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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May 09.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뮌헨

참을성, 자화상, 축제

2015년 9월 20일


옥토버페스트 퍼레이드


참을성- 맥주 텐트


행사장이 너무 넓어서 이리저리 길을 헤매다가 자리가 있는 맥주 텐트를 발견했다. 원래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자리가 비어있어서 우리는 거기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서 시키려는데 웨이터가 오지를 않았다. 동행은 팁 때문에 함부로 웨이터를 부르지 말고 기다리는 게 났다고 했지만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까 나는 화가 나서 직접 가서 주문 좀 받아달라고 했다. 웨이터가 약간 당황해하니까 또 내가 미안해졌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36'                                       


뮌헨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옥토버페스트로 인해서 전 세계에서 뮌헨으로 몰려왔다. 나도 축제 기간에 맞춰서 뮌헨에 들렀으니 예외는 아니었다. 길거리에는 독일 전통 복장인 레더호젠과 드린딜을 입은 독일 형, 누나들이 많이 보였다. 복장까지 갖춰서 축제에 참여하는 걸 보니 단순한 맥주 축제가 아닌 게 확실했다. 뮌헨의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옥토버페스트는 동행이 있는 게 편하다는 유학생 누나의 말을 따라 같이 예배를 드렸던 여행자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은 뮌헨의 테레지엔비제 공원에 위치했다. 옥토버페스트가 유명한 맥주 축제라서 맥주 텐트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커다란 놀이 공원이 행사장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놀이기구에서 들려오는 음악들과 사람들의 함성 소리에 흥분됐지만 수많은 인파로 인해 움직이는 게 힘들었다. 우린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빠져나오며 재밌어 보이는 놀이기구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Alex Airport라는 회전그네를 발견했다. 나는 여행 와서 놀이기구를 탈 줄 꿈에도 몰랐다.


옥토버페스트 퍼레이드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Alex Airport.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놀이기구를 탄 후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 맥주 텐트를 찾아다녔다. 크리스천이라 알코올음료는 하지 못하지만 옥토버페스트 행사장까지 왔는데 맥주를 안 마시고 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동행 분과 무알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맥주 텐트 내에 자리를 잡으니 잠시 후 드린딜을 입은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나는 맥주잔이 큰데 나눠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어봤다. 웨이터는 맥주잔을 2개 갖다 준다고 했고 주 요리는 무엇으로 주문할 것인지 물어봤다. 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우린 훈제 오리를 먹기로 하고 요리를 주문하기 위해 웨이터를 기다렸다. 10분, 15분, 20분... 사람이 많아서 그랬을까, 웨이터는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주문을 받을 생각이 있는 걸까? 내가 직접 주문을 하기 위해 일어서려는 순간 동행분께서 나를 말렸다. 여기에서는 각 테이블마다 웨이터가 정해져 있으니 전에 왔었던 웨이터가 오기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구 쪽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웨이터들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입구 쪽으로 가서 많은 웨이터 중 한 분에게 한참 기다렸는데 주문을 언제 받을 거냐고 물어봤다. 내가 불쑥 찾아와 이야기를 하니 웨이터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참고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으면 됐는데 나의 성급함 때문에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화만 낸 꼴이었다.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왔는데 원래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던 웨이터가 왔다. 이미 주문을 했다고 하니까 그 웨이터도 당황하고 나도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유럽에서의 식당문화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테이블의 호출벨만 누르면 식당 종업원이 달려오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웨이터마다 자신의 담당 구역이 있었고 다른 구역의 주문을 받을 경우에는 서로에 대한 실례가 된다. 나의 참을성 없는 행동 때문에 웨이터들 간의 혼선이 생기고 서로 얼굴 붉히는 일만 발생했다. 유럽에 왔으면 유럽 문화에 따라야 하는데 조금 더 참지 못한 나의 모습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2015년 9월 21일


비눗 방울. 영국 정원


자화상- 크리스, 제이미


숙소에서 쉬다가 미국인 커플 크리스와 제이미가 들어왔다. 오늘은 여행 일정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의 분단 문제로 이야기가 넘어가면서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크리스와 제이미는 아직 5달 여행 중이고 직장을 그만두고 온 슬픈 사연들이 있었다. 크리스는 맥주를 같이 마시자면서 나를 위해 무알콜을 사다 주어서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크리스는 내 초상화를 그려준다면서 연필을 찾았다. 10분이면 된다더니 쓱싹쓱싹 그렸다. 못 그렸다고는 자기가 말하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만난 지 2일밖에 안됐는데 그들은 떠난다고 한다. 여행자는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오랜만에 이야기를 터놓은 좋은 친구 같은 사람들이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37'                                            


What's your name?


