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 소매치기
2015년 10월 6일
쿠엥카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곧이어 건물에서 아이들이 나왔다.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었는데 부모님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것 같았다.
그들은 볼 키스 인사를 나누고 같이 이동했다. 아마도 점심시간 이여서 같이 밥을 먹으러 이동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모습이 좋아서 계속 지켜보았다. 쿠엥카 초등학생들에게도 캐리어처럼 끌고 다니는 가방이 인기인지 많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 교육시설도 있고 먹을 것도 구할 수 있는 상점도 있고 차도 다닐 수 있는 이 절벽마을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절벽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게 어떻게 보면 신기한 게 아니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52'
여행은 두 가지가 있다.
관광지를 밟으며 자신이 사진 속 인물이 되는 것,
그리고 주거지를 거닐며 사람 냄새를 맡는 것.
여행은 세상에 대한 자각임과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자신에게 충분한 쉼을 부여할 때 비로소 주변의 것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사소했던 것들이 특별해지고 평범한 것들에 의미가 생긴다.
가파르게 깎인 절벽 위로 집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마을 쿠엥카, 어떻게 절벽 위에 사람이 살 수 있냐고 생각했지만 그 험준한 틈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마을을 오고 가다 발견한 초등학생들과 아이들의 부모님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초등학교, 학교가 끝났는지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부모님들과 같이 이동했다. 나는 모두가 떠나고 홀로 서 있던 도중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 봤다.
어느 나라나 학교는 별반 다르지 않나 보다. 교실에는 책걸상들이 아이들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쓸쓸하게 남아있었고 복도 벽에는 아이들이 그려놓았는지 덕지덕지 칠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가방 걸이 위로 붙어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이 순간 쿠엥카의 학교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2015년 10월 7일
나는 보안대를 통과하면서 가방을 확인했는데 가방 밑에 일부러 뚫어놓은 듯한 구멍 두 개를 발견했다.
나는 갑자기 또 소름이 돋았다 ㅜㅜ 이 구멍 두 개는 펀치로 뚫어 놓은 것처럼 가방의 천에 확실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이 구멍은 범인이 내가 교대식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저지른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내 가방은 세이프 팩이라 천 안쪽에 또 안전 천이 있어서 뚫리지는 않았다.
지퍼만 안 열리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 너무했다 ㅜㅜ 스페인에 있던 마지막 순간에 이런 살 떨리는 경험을 하다니 ㅜㅜ
'유럽 100일 여행 中 D-53'
매월 첫째 주 수요일은 마드리드 왕궁 교대식이 있는 날이다. 제법 일찍 왕궁 앞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왕궁 앞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스페인 톨레도에서 온 관광객들 틈에 끼어 줄을 서게 되었다. 관광객 무리는 대부분 나이가 있으신 노장년 분들이 많으셨는데 영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몸짓, 손짓, 눈짓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도했고 그분들은 내가 왕궁에 들어가는 것을 도와줬다. 덕택에 나는 왕궁 교대식 맨 앞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왕궁 앞 알문데나 성당에서 종이 울리고 교대식이 시작되었다. 보병의 총소리와 군악대의 악기 소리가 왕궁을 울렸다. 곧이어 기병들이 왕궁 앞 광장으로 입장했다. 말의 굴레와 안장, 기병들의 투구와 갑옷 하나하나가 모두 옛 스페인 기병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때로는 한 줄로 때로는 원을 만들며 기병들은 대열을 형성했다. 교대식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카메라 가방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긴급히 카메라 가방을 확인했다. 카메라 가방이 열려있었지만 촬영을 하느라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은 없었다. 나는 황급히 카메라 가방을 앞으로 메고 소매치기 방지에 신경을 썼다.
나는 마드리드를 떠나는 공항 안에서 범인이 단순히 카메라 가방만 노리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안대를 통과하기 위해 가방을 확인하고 있을 때 오른쪽 모서리에 펀치로 찍어 놓은 듯한 작은 구멍 두 개를 발견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가방이 이중 천 구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외부 천만 뚫린 상태였다. 나는 소매치기범들의 수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방 입구 부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방 안의 내용물을 가져갈 수 있었다.
사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중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분명 지하철 한 모퉁이에 붙어 서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가방을 뒤지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지하철이 승강장에 멈추자 누군가가 내 옆을 황급히 지나갔다. 불현듯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더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가방을 확인했다. 범인은 내 핸드폰을 가져가기 위해 시도를 했지만 내가 핸드폰을 가방과 줄로 연결했었기 때문에 가져가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핸드폰에 연결된 줄은 이리저리 엉켜있었고 가방 밖으로 꺼내져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뛰면서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범인은 내 핸드폰을 훔쳐갔을 것이다.
소매치기는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때 일어난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소매치기를 당한 후다.
이제 여행을 시작한 아마추어이건 오랜 기간 여행을 해온 베테랑이건 당신이 동양인인 순간 소매치기범들의 표적이 된다. 소매치기를 예방할 수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 당할지는 알 수 없다. 항상 가방에 신경을 쓰고 돈이나 귀중품은 최대한 분산시켜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