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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디렉터 김유경 Oct 14. 2022

K-떡볶이 5.0 시대

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떡볶이는 참 특이한 음식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이는 쾌감을 느끼고, 외국인에게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니까요. 최근에 교보문고를 가니 떡지순례라는 책이 있더군요. 전국 각지에 있는 135곳의 떡볶이 맛집을 소개한 책인데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이 책이 여행 카테고리에 있어야 하는지 음식 카테고리에 있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이 되더군요.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떡볶이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이어지며 새로운 떡볶이 패러다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떡볶이의 민족으로서 K-떡볶이의 변천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떡볶이 1.0 시대 - 왕의 음식이었던 간장 떡볶이

간장 떡볶이 ⓒ 중앙일보

떡볶이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1800년대 말 집필된 조리서 『시의전서』에 따르면 가래떡에 쇠고기, 숙주, 미나리, 표고버섯 등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섞어 간장 양념으로 볶은 간장 떡볶이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궁중 음식이었기 때문에 궁중떡볶이로도 불렸는데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까지도 소수 계층만 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고 하네요. 쇠고기, 버섯과 같은 귀한 식재료가 들어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죠. 심지어 떡 잡채, 떡전골로 기록돼 있는 걸 보아 간장 떡볶이는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을 겁니다.  


떡볶이 2.0 시대 - 시장에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기름떡볶이

기름 떡볶이 ⓒ 나무위키

어느 날 서울의 한 시장에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까맣고 커다란 철판에 AAA 건전지보다 조금 두꺼운 크기의 떡을 기름과 간장, 고춧가루에 오랫동안 볶습니다. 상대적으로 단단한 떡을 사용하고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적게 하고 오래 볶아서 고소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었죠. 알려진 바로는 기름떡볶이는 통인시장식과 옥인시장식이 있는데 통인시장이 기름떡볶이의 원조라고 알려지면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이 떡볶이 맛을 보러 시장에 찾아가곤 했었습니다. 집에서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고춧가루가 금세 타버려서 시장의 그 맛이 안나더군요. 시장 떡볶이의 맛은 역시 시장에서 먹는 게 제일입니다. 


떡볶이 3.0시대 - 아는 맛이 가장 무서운 맛, 고추장 떡볶이

ⓒ 유튜브 광고 고전

고추장과 설탕을 충분히 넣은 매콤 달콤하고 걸쭉한 국물에 끓이는 떡볶이. 우리가 떡볶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바로 그 매콤한 떡볶이입니다. 현대식 고추장 떡볶이의 시초는 1953년 서울 신당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가 원조로 알려져 있죠. 전골 형태의 즉석 떡볶이와 라볶이 역시 마복림 할머니가 원조인데 전국 각지로 소문이 나 주변 가게들이 너도 나도 따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 형성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학교 앞에 떡볶이 트럭이 생기고, 분식집의 대표 메뉴가 떡볶이가 되면서 떡볶이는 국민음식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불러일으킨 고추장 열풍 덕분에 해찬들은 마복림 할머니를 광고 모델로 선정했다고 하네요.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는 유행어를 남기고 할머니는 2011년에 별세하셨습니다.


떡볶이 4.0 시대 - 쾌감을 자극하는 매운맛 떡볶이

기존의 떡볶이는 고추장 베이스의 달착지근한 매운맛이었다면, 프랜차이즈형 대형 떡볶이 브랜드가 고춧가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떡볶이가 더 매워졌습니다. 프랜차이즈 떡볶이 브랜드는 재래종과 외래종 고추를 교배한 '호고추'를 주로 사용하고, 매운 조선 고춧가루를 섞어 매운맛을 조절해왔습니다. 특히 '매운맛=쾌감'이라는 트렌드가 떠오르며 너도 나도 더 원초적인 매운맛을 내기 위해 땡초나 캡사이신을 넣어 매운맛 떡볶이를 출시했는데 불닭볶음면 열풍과 맞물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위장병을 겪기도 했죠. 저도 매운맛을 좋아하는지라 얼얼해진 혀를 치즈로 눌러가며 매운 떡볶이를 홀린 듯이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떡볶이 5.0 시대 -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떡볶이

떡볶이는 빨개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 되었습니다. 로제 떡볶이, 마라 로제 떡볶이, 바질 크림 떡볶이 등 다채로운 떡볶이가 요즘 MZ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거든요. 과거에는 밀떡이나 쌀떡만 들어갔다면 요즘은 넙적 당면, 분모자, 두부면과 같은 새로운 재료들이 떡볶이를 힙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떡볶이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고 있는 이유는 푸드 트렌드와 연관을 지어볼 수 있는데요. 코로나 팬더믹과 경제 불황에 따라 마음을 위로해주는 컴포트 푸드 추구, 소유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하는 소비 패턴, 인스타그래머블한 인증샷 문화, SNS 공유를 통한 나만의 독특한 취향 어필, 가성비 대신 가심비를 따지는 소비 패턴이 떡볶이 5.0 시대의 도래를 끌어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에 앞장서 있는 브랜드는 삼첩분식으로 지난 11월에 바질크림떡볶이를 출시한 뒤 올해 4월까지 무려 4만 개나 판매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선한 메뉴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달라지는 프리미엄 패키지, 접근성이 높은 SNS 콘텐츠, 소비자의 편의와 위생을 고려한 디테일 등을 모두 만족시키며 떡볶이 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떡볶이 업계의 평균 객단가가 11,831원임에 비해 삼첩분식은 23,312원이라는 높은 객단가를 보이지만 '만족스러운 경험'을 위해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임금님 수라상은 십이첩반상, 사대부 양반집에서는 구첩반상을 내놓았다고 하죠. 삼첩분식은 1첩 (떡볶이), 2첩 (토핑), 3첩 (사이드) 메뉴로 떡볶이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2019년에 생겨 힘든 코로나 시기를 보낸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2022년도에 380호점까지 매장이 개설되었다는 걸 보면 '푸짐함'이라는 키워드가 소비자들의 헛헛한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지 않았나 여겨지네요.

떡볶이가 서민의 음식이고 추억의 음식이라는 말은 이제 옛 말입니다. 떡볶이의 변천사를 보면 소비자의 움직임과 푸드트렌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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