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까지와 똑같은 삶을 동일하게 다시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이 이야기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같은 맥락에서 풀어볼 수 있겠지만, 그런 진중하고 어려운 주제보다 나는 단순히 이번 여행을 돌이켜보다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넘어가 버렸다는 것을 밝힌다.
장기 여행은 끝없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마주하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과도 같다.
어디로 향할까? 숙소는? 식사는? 오늘은? 내일은? 그다음은?
무얼 하든 무언가는 포기하고, 무언가는 선택하고, 그 결과는 바로 내 눈앞에 놓인다.
그게 틀린 선택이었다면 나에 대한 원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찌릿찌릿 전달되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반면에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을 마주한다면 가슴이 두근두근 온몸이 벅차오른다.
대부분의 인생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결과들은 어느 정도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돌아오지만, 여행에서는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가 즉각적으로 성적표를 내밀어든다.
그건 여행이 가지는 일상과는 다른 시간의 특수한 성질 때문이겠지.
그래서 '너 똑같은 여행을 다시 할래?'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절대 그럴 일은 없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뢰 같은 숙소와 식당을 피하고 좀 더 효율적이고 즐거운 여행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갔던 여행지를 다시 가는 것을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보다 매력적으로 느끼나 보다.
자신의 실수를 수정하고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편하니까.
그러나 인생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돌이켜보고 수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미래라는 방향성일 뿐.
내가 지금 겪는 것, 겪었던 것들이 뜯어고쳐질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아! 그래서 니체가 모든 고통과 즐거움을 영원히 반복되는 것처럼 포용하라고 했나 보다.
나의 삶 그 모든 파편들이 하나이자 유일한 것처럼.
그렇다면 여행은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
물론 나는 이런 장기 여행이 고작 세번째지만, 특히 이번 베트남을 통해 여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만의 방식이 확고해진 것 같다.
먼저 베트남은 나의 여행사에서도 이미 어느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오래전 내가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친구와 떠났던 여행지였다.
당시에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같이 적당하고 쉬운 여행지를 찾던 중, 갑자기 뜬금없이 나의 횡포에 가까운 결정에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떠나게 되었다.
왜였을까? 그 이유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짧은 시간 동안 시엠레아프, 호찌민, 하노이 세 도시로 떠난 건 여행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던 나와 친구에게 그저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모습
TV에서 본 지금같이 으리으리한 앙코르와트 매표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동네 주차장을 나설 때처럼 작은 창구를 통해 들어가던 우리, 그런 사소한 것들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이제는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보고, 환전도 상당히 골치 아팠으며, 숙소는 도시에 도착해 호객하는 사람을 따라가며 정하던 그때.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뭐든 뚝딱 해결이 되지 않던, 이제는 다시 하라 해도 할 수 없는 비효율의 극치인 여행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는 베트남으로 다시 떠나는 건 어떤 것일까?
아마 전혀 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지금의 베트남이 그때의 베트남과 전혀 다르듯 나도 당시의 나와는 정말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친구를 끌고 당시 마이너 한 여행지였던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떠나긴 했어도, 나는 기본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내향적인 사람으로 누가 돈을 내줘도 한 달 동안 집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내 돈을 끌어다 떠날 생각만 하니 이 얼마나 극적인 변화인가?
물론 여전히 한국에 있을 땐 집 밖을 나가는 것을 극도로 지양하지만.
어쨌든 2024년의 나는 지도를 보고 가고 싶은 곳들을 뽑아놓으며 그 길과 길의 명분을 만들고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여행지를 고를 때 꼭 이런 명분 만들기를 참 좋아한다.
내 결정 장애를 헤쳐나가려면 이런 과정이 꼭 필요하다.
첫 유럽 여행으로 체코와 폴란드를 고른 것도, 마치 유럽을 전부 집어삼킨 지배자가 된 것 마냥 하루 종일 지도를 보며 그 작고 복잡한 대륙을 여기저기 갈라 나누고 내가 방문해야 할 땅을 살피며 그 정당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후보에는 아주 착실한 이베리아반도 일주와, 남독일 - 오스트리아 - 북이탈리아를 아우르는 '로마부터 신성로마제국까지' 같은 나만의 특별한 길도 보였지만
나는 그해 늦봄 우연히 만났던 사람을 이유로 이탈리아를 여행지에서 제외했고, 또 막 여름을 지나며 더위에 지쳤던 시기라 이베리아반도도 가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낸 명분은 '게르만과 슬라브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혼합되어 온 지역'이었고, 이 명분은 여행지가 될 중부 유럽에서 게르만의 독일, 오스트리아와 마자르의 헝가리, 슬로바키아를 제외하고 정확히 체코와 폴란드의 땅만을 밟을 수 있는 정당성을 보장해 줬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특이하지만 명석하고 확실한 명분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11개국 중 베트남은 유일하게 동아시아 문화권에 강력히 포함된 나라로 특히 베트남의 북쪽은 중국사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부딪쳐 온 지역이다.
삼국지에서도 중부 베트남인 다낭 호이안 지역까지 오나라의 일남군에 속한 현으로써 지배를 받았던 이야기가 전해지니, 베트남과 중국이 역사 내내 얼마나 강하게 얽혔는지 짐작이 가능하지 않은가?
반면 남베트남은 참파왕국이라는 별도의 역사를 오랫동안 지니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남아시아의 모습을 좀 더 간직해왔다.
나는 굳이 다시 호찌민과 하노이를 전부 갈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 긴 베트남을 한 달 만에 전부 돌아다니는 것도 상당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찌민을 비롯한 남베트남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메콩강 문화권을 굳이 같은 베트남이라는 이유로 북베트남과 하나의 여행길로 이어야 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후한, 삼국시대의 지도를 바라보며 호이안 이남은 전부 제외할 결심
다낭으로 들어가 하노이로 나오는 '동아시아와 강하게 얽힌 베트남'이라는 기가 막힌 여행길의 명분이 내 마음에 세워진 순간이었다.
이 길을 개척한지 정확히 1년 정도가 지난 2025년 3월 30일, 드디어 나는 오랜만에 인천에서 다낭으로 가는 밤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