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후에에는 뭐가 있을까

베트남 후에

by Atsu

4월 7일,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몸이 개운했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오늘도 느긋하다. 대충 씻고 배낭을 챙겨놓고 어제처럼 로비에 앉아 홀로 한산한 시간을 보낸다.

새 친구랑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워 잠시 내 전속 모델로 삼아본다.

이 귀여운 털뭉치는 내 카메라에 가장 많이 담긴 인기 모델이자 베트남에서 만난 최고의 친구가 아닐까. 어제는 실패했지만 매일매일 맛있는 거 많이 얻어먹을 수 있기를!


정오가 되기 전 그랩을 불러 시내에 있는 새로운 숙소로 넘어간다. 체크인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배낭만 내려놓고 밥을 찾으러 나선다. 어제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탓에 상당히 허기진 차였다. 숙소가 있는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본다.

골목의 끝은 누군가의 집으로 이어져있고 자연스레 막혀있다. 지도를 보니 이런 좁은 골목길 몇 개를 제외하고는 블록 전체가 건물들로 빽빽하게 채워져있다. 실제로 주거하는 곳도 많겠지만 간판들만 보면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장소 같다. 외진 골목,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사람이 굳이 찾으러 들어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좁은 골목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레스토랑. 어제 점심에 푸짐하게 잘 먹은 볶음밥을 떠올리며 사실상 두 끼 연속 볶음밥을 주문한다. 베트남에서 메뉴를 고를 때 반미는 불패이며 볶음밥은 최소한을 보장해준다. 무엇보다 밥의 양이 한국과 두 배는 차이 나는 것 같다. 맛과 양이 보장되니 안 먹을 이유가 없지.


밥심을 든든하게 채웠으니 체크인하고 정비를 마친 뒤 걸으러 나가본다. 일차적인 목적지는 이 블록을 벗어나면 나오는 빈컴플라자. 맨 위층까지 한 바퀴 돌면서 다낭에서 갔던 곳과 비교를 해본다. 거의 비슷한 구조와 업체들, 다만 마트도 그렇고 확실히 다낭보다 작고 소박한 느낌이다. 계속 걸을 생각이기에 간식을 두둑하게 사는 대신 커다란 생수 페트병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여행하든 늘 이렇게 커다란 물 한 통을 들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 이 1.5리터짜리 물 한 통은 생명수이면서 여행하는 장소의 물가와 가게의 바가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계속 대로를 따라 걸으면 인출 수수료가 무료인 단골 은행이 나온다. 베트남은 방금 들린 빈컴플라자 같이 큰 곳이 아니면 아직까지 현금이 필요한 곳이 많다. 카드를 쓸 수 있어도 꽤 큰 업장이 아닌 이상 카드 수수료를 따로 받기 때문에 식사는 거의 현금 지불이다. 숙소도 앱으로 예약하더라도 현장 결제인 곳은 현금으로 지불하는 일이 잦으니, 카드에 환전해둔 금액과 현금으로 뽑아놓은 금액 간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다.


일단 현금이 곧 바닥날 거 같으니 조금 뽑아둔다. 사실 내가 여행을 출발할 때 환율이 최고점이었고 여행을 하면서 나날이 환율이 떨어지는 걸 보니 미리 환전을 조금 해뒀던 것이 굉장히 배가 아팠다.

길을 따라 걷다 오래된 건물이 눈에 띄었다. 학교 같은데 문을 닫은 걸까, 철문이 굳게 입을 닫고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후에는 강이 도시 전체를 휘감은 곳이다. 흐르는 물길 속에 담긴 차분한 분위기가 왜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역사가 느껴지는 건축물들이 목적지가 코앞이라는 걸 알려준다.

오늘의 목적지, 안딘궁에 도착한다. 안딘궁을 지은 카이딘 황제는 분명 식민시대의 꼭두각시 왕이었을테지만, 서양 문명에 깊이 경도된 예술적 감각을 자랑하는 궁과 능을 남긴이다.


전형적인 서양식 궁에 동양식 장식을 섞은 이 궁전은 확실히 사랑에 빠질 만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너무나 지나친 베트남 사람들이 궁 전체를 사진 스폿으로 활용하고 있어 이 오묘한 건축물의 분위기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특히 메인 홀에서 이어지는 계단에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성들이 줄을 서서 차례차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광경이 꽤나 기괴하다.

사실 궁의 내부 장식만 놓고 보면 유럽에서 흔히 보던 것과 동일하니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다만 이런 동양식 구조물들이 합쳐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안딘궁은 오랫동안 그저 방치되었다가 복원된지 얼마 안 된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물 외부 곳곳에 허름하고 낡은 풍파가 묻어 나와 좋았다.

정원에서도 SNS에 올릴 인생샷을 건지려는 여성들로 치열하다.

정원을 지나 궁의 뒤편으로 가니 운 좋게 나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무도 안 오고 관심도 없지만 분명 여기가 궁의 정면일 것이다. 정면에서 바라본 궁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 뒤덮어 꽤나 추레한 모습이다. 홀로 거닐다 보니 영광이 있을리 만무하다만 화려한 모습으로 포장된 이곳의 역설에서 쓸쓸한 정취가 흘러나왔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그랩을 불러 돌아간다.


숙소에 돌아와 쉬다 보니 금세 또 출출해진다. 근처에서 간단히 먹을까 하다 지도에 표시된 나이트 워킹 스트리트가 뭔지 궁금해진다. 살짝 걸어야 하지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니 가본다.

거리의 초입으로 들어서자 낮에 걸어 다니던 후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밤이 되면 전부 여기 모이기로 약속이라도 하나보다. 수많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뒤섞인 이곳은 번쩍이는 불빛들과 시끄러운 음악소리로 정신이 없다.

가장 복잡한 초입을 지나 거리를 한 바퀴 돌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이 가게, 그래도 이 거리의 일부인데 가격이 충격적으로 저렴하다. 원체 술을 안 좋아하는 터라 여행 와서도 웬만하면 마시는 일이 없지만, 이 가격에는 안 마셔보는게 손해라 생맥주를 주문해본다.

술을 잘 안 마시니 술맛은 잘 모르지만, 후다 생맥주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목넘김이 좋다.

드디어 먹어보는 분보후에, 후에만의 특별 쌀국수다. 면이 흔히 쌀국수하면 생각나는 납작한 모양이 아니라 우리 잔치국수마냥 둥글고 길다. 국물이 진하고 강렬해 호불호가 없을 맛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베트남 쌀국수 포보다 오히려 다른 면 요리에 가깝다는 느낌이랄까. 훌륭한 가격과 퀄리티인지라 다른 메뉴도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홀로 처음 시켜보는 짜조인데, 이 크기가 범상치 않다. 태어나서 본 짜조 중 가장 크다. 안에 고기가 가득 들어있어, 쌀국수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 납득이 간다.


아, 이렇게 기름진 고기튀김을 입에 넣으니 얼마 안 남았던 맥주가 순식간에 비워진다.

그래서 한 잔 더 시킨다. 웬만해선 술을 입에 안 대는 내가 생맥주 두 잔을 비울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복잡해진 거리를 빠져나간다. 안개와 옅은 빗방울이 이 밤을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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