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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May 04.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암스테르담

불평, 융통성, 집중

2015년 9월 14일


담 광장의 왕궁


불평- 안네 프랑크의 집


비를 피하기 위해 담 광장의 왕궁 계단에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니까 꿈쩍없이 갇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참을 보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겪어봐서 알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싫었다.
나는 그냥 멍하니 앉아 광장을 바라보며 뛰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유럽 100일 여행 中 D-30'                               


 서안 해양성 기후의 날씨는 너무 못됐다.


이 곳의 날씨가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많이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런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 오는 날씨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비가 오니 일정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암스테르담은 날씨가 흐린 데다가 먹을거리도 없었다. 나는 감자튀김을 사 들고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배가 차지 않았다. 감자튀김을 보니까 더욱더 런던이 떠올랐다.


최대한 실내에 있기 위해 치즈 박물관, 튤립 박물관, 서교회, 서점 등을 가봤지만 나의 흥미를 끌만한 것은 없었다. 날씨는 개이는 듯해서 밖에 나왔다가도 다시 비가 쏟아져서 실내로 들어갔다가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도 햇빛은 나올 기미가 안 보였고 나의 몸은 축 쳐졌다. 암스테르담을 신나게 달리는 것은 오로지 자전거족들 뿐이었다. 햇빛을 안 받으니까 춥고 우울해져 갔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담 광장의 국립 기념비
담 광장과 신교회
비를 피해 찾은 서교회


밖에 나와 있는데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담 광장에 있는 왕궁 계단으로 가서 비를 피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담 광장에 있는 관광객들은 비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담 광장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 때문에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처한 환경을 원망했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안네 프랑크의 집을 예약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없었다.


불평하고 있는 나에게 안네는 너의 환경이 나보다 훨씬 낫다고 말해줬다.


안네 프랑크의 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안네의 가족들이 숨어 지냈던 집이다. 그녀와 가족들은 유태인이 었기 때문에 절대 바깥으로 나올 수 없었고 공장 건물 위층에 숨어 살았다. 그녀와 가족들의 은둔생활 속에서 안네는 자신의 감정을 일기에 담아내었다. 일기는 자신의 사소한 행동, 생각, 소망을 자신의 눈으로 반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기는 어느 글보다도 생생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네 프랑크의 집 곳곳에는 안네의 일기 글귀들이 적혀있었다. 깜깜한 다락방의 조그만 창틈에 새어 나오는 햇빛을 보며 바깥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암담한 현실이었고 비참한 일이었다. 순간 나는 불평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안네에게 미안해졌다. 날씨가 어떠하든 간에 나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평생 한번 올지 모르는 암스테르담 땅을 밟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기운을 내었다. 감사해야 되는데 감사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암스테르담 여행을 다시 이어나갔다.


운하 너머로 보이는 안네프랑크의 집



2015년 9월 15일


운하를 따라 줄 서 있는 암스테르담의 건물들


융통성- 폰델 공원


폰델 공원이 바로 옆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가게 되었다. 공원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나는 다리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나는 많이 경험해서 비가 금방 그칠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비가 쏟아진 후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고 해가 떴다. 갑자기 변한 날씨 상황이지만 이제는 당연하다시피 생각하면서 나는 이 좋은 날씨가 또 갑자기 변할 테니까 맑은 동안 공원을 빨리 감상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안 봐도 척이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31'                                      


사람마다 여행을 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각자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르고 성격,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여행 방식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계획성 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멀리 해외여행을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의 특성상 계획대로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 중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데 그중 하나가 날씨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일정은 국립 박물관, 시립 미술관, 폰델 공원, 반 고흐 미술관이었다. 내가 여행 초기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정을 바쁘게 다니면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박물관, 미술관을 많이 보는 것보다 제대로 보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과 공원은 맑은 날씨에 자연을 느끼며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일정을 반 고흐 미술관, 시립 미술관으로 바꿔 미술관을 2개로 줄이고 날씨가 맑을 때 폰델 공원을 가기로 했다.


