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언제나 어렵지만 이번엔 더 어려워

베트남 다낭

by Atsu

30일 저녁, 인천공항에 일찍 도착해 수속을 마쳤지만 탑승까지는 무려 두 시간이나 남았다. 과자 몇 개를 집어 들고 탑승 게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무렇게나 퍼져있기로 한다.


사실 주요 도시들을 꼽아놓은 여행길은 이미 1년 전에 완성했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볼지 무엇을 할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런 건 여행하면서 여차저차 찾아가고 맞춰나가는 게 좋으니까 일일이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


다만 현지시각 새벽 1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미리 적당한 곳에 숙소를 잡아놨고, 태어나 처음으로 그랩을 불러 숙소까지 이동하면 될 것이라는 대략적인 시작은 머릿속에 세워놨다. 앞선 여행에서는 택시는 절대 타는 것이 아니라는 나만의 철칙이 있었지만, 이번엔 그랩이라는 문명과 저렴한 물가에 힘입어 어느 정도 나에게 편의를 베풀기로 한다.


앉아서 매번 하듯 e심을 구매하고 등록, 인터넷만 되면 어디 떨어져도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이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행한다는 간식. 들고 간 태블릿과 책은 비행 중에나 살짝 보고 여행 내내 쓸모없는 짐이었다.

비행은 네 시간 반의 어중간한 시간, 좌석은 생각보다 훨씬 빈 곳이 많아 이륙 후 빈 좌석으로 옮겨 누워 책을 읽거나 태블릿에 담긴 영화를 보며 갈 수 있었다.

3월 31일, 입국심사도 금방 짐도 금방 나오는 생각보다 많이 쾌적한 다낭공항이다.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심 카드를 아주 절찬리에 판매 중이었다. 베트남은 미리 e심을 살 필요가 없다.

밖으로 나와보니 매우 쾌적한 날씨, 생각했던 동남아의 공기가 느껴지질 않는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처음 그랩을 불러본다. 그런데 공항인지라 코앞까지 데리러 오진 않나 보다. 전화로는 헤매다 보니 드라이버가 나와 길 건너편에서 손짓한다. 가는 길에 드라이버가 카톡 아이디를 주면서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한다. Only cash로 모셔주겠다 한다.


다낭 공항은 시내와 거의 맞닿아 있고 늦은 시간이라 차도 없으니 금방 숙소 앞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비행기도 탄지라 빨리 숙소에 들어가 샤워하고 엎어지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체크인해보는 것이 처음인지라 숙소에 불이 다 꺼져있는 게 불안하게 느껴진다. 들어가니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자던 직원이 일어나 수속을 해준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매우 생소하고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으며 더욱 불안해진다.


여권을 주고 예약 체크를 하는데, 이 친구 뭔가 이상하다. 몇 번이고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묻는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나는 어느새 등이 축축해진다. 아, 그냥 공항에서 노숙할걸. 이 친구는 내 방을 실수로 다른 한국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보고 다른 방에 잠시 묵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방은 기가 막히게도 청소가 되어있지 않단다.

정말로 침대가 두 개 있는데 큰 침대는 누군가 쓴 흔적이 있다. 매우 충격적인 시작, 아마 여기 머물렀던 누군가는 잠깐 쉬다 밤기차라든가 밤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난 거겠지. 한국이었다면 당연히 뒤집어질 일이고 나 또한 여행 중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황당한 일이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런데 이 시간에 뭘 따로 어떻게 하겠는가? 예약도 2박짜리이고 나는 애초에 목소리를 높여가며 전부 뒤집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해 뜰 때까지 도미토리라 생각하고 버텨보자.


이렇게 된 거 샤워도 하기 싫고 얼굴만 씻는다.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만 닦는데 수건이 샴푸 향기처럼 매우 향기롭다. 고이 접어져 있어 새 수건인 줄 알았더니만, 다음 날 보니 접혀져 있던 형태가 다르다. 예의 바른 전임자가 잘 쓰고 접어놨던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얼굴을 수건으로 안 닦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방에 있는 컵라면과 콜라, 레드불같은 걸 털어먹고 비행기에서 태블릿으로 보던 영화나 마저 본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니 금방 해가 뜨고 공사 소리가 들린다.


