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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Nov 11. 2022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 시리즈라는 달콤한 감옥

Series by Disney

'블랙 팬서'라는 타이틀을 두 번째로 달고 나온 이 영화와 함께 MCU라는 초거대 프랜차이즈의 4번째 페이즈가 끝이 났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 팬서라는 제목을 달고 블랙 팬서가 아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페이즈 4는 무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영화 역사상 전례 없던 초거대 시리즈가 새로운 막을 여는 장이렸다만, 지금까지는 코로나 이전에 받은 열광과 사랑(그리고 엄청난 돈다발)과는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양새이다. 그러고 보니 엄청난 돈다발을 긁어모으며 영화시장을 잡아먹는 위상을 떨치던 페이즈 3가 2019년에 막을 내렸다는 게 참 기이한 우연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악독한 코로나가 마블에게 대체 무슨 위해를 끼치기라도 한 걸까? 판데믹 기간 동안 마블에게는 무언가 엄청난 비극이라도 벌어진 것인가?


먼저 페이즈 4가 이전과 객관적이고 분명하게도 달라진 것을 꼽자면 '디즈니+'를 통한 일종의 '정사 드라마'의 출현일 것이다. 이전까지의 MCU는, 그러니까 마블이 직접 명명한 '인피니티 사가'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간 스물세 편의 영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새로 시작한 MCU, 그러니까 '멀티버스 사가'는 2021년부터 2022년, 단 2년 동안 무려 일곱 개의 영화와 일곱 개의 드라마를 내놓았다. 그리고 페이즈 5가 진행되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2년 동안 여섯 개의 영화와 여섯 개의 드라마를 내놓겠다고 공표해놨다. 그렇다면 단 4년 동안 이 '멀티버스 사가'에 연결된 스물여섯 개의 무언가를 내놓겠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단순히 '인피니티 사가'가 12년 간 쌓아 올린 스물세 편의 영화와 놓고 봤을 때도 참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마블이라는 악독한 악마가 12개월 동안 서너 편의 영화를 내놓으며 상영관을 모조리 독식한다는 생각은 한편으로 밀어 두자. 물론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지만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시리즈가 대중들에게 작용하는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고, 아직 그것만으로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어쨌든 디즈니는 자신이 보유한 초거대 브랜드를 365일 내내 대중들에게 각인시켜주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된 듯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디즈니+'라는 후발 플랫폼이 선두주자였던 넷플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MCU는 그 열광적인 팬층으로부터 (특히 열성적이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팬들로부터) 예전만큼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팬들은 그 뜨거웠던 팬심과 마찬가지로 이제 MCU의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일단 누가 먼저 더 까내릴 수 있는지 덤벼드는 것이 일종의 밈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거론되는 것이 PC이지만, 사실 PC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우선 마블이 스물세 개의 영화를 통해 인피니티 사가를 구축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이 스물세 개의 영화는 '엔드게임'이라는 하나의 결말을 향해('파 프롬 홈'은 후일담으로 놓자) 달려간다는 것을 보았을 때, 12년이라는 초장기간 동안 진행되며 방영은 상영관에서 이루어지는, 한 화가 두 시간가량 되는 드라마와 같다.(그리고 마지막 화는(사실 '파 프롬 홈' 때문에 엄밀한 마지막 화는 아니지만서도) 무려 세 시간이나 한다!) 그러니 MCU를 일종의 드라마로 놓고, 드라마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드라마는 여러 파트로 세분화된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각 파트는 보통 분명하게 어떤 결론에 도달하면서 끝이 난다. 그러니 매화마다 비슷한 구성이 이어진다. 각 화마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을 해결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보통 이 사건들은 장르에 따라 매번 동일하다. 추리물이면 사건이 터지고, 의료물이면 환자가 터지며, 히어로물이면 빌런이 터진다. 따라서 드라마란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재반복의 일상이다. 몇 화 보고 있자면 질려서 꺼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드라마 내러티브에는 시선을 끝까지 끌고 가게 만들 마중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보통 전화에 걸쳐 이루어지는, 매화 하나의 사건 사건들을 해결해가며 조금씩 밝혀지는 거대한 흑막이자 비밀 같은 무언가, 말 그대로 결말에서 해결해야 하는 거대한 사건이다.


