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atar : The Way of Water
영화는 하나의 숏에 의해 그 전체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모할 수 있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질이 시간적 재현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시간적 재현에 따른 서사의 형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직 서사만을 다룬다면 그것은 영화와 이야기를 구분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조차 만들지 못할 것이다. 즉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잃게 된다. 영화는 서사의 재현을 위한 도구로 변모해 왔지만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영화를 영화로서 바라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적 재현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인식하는 것이다. 애초에 영화적 장면에 대한 분석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영화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과 어긋난다.
‘아바타’는 2009년작으로 영화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낸 영화 중 한편이다. 오래된 서부극의 마스터플롯에서 비롯된 (그리고 아마도 그 이전부터 지속되었을) 왕도의 서사를 펼쳐가는 ‘아바타’는, 인간의 상상력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통해 무엇보다 경이로운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서부극이라는 헐리우드의 오래된 마스터 플롯의 성공적인 변주도 분명 지분을 차지한다. 서부극은 그 위대한 존 포드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변주를 만들어왔고, 외부에서 온 구원자와 적대자라는 캐릭터로부터 인디언과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현재에는 이 마스터 플롯뿐만 아니라 서부극이 대변하는 (또는 형성해 온) 미국의 마초이즘과 자경과 자위의 정신을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로스트 인 더스트’ 같은 훌륭한 영화들이 표현해 왔으니, 서부극은 이 글에 전부 담을 수 없을 만큼 헐리우드, 그 너머 영화라는 매체와 떼어 놓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아바타’가 나비족을 인디언으로, 제이크 설리를 외부에서 온 구세주로 설정해 성공적인 영웅담을 펼쳐냈음은 자명하다. 다만 여기에서 속편이 나온다면 무엇으로 서사를 펼쳐내야 할까? ‘성공적이었던 왕도의 방법을 반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당연하다. 새롭게 판도라의 바다라는 배경을 활용해 인간의 상상력을 전시하고 또 다른 토루크 막토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도 시리즈의 틀 안에서 반복과 변주라는 확실한 공식을 거친 성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속편을 보는 관객이라면 전편의 플롯을 무의식적으로 따올 것이다. 특히 영웅의 자식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이 된다. 우리들의 서사에 대한 경험에 의하면 영웅의 핏줄은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영웅이 될 것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바타: 물의 길’의 서사에서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점은 하나다. 이 탐욕스러운 침략자들을 물리칠 구세주는 제이크 설리의 네 명의 자식들 중 누가, 어떻게 될 것인가?
다만 ‘아바타: 물의 길’은 예상보다도 느리고 관조적으로 흘러간다. 카메라의 흐름은 서사보다 판도라의 바다, 판도라라는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놀랍게도 이 긴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흐름의 속도는 단순히 상상력의 과시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여기에는 너무도 당연하고 예상 가능한 갈등만이 전시적으로 펼쳐지는 영향이 크다. 이 갈등들은 다분히 제이크 설리의 아이들이라는 존재들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은 지켜야만 하는 존재고 적대자는 이를 무조건적으로 활용한다. 가족 간의 갈등,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며 오는 갈등, 적대자와의 갈등, 아이들은 도식적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갈등의 도화선이자 주체이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결코 이 갈등에 깊은 몰입과 긴장감을 부여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웅담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영웅의 자아찾기와 외부 적대자와의 갈등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물론 이 중에도 가장 감정적으로 강력한 시퀀스는 존재한다. 쿼리치 대령과 톨쿤 사냥꾼들의 무자비한 톨쿤 사냥이다. 톨쿤의 무저항과 인간의 탐욕은 강력한 대비를 이끌어내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평면적인 악으로 각인시킨다. 급작스럽고 격정적인 이 시퀀스가 등장하면서 이제 영화는 어느 정도 영웅담의 마중물을 펼쳐놓는 것과 같다. 관객들은 여기서 분노를 느끼고 이제 이 도식적으로 펼쳐온 갈등이 어떻게든 끝맺음을 이루지 않을까라는 바람을 들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전투에 접어든다. 다만 갈등의 해소는 매우 특이하게 진행된다. 여기서 전편의 토루크 막토와 같은 절대적인 구세주는 등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갈등의 힘, '아곤'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토루크 막토가 등장한다는 것은 마땅치 못한 결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결말을 이끌 것인가? 여기에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시선을 끄는 숏이 등장한다. 스파이더가 네이티리를 바라보는 POV 숏이다. 이 숏은 지금까지의 영화의 흐름, 그리고 관객들의 기대를 강력하게 배반한다. 스파이더가 네이티리를 바라보는 이 가상의 숏에서 네이티리는 정말 무자비한 괴물처럼 그려진다. 스파이더는 겁을 먹고 벌벌 떨며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이 숏은 평면적이고 도식적으로 진행되어온 서사에 단번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파격적인 배반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다시 이루어진다. 네이티리가 쿼리치 대령을 협박하기 위해 스파이더를 인질로 사용하며 그의 가슴을 베어낸다. 여기에서 그녀가 분노에 차 내뱉는 ‘아들은 아들로’는 지금까지 없다시피 한 아곤을 극대화시킨다. 오직 환상의 반영이었던 영화가 일종의 리얼리즘을 갖추는 무시무시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대사와 함께 영화는 단순히 탐욕스러운 인간과 자연과 함께하는 나비족이라는 선악의 갈등에서 탈피한다.
