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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Jun 12. 2022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것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특별전 : 결정적 순간

찰나의 순간, 이만큼 멋진 단어가 있을까. 시간이라는 개념은 물론 절대적인 것이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개념과 같이 어느 정도 본질적인 무언가로 여겨진다. 인간과 시간을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인 걸까. 찰나에서부터 영원까지,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한다고 느끼는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카메라는 그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무언가 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작은 프레임에 매혹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마치 진짜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카메라에 담긴 무언가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진짜를 기록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진짜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카메라가 프레임에 화편화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닌 현실의 재구성화이며 이를 통해 세계와 개인의 감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는 카메라가 내놓은 결과물(사진과 영화)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카메라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쉽게 접근하기 위해 한동안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어왔던 '거울과 후면 카메라 무엇이 진짜 내 모습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정답은 물론 거울이다. 왜곡되지 않은 평평한 거울과 명암을 깊게 안주는 조명 정도면, 좌우가 바뀐 것 말고는 남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면 카메라는 왜 진짜가 아닌가? 그것은 대부분의 후면 카메라가 광각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광각렌즈란 인간의 시야보다 넓은 화각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 일정 부분 왜곡이 들어간다. 더 넓은 공간을 좁은 프레임에 쑤셔 넣기 위해 프레임의 가운데를 지그시 눌러준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회화에서의 원근법과 같이, 카메라 또한 입체에서 평면으로 이행하면서 우리에게 공간감이 드러나도록 이미지를 새기는데 이 부분에서 광각렌즈는 넓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제공해준다. 따라서 보다 강조되거나 대비되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데 유용하다.



New York, 1947



렌즈의 특성을 통해 위와 같이 중경에 배치된 인물을 둘러싼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대비감을 낼 수 있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게 보이는 남자와 압도적으로 거대하게 느껴지는 건물들과의 대비는 일종의 비현실성을 통해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광각렌즈의 프레임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세상을 담아내지만 그 같은 왜곡을 통해서만이 해낼 수 있는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가 광각렌즈를 기본으로 채택했을까? 그건 광각렌즈가 전심초점(Deep Focus)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포커스가 나갈 일이 없고 전경과 중경 후경을 전부 분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즉 아무렇게나 찍어도 적당히 볼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준다.



반면 망원렌즈는 인간의 시야보다 좁은 화각을 담는다. 그래서 공간감보다는 평평한 인상이 강해진다. 이에 담긴 프레임에서는 거리감을 예측하기 힘들다. 쉽게 전경과 후경으로 나눠 생각하면, 전경엔 포커스가 맞추어진 주인공이, 후경은 공간이 아닌 평평한 배경만이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입체적인 느낌이 사라지는 대신 피사체의 강렬한 임팩트가 전해진다.



Jean-Paul Sartre, 1946



망원의 특성을 활용하면 위와 같이 중경에 배치된 피사체에 강렬한 집중을 더해주고 전경에 배치된 인물과 후경에 배치된 공간을 평면화시키며 아웃포커싱하게 만든다. 전경은 사르트르와의 거리감을 상실했으며 후경은 공간감을 상실한 채 평면의 그림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는 중경에 배치된 사르트르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50mm 표준 렌즈를 사랑하기로 유명한 남자였다. 인간의 시야각에 맞춘 표준렌즈는 가장 자연스러운 원근감을 자아낸다. 우리가 육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가장 비슷한 무언가를 프레임에 담아낸다. 50mm는 언제나 이 넓은 세계에서 자신만의 찰나의 순간을 찾아 헤매던 그에게 왜곡으로부터 만들어진 특수한 효과를 대신하는 그가 원하던 결정적 순간을 담아내기 위한 최선의 장치였을 것이다. 



New Mexico, 1947



카메라가 세상을 담아내는 방법에는 다양한 효과가 있지만 이를 예술적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결국 프레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하다. 전경과 중경 후경에 배치된 각각의 구도가 어떤 대비를 이루거나 서로 보강하는 사이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진 구도가 아닌 그저 존재하는 무언가를 담아내는 스냅사진이라면, 위 사진과 같은 특별한 순간을 만나긴 정말로 힘들 것이다.



어떤 완연한 흐름 속에 느껴지는 전체. 그것은 흘러가버리면 사라지고 마는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순간이다. 사진은 이로부터 예술이 된다. 이 넓디넓은 세계에서 수없이 많은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사라지는 무언가들 사이에서, 세계라는 초연한 객관성으로부터 자신만이 담아낼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그 찰나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영원을 기다릴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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