여기서 조금 더 훌륭한 내러티브를 갖춘다면, 매화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캐릭터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 것이다. 보통 이는 숨겨왔던 과거와 관계를 조금씩 조우하는 식으로 캐릭터에 당위성을 부여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1화에서 이미 만들어진 어떤 캐릭터는 마지막화에서 좀 더 관객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깊게 각인된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드라마의 내러티브는 마치 양파 같아야 한다. 매번 비슷비슷한 사건을 던져주면서 그 와중에 결말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건과 캐릭터의 비밀들을 던져줘야 한다. 똑같은 껍질을 까도 까도 똑같은게 계속 나와야 된다.


시리즈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반복과 재생산, 다음 시간에도 관객을 앉혀놓기 위한 마법은 이 두 가지뿐이다. 시리즈 또는 드라마라면 자고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저건 정체가 뭐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걸!" 그 궁금증을 해결할 때까지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앉아있어야만 한다.


최근 드라마에서 이것을 훌륭하게 해낸 것이 HBO맥스의 '피스메이커'이다. 우선 '피스메이커'는 드라마의 첫 화에서 캐릭터와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건을 던져준다. 그리고 각 화마다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건에서 파생된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며 그 와중에 각각의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빌드업해나간다. '피스메이커'는 제임스 건이라는 탁월하게 재미난 이야기꾼 덕분에, 숨겨놓은 비밀 무기를 때에 맞춰 꺼낼 줄 아는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시즌의 마지막화가 끝나고 나면 피스메이커와 비질란테라는 일종의 완성된 캐릭터들을, 더 이상 비밀 따위는 없는 전부 까발려진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또 보고 싶게 만든다. 관객에게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각인시킨 것이다.


MCU가 바라고 추구한 것, 그리고 인피니티 사가에서 해냈던 것이 지금 '피스메이커'를 짧게 정리하면서 모두 드러났다. 하지만 페이즈 4에 들어서 '인피니티 사가'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흐름이 분명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일단 그중에서 가장 큰 실패를 뽑자면 '완다비전'이라는 MCU의 공식적인 첫 번째 드라마를 탁월한 기획으로 성공시켜 놓고, 그렇게 빚어낸 기대감을 '닥터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단번에 망쳐놓은 것을 짚어야 할 것이다. '완다비전'은 아마 MCU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캐릭터의 단면에 심층적으로 접근한 예시일 것이다. 특히 '완다비전'에서 시트콤을 통해 만들어낸 일종의 액자식 구성은 지금까지 MCU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흥미로운 내러티브 구성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완다비전'은 전면적으로 캐릭터의 욕구를 극단적으로 이끌어 내도록 설정하고 끝에 다다라서는 결국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 같은 내러티브에서 완다에게 이입하지 못하는 관객이 있을까? '완다비전'을 보고 나면 완다가 나오는 다음 작품이 대체 언제 나오는 것인지 안달이 날 지경이 되고 만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리도 강력하게 완다에게 이입한 이유 중 하나가 엘리자베스 올슨이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적으로 각인시킨 완다라는 캐릭터를 마블은 어째서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그리도 허술하게 허비하고 말은 것일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완다를 허비하면서 처음으로 구체화시킨 멀티버스가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로키'의 마지막 화에서 계속 존재하는 자가 단순히 말로써 제시하는 임팩트만도 못하다. 샘 레이미라는 거장은 열심히 자신의 색깔로 영화를 단장하지만, 제작 순서 상의 문제로 내러티브조차 구체화시킬 수 없으니(샘 레이미는 완다비전을 보지도 못한 채 날림각본만으로 영화를 찍었다) 소중한 완다는 허공으로 날아가고 단번에 멀티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사라지게 만든다. 시리즈 구성에 있어 너무도 치명적인 실패로, 가장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야 할 순서에서 커다란 마중물은 어디 애먼 곳에 집어던지고 작은 돌맹이만 소중하게 품에 쥐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토르:러브 앤 썬더'는 어떠한가? 이 영화는 심지어 시리즈 같지도 않다. '인피니티 사가'의 주역이었던 토르가 나오며 이상한 신들이 잔뜩 나오고 중요한 존재라는 이터니티도 나오는데 앞서 나온 마중물들과 연결되지 않고, 뒤에 나올 마중물들과도 연관 짓고 싶지 않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대단히 훌륭한 감독이지만 이 영화는 그냥 시간 때우기, 일종의 보너스 외전의 위치 말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는 앞서 개봉한 두 영화만큼 시리즈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우선 주연배우가 급작스럽게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 구성이 전편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비롯된다. 슈리와 라몬다의 관계는 트찰라와 트차카의 관계의 역이다. 트찰라는 아버지인 트차카가 죽고 나서야 트차카를 거부하지만, 슈리는 어머니인 라몬다가 살아있을 때 거부한다. 트찰라는 아버지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지만, 슈리는 어머니가 자신을 믿은 방식대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히어로와 빌런의 관계 또한 단순한 역을 취한다. 킬몽거는 트찰라를 쓰러뜨리고 세계에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겠다 말하고, 네이머는 슈리에게 함께 세계에 분노를 표출하자고 말한다. 킬몽거는 아버지인 은조부가 살해당하면서 와칸다(트찰라)에 대한 과거의 분노가 심어졌고, 네이머는 슈리의 어머니인 라몬다를 살해하면서 와칸다(슈리)에 미래의 분노를 심는다. 


