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버스를 타니 미케비치를 따라 늘어진 호텔과 리조트들을 휙휙 지나 10분 만에 도착한다. 나야 대충 2만 원 선에서 저렴한 숙소를 찾아다니는 여행이었지만 특히 다낭은 엄청나게 많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기에 전체적으로 숙소의 퀄리티 대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표를 끊어야 하는지 뭔지 잘 모르겠으니 그냥 앞서 내린 서양인 두 명을 따라가본다.
사실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이 있는 만큼 어디든 한국인이 가득할 걸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한국인은 아까 밥 먹고 나왔을 때 단체로 두리안을 먹는 이들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그보다 서양인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는데, 진짜 정말 너무 많다. 약간 과장해서 여행 내내 베트남인보다 서양인을 많이 본거 같다. 베트남의 여행지를 전부 돌다 보면 제국주의 시대를 느껴볼 수 있을 정도다.
입구가 가까워지니 이런 생소한 중화풍이 나를 반겨준다. 드디어 마주한 외국의 향취에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보니 매표소 같은데 아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거 같다. 줄을 서서 표를 끊으면 다시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그런데 과연 이게 엘리베이터를 탈 정도의 높이인가 싶다. 무엇보다 앞으로 마블 마운틴, 오행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대리석 산봉우리를 오르는 일은 이 엘리베이터와 전혀 무관한 험지를 타야 한다. 아마 이 엘리베이터는 연세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관광 보장 같은 의미 정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이렇게 중화풍의 다층탑이 반겨준다.
여행길을 정할 때 나는 다낭과 호이안 일대를 북부 한자 문화권과 남부 힌두 문화권이 만나는 경계선으로 정했다. 진, 한이라는 중국이 처음으로 통일되던 시기부터 이 지역은 중국의 지배 아래 있는 최남단이었고, 이후 역사에서는 참파의 가장 강대한 지역이었으면서 북베트남이 참파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뺏긴 곳이다. 즉 이 지역부터 베트남이라는 국가를 동남아시아보다 동아시아에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탑을 지나 걷다 보면 다낭 시내와 미케 해변 넘어서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 장소는 불심이 충만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나름 평탄한 길을 따라 위로 위로 향하다 보니 동굴 입구가 하나 보인다. 사람들이 꽤 들락날락하기에 따라가봤더니 동굴 안엔 한사람 겨우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있다. 나오는 사람들이 한참이라 무리다 싶어 동굴 밖으로 나왔지만 도대체 저기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 다시 들어가 기다린다.
좁은 통로를 지나면 이렇게 천장에 구멍이 뚫린 굴이 나온다. 내 기억엔 아마 여기 이름이 천국의 무엇이었고 뒤이어 지옥의 무엇이 있다 했는데 뭐가 더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근데 막힌 것처럼 보였던 동굴 안쪽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게 보였다. 안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좁은 틈 사이를 지나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거 같다. 굳이 그걸 시도해 보았다. 높고 커다란 바위를 타고 올라가니 굴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었다. 그 앞에는 높낮이가 제멋대로인 바위들을 타고 위로 더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이미 손도 더럽혀진 거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계속 올라가 본다.
그럼 이렇게 하나의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굴을 빠져나왔던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여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아마 굴을 빠져나가는 것 말고 다른 길들도 많은 거 같다. 바람이 기분 좋다.
올라왔던 길 반대로 다른 길이 나있어 따라내려간다. 여기도 길의 초입엔 돌의 높낮이 차가 커 사람들이 많이 정체되어 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계단을 따라 내려가 조금 더 걸으니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뉘는 오행산의 중심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커다란 안내판 지도 속에 여러 포인트가 표시되어 있다. 이제 굳이 어딜 오르진 말자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계속 가면 평평한 길을 따라 석굴로 내려갈 수 있어 가본다.
규모가 꽤 있는 훌륭한 석굴사원이 나왔다. 굴의 높이와 생김새가 자연스러워 부처 상이 더욱 웅장해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저 크리스마스 장식 같은 조명이 조금 아쉽달까.
천장에서 자연스레 떨어지는 햇빛과 부처 상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에 눈을 한번 뺏기고 나니 슬슬 피곤이 몰려온다. 중심으로 돌아와 다른 사원들을 구경하러 간다.
중국 본토를 안 가봤지만, 내가 생각한 중국의 사원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건너편에 다른 봉우리들이 보이는 데 그다지 중요하진 않겠지만 오행산의 오행이 어디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여기로도 내려갈 수 있는 모양이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 엘리베이터와 다층탑이 있는 곳의 반대로 내려갔다.
보통 사람들이 여기까지만 보는 건지 유독 여기엔 사람이 많았다. 그 질감이나 모습이 나름 느낌 있는 용나무를 지나 잘 다듬어진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매표소가 하나 있고 조금 더 내려가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매표소로 나온다. 이렇게 첫 관광지를 마쳤다.
오행산은 상당히 훌륭한 관광지로 다낭에서 유일하게 갈만한 가치가 있다. 베트남에 사원은 정말 어디에나 차고 넘치게 있지만 이 정도 규모로 여러 사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특히 오행산의 지리적 문화적 위상을 생각했을 때 이곳 다낭에서 유일하게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엔 아까를 교훈 삼아 가장 가까운 정류장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날씨가 계속 흐려서인지 미케비치는 하루 종일 험하고 성나 보인다. 심지어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추웠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다 간단히 먹기로 한다.
반미는 사랑이다. 어디서 먹든 저렴하고 열의 열 전부 맛있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잔뜩 싸 들고 숙소로 돌아간다. 폭풍의 첫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