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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Apr 27. 2022

언젠가, 그곳에 있었을 나에게

나는 그리스에 가고 싶었다.



물론 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꽤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훌쩍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지 못했던 것은 그 먼 곳에 나 홀로 뚝 떨어졌을 때, 그 아득함을 즐기지 못할 소심함 때문이었을까.


단순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무엇을, 어떻게로 넘어가자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지도를 여기저기 굴려보았다. 드르륵드르륵 머릿속에서 도르래가 움직인다.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그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이거 고생 좀 하겠는걸?'이라는 생각, 서구 문명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꽤 큰 고난과 행군이 필요해 보였다. 방금까지 생생히 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던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나'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게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이 치러진다. 1번, 문득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2번, 그 욕망에 대한 실현방안을 찾는다. 3번, 실현방안이 꽤나 피곤하다는 걸 깨닫는다. 4번, 포기한다.


물론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루어진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대개 쓸데없는 것들이다. 내 인생에 하등 도움 안될 집적물들. 아무 필요도 없는 주제에 내 마음 한편에 잘만 쌓여간다. 중요한 것들은 쉽게 포기하지만 사소한 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아니, 사소한 것에 지배당하면 중요한 것을 잊기 쉬워진다.


그렇게 쓸데 없이 높이 높이 쌓여만 가는 무용의 벽을 마주한  살아가다 보면,   너머에서 어느  갑자기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들을  있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들려왔던 소리, 무용의 벽을 쌓느라 듣지 못했던 소리.  자기를 그렇게 쉽게 잊었냐고,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


인생은 선택을 계속 강요당하는 연속적인 상태다. 물론 외면하고 유보한다고 앞으로의 선택이 줄어들진 않는다. 내가 외면한 '그것'은 반드시 다음에 다시 마주치며 그때는 마치 폭탄처럼 부풀어 오른 채 내게 안길 것이다. '넌 내게서 도망칠 수 없어.' 물론 지금 당장 선택해도 또 다른 선택이 내 앞을 기다린다. 지옥이 따로 없다.




그때 파르테논 신전에 갔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선택을 지속적으로 강요당하다 보면, 결국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을 했던 평행우주의 나에게 닿을 수 있도록 크게 외치고 싶다. 너는 어떠냐고, 나보다 행복하냐고, 역시 내가 잘못한 거냐고. 그리고 내가 아닌 너를 상상하고 질투하며 펑펑 울겠지. 내 머릿속에 꿈꾸던 모습의 나는 힘든 것 따윈 몰랐으니까. 너는 위로가 아닌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질문이 평행우주의 내게 닿는다면, 그도 참 어이없어하며 한마디 내뱉지 않을까.

"저건 지만 힘든 줄 아네."

어쩌면 이건 가장 훌륭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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