반 고흐 미술관 앞 조형물


폰델 공원에 가는 때를 맞추기 위해서 나는 변덕스러운 날씨의 특성을 역으로 생각했다. 이 곳의 날씨는 비가 자주 오지만 동시에 짧게 짧게 비가 그치는 순간도 생긴다. 즉 비가 쏟아지고 난 후 그치는 순간에는 야외에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런던에 있었을 때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비가 올지 안 올지 예측하는 방법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구름을 확인하라고 알려줬다. 까만 먹구름 뒤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저 멀리 다시 먹구름이 보였다. 바람의 속도를 보아하니 대충 폰델 공원을 방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됨 직했다.


폰델 공원 입구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10분간을 다리 밑에서 기다리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날씨가 개이기 시작했다. 햇살이 들어오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졌다. 계산은 정확했고 나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폰델 공원은 영국식 공원의 푸른 잔디밭 사이로 운하가 흘렀다.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고 운하에는 오리들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공원의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서 보는 즐거움도 더해주었다. 공원의 큰길을 따라 자전거들이 지나다니고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애완견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잔디밭에 누울 수는 없었지만 공원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공원에 있는 동안은 날씨에 대한 걱정을 잊고 마음껏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날씨에 대한 생각을 바꾼 덕에 나는 더 좋은 시기에 공원을 찾아올 수 있었고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호수. 폰델 공원
조각상. 폰델 공원
공원에 산책 나온 암스테르담 사람들



2015년 9월 16일


국립 박물관 내 영광의 홀


집중- 암스테르담 가이드


내가 지도를 잘 안 보고 인도를 하니까 암스테르담 가이드 아니냐고 장난식으로 말씀하셨다. 아마도 내가 많이 걸어 다니고 도시의 특징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다니니까 내가 한 번 갔던 곳에 대해서는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방위만 잡으면 길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32'                                                                     


해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전날 아침 한국 사람들과 만난 계기로 저녁식사도 같이 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중 누나 한 분이 다음날 딱히 일정이 없다고 하셔서 오후에 함께 동행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국립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는 약속 장소인 꽃시장으로 이동했다. 꽃시장에 도착한 후 얼마 안 있어 나는 동행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꽃시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꽃시장은 원예 식물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팔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씨앗들이 있었고 이런 것도 작물이 가능할까 싶은 식물들도 눈에 띄었다. 이렇게 꽃시장을 구경하다가 다른 동행분에게 연락이 왔다. 마침 배도 고프고 시간도 되어 꽃시장 내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나눴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또 다른 시장인 알베르트 코이프 시장을 추천해줬고 그렇게 우리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꽃 시장


숙소에서 만났던 동행 누나와 나는 암스테르담을 여행하고 난 후였지만 방금 만난 동행 분은 이제 막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셨기 때문에 나는 알베르트 코이프 시장에 가기 전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I amsterdam으로 이끌었다. 역시 비가 와도 I amsterdam 앞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우리는 빗 속에서 힘들게 사진 촬영을 한 후 다시 원래 목적지인 알베르트 코이프 시장으로 이동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기 때문에 이동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동행분들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지체한 탓이었을까 우리가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게 아쉬워서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상점들을 구경하며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했다.


비바람. I amsterdam
알베르트 코이프 시장


숙소로 돌아갈 때도 동행들을 이끄는 건 나의 몫이었다. 동행 누나는 나에게 지도도 잘 안 보면서 인도를 잘 한다면서 암스테르담 가이드가 아니냐고 장난식으로 이야기하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정말로 가이드가 된 것 같았다. 나도 암스테르담을 처음 여행 온 것이지만 그들을 이렇게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지난 이틀 동안 암스테르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이란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짧고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나에게 이틀은 암스테르담을 관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여행을 하면서 도시의 여러 가지 것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관찰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에 대한 감각도 생기고 한 번 봤던 것들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이게 나의 능력이 아니라 집중이라고 생각한다. 집중의 뜻은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고 도시를 잘 관찰할 수 있었다. 더욱더 감사한 것은 이렇게 관찰하는 습관 때문에 각 도시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운하 크루즈 선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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