‘같이’엔 없으나 혼자에만 등장하는 속성인 ‘정신’과 ‘성장’은 상황으로서의 혼자와는 다른 맥락을 보여준다. 혼자가 화두가 된 이후, 혼밥, 혼술은 특별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잡았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어색함을 극복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서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는 ‘혼자력’을 키워간다. 경험치가 상승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제거하고 혼자력이 만렙이 된 사람들은 새로운 단계의 ‘혼자’를 원한다. 바로 ‘정신적인 혼자’다.
행위로써의 혼자가 정신적인 혼자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단계로 보인다. 혼자의 시간은 확보되었지만 고독은 확보할 수 없었다. 범람하는 연결과 관계 속에서 혼자의 가능성을 몰수당한 지금, 더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혼자이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타인과의 접속을 끊어내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너무 많은 소음과 소란, 너무 많은 타인의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세계를 만나는 시간. 내 영역에 묻어 있는 타인의 시선과 목소리를 긁어내고, 나 자신의 서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발을 들이는 시간이야말로 혼밥이나 혼술보다 더 오롯한 ‘혼자의 경험’이고, 남이 아닌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시도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혼자’의 시간이다.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라곤 검색 밖에 모르는 요즘 사색을 통해 나 자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혼자일 수 있는 ‘혼자력’을 키우는 법뿐이다. 타인이라는 검열이 없는 곳, 타자에 대한 궁금증을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돌리는 것,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물음에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시간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든 인간의 성숙을 위해서는 필수 요소이며 혼자를 지켜내기 위해서 반드시 챙겨야 할 준비물이다.
이제 ‘혼자’에 대한 담론은 물리적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태도로 확장되어야 한다. 타인과 밖을 탐색하느라 만나지 못한 나 자신과 내 세계를 들여다보려면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혼자의 시간을 대하는 제대로 된 태도가 중요하다. ‘혼자’에는 있고 ‘같이’에는 없는 ㅇㅇ히로 끝나는 부사는 우리가 추구하는 ‘혼자’의 태도가 무엇인지 시사하고 있다.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는 ‘같이’에는 없고 ‘혼자’에만 나타나는 부사이며, 이 시대에 가장 결여된 세 가지 태도 기도 하다.
(data_3: 혼자 vs 같이 연관 부사 비교 top 20)
Surce | SOCIALmetrics™, blog , 2017.01.01 ~ 2019.08.31
홀로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누릴 수 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이 세계를 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홀로 있음’의 경험이다. 타인과 함께할 때 느꼈던 의무와 책임을 자신에 대한 의무와 책임으로 전환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제대로 느끼는 것, 밖에 놓인 있는 무게중심을 내게로 가져와 남이 아닌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와 ‘타자’의 영역을 구분하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지금 이 시대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홀로 있음이 타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 아닌 나를 만나는 경험으로 진화한다면 혼자의 의미는 더 풍부해질 것이다. 능동적 태도로 보낸 홀로 있음의 시간은 우리의 내면을 보다 견고하게 단련시키고, 그 견고함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시 세계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주변을 다감하게 마주할 수 있다. 눈치가 아닌 배려, 부담이 아닌 공감을 느끼는 ‘함께’의 순간은 건강한 혼자를 통해 가능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태도로 홀로 있음을 누리기를 바란다.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위 원고는 출판n , 빅데이터로 보는 우리 시대 언어 연재물의 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