킬몽거가 주장하는 전쟁이 인종주의적 복수인 반면 네이머의 전쟁은 예방전쟁의 성격을 띠는 면도 시점적 차이에서 과거와 미래로 지향점이 정반대다. 킬몽거는 인종주의적인 색채가 좀 더 강했다. 흑인들을 위한 분노를 외치던 킬몽거와는 다르게 네이머는 남미와 아프리카의 연대가 필요하다며 시선을 피식민지 계층 전체로 확대할 것을 요구한다.


탈로칸의 설정 또한 인상 깊다. 와칸다가 아프리카의 가상의 문명이라는 설정으로 압도적인 기술력에서 힘을 자아낸다면, 탈로칸은 남아메리카의 실존한 문명이었던 마야문명에서 비롯된 파생 문명이라는 설정이며, 실재한 마야가 그랬듯 잔혹하고 원시적인 힘을 자아낸다. 물론 와칸다와는 다르게 탈로칸이 별로 강력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특히나 과도한 암부 위주의 화면 때문에 더욱 없어 보인다) 아프리카라는 대륙과 너무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와칸다보다 오히려 탈로칸이 리얼한 느낌을 가중시켜주기도 한다.


그래서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는 전편을 훌륭하게 계승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사실상 동어반복으로 보일 정도로 안전한 구성을 설정하면서 일종의 확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다만 전편과 동일하게, 심지어 더 별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최종전투시퀀스는 암울하기 그지없으며, 무엇보다 시리즈 전체로의 확장을 위한 마중물을 생각했을 때 실패한 부분이 많다. 특히 슈리라는 캐릭터는 전편의 반복을 통해 계승되었다기보다는 종결된 것처럼 느껴졌고, 리리 윌리엄스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만들어내는데 분명하게 문제가 있다.


시리즈라는 것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대단히 구성하기 힘들다. 관객에게 끝없이 기대감을 심어줘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명감독들 또한 시리즈 구성에 있어 실패하였다(물론 이런 경우에는 시리즈라는 구성을 생각하지 않다가 후속작을 만들게 되는 일이 더 많지만). 대표적으로 샘 멘데스의 '스카이폴'은 단연 시리즈의 틀을 뛰어넘은 최고의 영화 중 한편이지만, 같은 샘 멘데스의 작품인 후속작 '스펙터'는 엉망진창이다. 


디즈니는 이미 시리즈 구성에 있어 대패의 한 수를 둔 경력이 있다. 라이언 존슨은 굉장히 훌륭한 감독이지만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미국의 전설과도 같은 시리즈를 끝장내버렸다. 물론 스타워즈 또한 꾸역꾸역 디즈니의 문어발식 확장 능력으로 디즈니+에서 자리잡기는 했지만, 상영관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마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물론 지금처럼 일 년 내내 상영관을 잡아먹는 괴물로 자리하는 것은 단연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디즈니가 선한 의지를 갖고 자발적으로 조절하는 것과 강제로 문 닫게 되는 것은 분명 다른 영역일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는 일단 캐서린 뉴턴때문에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를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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