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에 가고 싶었다.
물론 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꽤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훌쩍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지 못했던 것은 그 먼 곳에 나 홀로 뚝 떨어졌을 때, 그 아득함을 즐기지 못할 소심함 때문이었을까.
단순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무엇을, 어떻게로 넘어가자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지도를 여기저기 굴려보았다. 드르륵드르륵 머릿속에서 도르래가 움직인다.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그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이거 고생 좀 하겠는걸?'이라는 생각, 서구 문명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꽤 큰 고난과 행군이 필요해 보였다. 방금까지 생생히 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던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나'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게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이 치러진다. 1번, 문득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2번, 그 욕망에 대한 실현방안을 찾는다. 3번, 실현방안이 꽤나 피곤하다는 걸 깨닫는다. 4번, 포기한다.
물론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루어진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대개 쓸데없는 것들이다. 내 인생에 하등 도움 안될 집적물들. 아무 필요도 없는 주제에 내 마음 한편에 잘만 쌓여간다. 중요한 것들은 쉽게 포기하지만 사소한 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아니, 사소한 것에 지배당하면 중요한 것을 잊기 쉬워진다.
그렇게 쓸데 없이 높이 높이 쌓여만 가는 무용의 벽을 마주한 채 살아가다 보면, 그 너머에서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들려왔던 소리, 무용의 벽을 쌓느라 듣지 못했던 소리. 왜 자기를 그렇게 쉽게 잊었냐고, 왜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
인생은 선택을 계속 강요당하는 연속적인 상태다. 물론 외면하고 유보한다고 앞으로의 선택이 줄어들진 않는다. 내가 외면한 '그것'은 반드시 다음에 다시 마주치며 그때는 마치 폭탄처럼 부풀어 오른 채 내게 안길 것이다. '넌 내게서 도망칠 수 없어.' 물론 지금 당장 선택해도 또 다른 선택이 내 앞을 기다린다. 지옥이 따로 없다.
그때 파르테논 신전에 갔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선택을 지속적으로 강요당하다 보면, 결국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을 했던 평행우주의 나에게 닿을 수 있도록 크게 외치고 싶다. 너는 어떠냐고, 나보다 행복하냐고, 역시 내가 잘못한 거냐고. 그리고 내가 아닌 너를 상상하고 질투하며 펑펑 울겠지. 내 머릿속에 꿈꾸던 모습의 나는 힘든 것 따윈 몰랐으니까. 너는 위로가 아닌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질문이 평행우주의 내게 닿는다면, 그도 참 어이없어하며 한마디 내뱉지 않을까.
"저건 지만 힘든 줄 아네."
어쩌면 이건 가장 훌륭한 위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