아침 7시 정도에 출근한 다른 직원이 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고 방이 청소되면 바로 바꿔주겠다 한다. 알겠다 하고 다시 드러누워 그것만 기다리니, 레드불 탓인지 공사 소리인지 머리는 몽롱한데 정신은 바짝 서있다.

10시 정도였나, 아까 왔던 직원이 다시 들러 나를 새 방으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리뷰를 잘 부탁한다고 20만 동을 살짝 찔러준다. 1박 가격의 60프로 정도니 이 정도면 뭐 그렇게 나쁘진 않다.


방이 전과 다르게 넓고 쾌적한 게 아마 원래 예약한 방보다 좋은 방이 분명하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인지라 공사 소리도 덜 들리고 뭔가 1박만 더한다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어디서나 계속 뭘 부수고 다시 짓는다

지금와서 잠을 자는 것도 애매하고 한숨도 못 잔 것치고는 컨디션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낭에 오래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볼 기회가 지금뿐이라 생각하고 샤워만 하고 나가본다.


로비로 내려가니 아까 전 직원과 함께 다른 직원이 반겨준다. 둘 다 한국을 좋아하고 이런 해프닝도 있던지라, 맛있는 식당이나 갈만한 곳을 묻는 사이 금방 친해져 나를 오빠라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아저씨인지라 오빠라 불리니 좋았다.


직원이 추천해 준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민가와 숙소들이 섞여있는 거리다. 공사하는 곳이 많고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어 간판이나 메뉴가 종종 보이는데 한국인은 전혀 안 보인다. 거리를 한 바퀴 돌아서 지도에 표시된 곳에 도착한다.

꼼가, 가는 닭이고 꼼은 밥, 즉 닭고기 밥이다. 베트남에서 처음 먹는 식사, 두근두근해진다.


꼼가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어 헤매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그중 가장 비싼 걸 추천하며 엄치를 치켜세운다. 그래봐야 한국 돈으로 5천 원도 안 되는 가격인지라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같이 엄치를 치켜세워본다.

확실히 맛은 좋다. 밥과 샐러드, 특히 저 국물이 독특하면서도 뭔가 익숙한 맛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메인인 저 통째로 나온 닭고기가 정말로 통째로 썰려 나온 것이라 잘은 닭뼈를 매우 주의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와구와구 마음껏 씹을 수가 없어 이게 나로서는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식도락과는 거리가 먼 내게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는 걸 각인시켜준 게 매우 크다.


흡족한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엎어진다. TV에서 유튜브를 볼 수 있어 대충 아무거나 틀어놓고 손과 눈으로는 구글맵을 보며 갈만한 곳을 찾는다.


마블 마운틴이라는 곳이 계속 눈에 띈다. 오행산은 꽤 유명한 관광지라 분명 들어본 적 있지만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랩으로 가려면 10만 동정도가 들어 잘 찾아보니 미케비치에서 오행산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다. 가격은 10분의 1, 대중교통을 사랑하는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미케비치로 향한다.


한편 숙소에서 미케비치로 가는 길엔 커다란 대로가 있다. 그리고 베트남을 가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곳은 횡단보도라는 나약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처음에는 정말로 당황스럽다. 특히 그 넓은 대로와 로터리를 마주하자 나보고 여기서 그냥 치여죽으라는 것인가 묻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은 정말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저들이 알아서 피해 간다는 믿음으로 편하게 건너게 된다. 아무 데서나 건널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

길을 건너 처음 마주한 미케 비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높고 거칠었으며, 바람이 몹시 불고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들어갈 엄두조차 안 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즐기는 듯 보였다. 그냥 지켜보거나 산책하기에는 좋은 게 이 해안은 정말 정말 길다.


어쨌든 나는 감히 구글지도선생을 의심하며 버스 정류장을 하나 둘 지나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에 내가 타려는 버스번호가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류장인지조차 의심스럽게 버스 모양 표지판 딸랑 하나 있으니 이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계속 매연을 마시며 내려갔다. 그러다 오행산까지 걸어가겠다 싶어 멈춰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러면 이렇게 쾌적한 버스가 와서 나를 태우고 간다. 구선생을 의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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