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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May 02.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로테르담

깔끔함, 환대

2015년 9월 12일


킨더다이크 마을


깔끔함- 로테르담 건물


로테르담의 풍경은 멋있었다. 런던은 옛 유럽식 건물에  빽빽하게 고층 건물들이 올라가 있는 분위기가 강남과 같다고 한다면 로테르담은 건물들이 다 예술 작품이었고 길도 잘 정돈되고 옆으로 마스 강도 보여서 서울의 잠실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마스강은 센 강과 비슷한 폭이었고 한강공원 같이 주변이 다른 강들과 다르게 깔끔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28'


로테르담 역에서 나오자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행이 한 달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나는 유럽의 전형적인 낮고 통일성 있는 건축물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골목길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럽의 건물과 도로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로테르담의 건축물들은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도로는 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것 같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그 양 옆으로 유럽에서 보기 힘든 사각형의 수직적 건축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로테르담에선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이 생활화되어있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반드시 빨갛게 표시된 자전거 도로가 존재했고 신호등은 자전거용이 따로 존재했다.


색감이 돋보이는 로테르담의 건물
로테르담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건물
로테르담의 건물. 마스 강


로테르담의 건물들은 모두 현대 조형물처럼 색, 형태, 구조와 같은 미적 요소들을 건물이라는 실용적 용도에 접목시켰다. 이런 작품들이 모여서 유럽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로테르담의 독특함이 만들어졌다. 도저히 유럽이라고 믿기 힘든 로테르담의 건축물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테르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에 의해 모든 도시가 무너졌고 이것을 계기로 로테르담은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로테르담의 현대적이고 깔끔한 모습은 오히려 도가 지나치다고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그 후 나는 로테르담의 유명한 풍차 마을인 킨더다이크에 들렀다. 이국적이었던 로테르담에서 벗어나 킨더다이크에 오니 드디어 네덜란드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가르 지르는 운하를 따라서 서있는 풍차들의 모습이 내가 상상했었던 네덜란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만에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안내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풍차 마을에 왔다는 흥분 때문에 자전거를 빌린 1시간 동안은 신나게 달렸다.


나중에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풍차 마을은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진 속으로 보던 네덜란드는 로테르담도 암스테르담도 아닌 킨더다이크에만 존재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네덜란드에는 풍차 마을뿐만 아니라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그리고 내가 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도시들이 들어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네덜란드의 이미지는 네덜란드의 조그마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로테르담의 깔끔함 역시 네덜란드의 한 모습이었다.


풍차. 킨더다이크 마을



2015년 9월 13일


로테르담 사랑의 교회


환대- 로테르담 사랑의교회


나는 나오면서 집사님 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호스텔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여기까지 걸어왔냐고 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청년 한분께 부탁해서 같이 태워 달라고 하셨다. 마침 오늘 청년부끼리 저녁을 같이 먹는데 같이 오겠냐는 초대를 받았다. 뜻 밖의 초대에 나는 정말 좋아서 그러겠다고 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29'                                           


여행 도중에도 주일 성수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행 일정을 짤 때 한인교회가 있는 도시를 주일에 넣기 위해 많이 고심했다. 유럽은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아일랜드, 영국 외에는 영어권 국가가 아니었고 예배는 한국어로 드리는 것이 더 은혜가 될 거라는 생각하에 한인교회를 일정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한인교회에 가야 되는 다른 이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건 먹을거리였다.


배낭여행자에게 유럽여행에서 제일 부담스러운 것은 경비이다. 유럽은 여행하기에 편리하고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나는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을 왔기 때문에 하루하루 가계부를 적으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그중에 식비를 아끼면서 예산을 관리했다. 조식은 항상 호스텔에서 챙겨 먹고 외식보다는 마트에 들러서 빵이나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제품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일은 항상 한인교회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항구 주변의 건물들
마르크트할
펜슬 하우스와 큐브 하우스


로테르담 사랑의 교회에서 은혜로운 찬양을 마치고 어느 집사님의 인도로 나는 청년들과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 유럽은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오는 곳이기 때문에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청년들 중 대부분이 유학생이다. 나는 한 청년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송별회를 하게 되었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오랫동안 타지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청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저녁 식사에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지라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다. 청년들과 함께 교회 근처 마트에 들러서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구입한 후 차를 타고 델프트에 있는 청년부 임원 중 한 분의 집으로 이동했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다.


인원에 맞게 의자를 준비하고 식탁에 식기구와 버너를 올려놓았다. 불판에 열이 달아오르자 고기를 올리고 후추와 소금으로 알맞게 간을 한 후 적당히 노릇해질 때까지 익히면 고기에서 지글지글 기름이 올라왔다. 밥, 쌈장, 마늘, 김치, 상추까지 삼겹살을 먹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손바닥 위에 상추를 놓고 그 위에 삼겹살과 쌈장을 올리고 밥과 함께 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그 맛은 가히 환상이었다. 그들은 유학생이었고 나는 여행자이었기 때문에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들에게 받은 환대 때문일까 그때 먹은 삼겹살의 맛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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