전날 크리스가 처음 만나자마자 한 말이었다. 내가 묵은 호스텔 기숙사는 4인실이었다. 나는 2층 침대 아래에서 일정을 마치고 푹 쉬는 도중이었다. 문이 열리더니 외국인 커플 한쌍이 들어왔다. 크리스와 제이미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온 커플 여행자였다.  지난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호스텔에서 외국인을 많이 만났었기 때문에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단히 이름과 국적 소개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크리스는 나에게 정말 관심이 많았었다.


그는 영어로 발음하기 힘든 내 이름을 발음하면서 나의 여행에 대해서 물어봤다. 여행을 하면서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려니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도 영어로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단어가 영어로 생각이 안 나 말이 막히는데 그때 당시에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져서 자주 더듬거렸다. 이렇게 말문을 흐리고 있을 때 그는 조용히 내가 다음 단어를 꺼낼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영어가 모국어이고 마음만 먹으면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뭔가 더 알려주려고 나섰을 텐데... 그게 아니다.


크리스는 진정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는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한국 노래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갑작스럽게 요청을 받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가요를 즐겨 듣지도 않고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군 복무 중에 봤었던 지드래곤의 콘서트 영상을 보여줬다. 크리스와 제이미는 영상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내가 보여준 동영상 하나로 지드래곤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다시 두 커플을 만났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크리스는 대뜸 나에게 맥주를 마실 수 있냐고 물어봤다. 무알콜 맥주를 부탁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크리스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크리스가 나가 있는 동안 나는 제이미와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제이미는 나에게 한국의 분단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짧은 영어로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말을 멈췄지만 제이미는 충분히 나에게 공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크리스와 제이미 커플은 5달 일정으로 여행을 왔고 이제 절반을 마쳤다고 했다. 그들의 여행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둘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서로를 위해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여행을 위해서 시간과 돈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투자해야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결심을 했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끝나갈 무렵 크리스는 나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갔다.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연필 하나로 나와 비슷하게 생긴 그림을 완성시켰다. 실물보다 못나게 그렸지만 상관없다. 그의 그림실력이 어떠하든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크리스가 그려준 자화상
레지덴츠 앞
구 시청사



2015년 9월 22일


호프브로이하우스 내부


축제- 옥토버페스트


옥토버페스트는 뮌헨을 뮌헨 답게 만들어주는 축제였다. 뮌헨에 있는 동안 에든버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축제기간에 있었고 항상 활기찬 분위기였을까.

축제 때에만 전통복장을 입고 사람들이 맥주를 즐기며 춤을 추고 활기를 띠어도 상관없다. 나에게는 옥토버페스트가 뮌헨으로 기억에 남을 테니까^^       

'유럽 100일 여행 中 D-38'                                          


개개인이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듯이 개인이 모여 형성된 국가와 도시도 각각의특색을 지니고 있다.


유럽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유럽의 국가와 도시들이 무엇이 다른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각 도시의 특징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여행자들은 여행에 재미를 느끼고 도시를 이동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간다.


옥토버페스트의 하트 렙쿠헨


옥토버페스트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 세계에서 유명한 축제이다. 그리고 이런 축제에는 전통 의상과 같은 전통문화가 빠질 수 없다. 축제가 전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을 축제에 접목시킴으로써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에 들렀던 에든버러의 프린지 페스티벌이 그러했고 지금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도 마찬가지다. 킬트, 레더호젠, 드린딜 같은 전통 의상은 그 국가,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이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화를 전달할 수 있다.


나는 축제기간 동안 뮌헨의 전통을 보고 왔기 때문에 평상시 뮌헨의 모습이 어떠한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나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되냐이다. 나는 어느 때보다 강렬한 뮌헨을 체험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뮌헨은 활발하고 씩씩하며 경쾌한 맥주잔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가끔은 술을 조절하지 못해서 주무시는 분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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