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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May 12.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바르셀로나(Ⅱ)

급변, 바르샤

2015년 9월 25일      


몬주익 언덕 뒤로 보이는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급변-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고딕 미술 전까지 중세의 카탈루냐 미술은 이집트 예술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도 기독교가 전파된 후이긴 했지만 벽화라든가 조각들이 이집트 미술같이 평면적이고 역동감이 없었다. 고딕 시대로 들어가니까 그림들이 입체감이 들어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해 보이고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아 역동성이 있는 다른 지역보단 역시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는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르네상스로 넘어가면서 카탈루냐 미술들이 우리가 알던 중세의 미술작품들로 탈 바뀜 했다. 제단화 속의 원근감이라던가 조각들이 좀 더 다양한 자세로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짧은 기간 안에 미술 양식이 많이 바뀌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41'


유럽의 국가들은 각기 다르지만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가톨릭을 기반으로 역사가 흘러왔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부터 이어진 가톨릭의 영향 하에 유럽은 성장할 수 있었고 건물들도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과 같은 신앙심을 표현할 수 있는 건축 양식이 발전했다. 미술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근법이 발달한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의 작품들은 대부분 종교화, 제단화 같은 성당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는 그림이 지배적이었고 르네상스 이후에도 종교화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꾸준하게 그 수를 유지했다.


이렇게 같은 종교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스페인의 건물들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건축 양식뿐만이 아니었다.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을 돌아보며 느낀 것은 스페인 미술의 흐름이 유럽의 미술사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밝은 느낌에 제자들이 활동감 있게 움직여야 할 미술 작품들이 죄다 이집트 미술처럼 그려져 있었다. 입체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신체 부위 중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골라내서 그려내고 색도 전반적으로 밝은 색감보다는 어두운 계열이 많이 쓰였다. 한 가지 더 놀라웠던 것은 이런 특징들이 르네상스 시대 이후엔 자취를 감추고 유럽 미술사의 흐름을 다시 따른 다는 점이었다. 아니 도대체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미술 양식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일까?


8세기 스페인 전역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대부분의 국토를 점령당한다. 이슬람의 영향권 하에 들어오게 된 스페인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건축과 미술에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종교화와 제단화가 위주가 되어야 할 미술 작품들은 모두 유럽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멈춰있었다. 그러다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때 가톨릭교도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도들을 스페인 영토에서 몰아냈고 동시에 스페인의 미술도 유럽의 르네상스를 따라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스페인은 이슬람의 흔적과 가톨릭의 영향을 모두 찾을 수 있는 무데하르 양식이 지배적이다. 전체적인 기독교 건축에 이슬람풍 장식을 가미한 무데하르 양식 덕분에 스페인은 유럽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이 현재 많은 여행자들을 스페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의 야경



2015년 9월 26일


카탈루냐 음악당


- 캄프 누


내 옆에는 페루 아줌마가 앉아 있었는데 정말 축구를 좋아하신다. 옆에 있던 나도 같이 신나서 응원도 같이 했다. 옆에는 7살 아이가 있었는데 바르샤! 하고 응원하는 게 정말 귀여웠다 ㅎㅎ

'유럽 100일 여행 中 D-42'


오늘은 FC 바르셀로나와 라스팔마스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관광지 어디를 가도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역시 등판에는 메시의 이름이 제일 많이 보였다. 나도 바르샤를 응원하기 위해 빨강, 파랑 체크무늬 남방으로 맞춰 입고 여행을 했다.


경기장에 들어와 보이는 건 관중석에 크게 쓰여있는 FC BARCELONA라는 글자였다. 나는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 사온 감자칩과 콜라를 마시며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내 옆 자리에는 페루에서 온 아줌마 그리고 그 옆은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와 아이의 아버지가 자리에 앉았다. 아주머니에게 아들이 정말 귀엽다고 하니까 아들이 아니라고 하셨다. 음... 근데 왜 아이 아버지랑 같이 온 거지?... 더 이상의 상상은 안 하기로 했다.


선수들이 입장하자 시끄러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경기장 안으로 집중되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나는 경기장 위쪽에 멀지 감지 앉아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소리로 선수가 누구인지 파악했다. 역시 바르샤 팬층은 메시가 장악하고 있었다. 메시가 공을 잡으면 사람들이 메시의 이름을 외쳤기 때문에 그를 찾는 건 누워서 떡먹기다. 경기를 시작한 지 10여분쯤 흘렀을까 메시가 부상을 당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관중들은 모두 야유를 하고 일부는 메시의 이름을 불렀다. 메시를 보려고 왔던 나도 기운이 빠졌다.


짝짝짝짝짝 짝짝짝짝 바르샤!!!


그래도 남은 경기는 이어졌다. 관중석의 대다수가 박수를 치며 바르샤를 응원하고 이에 질세라 나도 같이 박수를 치며 바르샤를 응원했다. 옆에 앉아있던 페루 아줌마는 아이에게 바르샤 응원구호를 가르쳐 주며 따라 해보라고 했다. 아이는 부끄러운지 조그만 소리로 바르샤라고 말했다. 아이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나도 아이가 바르샤라고 속삭일 때 큰 소리로 바르샤라고 외쳤다.


태양은 뜨거워지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경기장에 메시는 없었지만 나도 어느샌가 페루 아줌마를 따라서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경기장 위쪽 구석에서 노란 옷을 입은 무리들은 끝까지 라스 팔마스를 응원했지만 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아레즈가 두 골을 넣은 후론 이미 바르샤 쪽으로 승세가 기울었고 최종적으로 승리의 깃발은 바르샤가 차지했다.


캄프 누 경기 시작 전
외롭게 응원하는 라스팔마스 팬들


그날 저녁 나는 몬주익 분수쇼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여러 명의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노부부와 이야기를 하다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온 여행자가 같이 대화에 참여했고 곧이어 중국 베이징에서 온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몬주익 분수쇼 시작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즈음 영국 런던에서 온 자매 여행자도 우리의 대화에 끼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모두가 바르샤의 경기를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짝짝짝짝짝 짝짝짝짝' 박수를 치자 모두가 '바르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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