물론 네이티리가 스파이더를 탐탁지 않아 했으며, 그가 인질로 잡혀갈 때도 도울 생각이 없음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도식적인 서사의 진행에 따르자면 네이티리는 스파이더와 함께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아이의 복수를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응축되어있던 인간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다는 것은 선과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영웅담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파이더는 쿼리치 대령의 목숨을 구한다. 물론 이 행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아버지의 대체적 존재가 보여준 애정에 대한 보답인지, 아니면 스파이더가 진정한 선인이기 때문에 죽어가는 악인조차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스파이더는 네이티리의 행위와 그녀에 대한 공포에 의해 자신이 나비족과 다른 존재임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제이크 설리가 다시 반복하는 ‘아들은 아들로’는 또 다른 기대감을 남긴다. 제이크는 네이티리와 달리 인간이었던 존재다. 그의 포용력은 이 독특하게 진화해온 자아에 의해 설명될 수 있으며, 그가 다시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여지를 남긴다.
한편 이 '아들은 아들로'라는 대사가 가지는 파급력은 단순히 네이티리의 쇼트에서 만들어지는 캐릭터의 입체적 구조와 아곤의 폭발 때문만은 아니다. '아바타: 물의 길'은 폭력을 굉장히 진하고 생생하게 화편화하는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파야칸이 선장 팔을 절단하는 장면이다. 팔에는 팔, 아들에는 아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다음 전개를 위해 지속적으로 쌓여온 폭력과 증오, 복수라는 응축성이 네이티리와 함께 완전히 표출되는 셈이다. 백인침략자들이 먼저 인디언에게 그랬듯, 쿼리치 대령이 머릿가죽을 벗겨버리겠다는 엄포를 놓는 것과 나비족들이 유독 인디언소리를 내며 나아가는 것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쟁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형식으로 나아갔던 것을 상기시킨다. 이는 '아바타: 물의 길'에서의 전개뿐만 아니라 다음 시리즈로 향하는 지표가 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상당히 독특한 영화다. 만약 스파이더의 겁에 질린 POV가 제시되지 않았다면, 영화는 상당히 무미건조한 판도라 촬영기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숏의 등장과 함께 네이티리와 스파이더라는 캐릭터, 그리고 서사적 갈등이 단번에 심화된다. 그것은 단조로웠던 영화 속에서도 겹겹이 쌓아온 수많은 장치, 시간의 새김에 의한 것이다. 이 숏은 단순히 파격적인 효과로 끝나지 않는다. 작게는 ‘아바타 : 물의 길’이라는 영화에, 크게는 이후의 시리즈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판도라 전시관 같았던 영화에 ‘외면과 도피’라는 서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 강력한 쇼트는 시간적 재현이라는 영화의 힘을 강력하게 논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어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제임스 카메론은 언제나 그렇듯 또다시 훌륭한 작품을 내놓았다. ‘아바타 : 물의 길’은 영화만이 가지는 힘을 전편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