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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May 25.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마드리드(Ⅰ)

달리, 싫증

2015년 10월 4일


수정궁. 부엔레티로 공원


달리-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달리의 작품들을 보면 착시현상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그림을 뜯어보면서 나오는 것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만드는 것을 보면 그의 그림은 놀라웠다.

나는 항상 미술관에 오면 설렌다. 미술관에 오면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작품들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나에게 찾아오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달리의 창가에 서 있는 소녀가 그러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50'                                          


그림 곳곳에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물체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고 그 자리에는 신비로운 느낌이 기억의 한 조각처럼 남아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해괴망측하다. 이것이 내가 달리의 그림을 보며 느낀 점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는 해괴망측한 달리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알던 모르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림의 내용은 정상적인 사고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었다. 달리의 작품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도중 갑자기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이 나타났다. 나는 작품 설명을 보기 전까지 「창가에 서 있는 소녀」가 달리의 작품일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하였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입구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내부


현대미술을 시대에 따라 전통미술과 구분할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차이는 작가의 창의성에서 기인한다. 현대미술의 시작은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여행 중 방문했었던 피카소 미술관의 피카소나 호안 미로 미술관의 미로도 잘 알려져 있는 현대미술 화가이다. 작품을 감상하다 발견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현대미술 작품들만이 그들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기에 따라서 현대 미술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과 달라서 많이 놀라게 된다. 그들의 초창기 작품들을 보면 유명한 그림들이 아닌 일상적인 풍경과 인물을 그려낸 전통미술 화풍이 대다수다. 야수파,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은 화풍은 그보다 훨씬 더 시간이 흐른 후 등장하게 된다. 현대 미술 작품 위주로 그림이 알려진 이유는 그것들이 그들의 특징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달리의 초창기 작품이다. 이 시기 동안 그가 탄생시킨 작품이 바로 내가 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은 마치 내가 뒤에서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사실적이었다. 소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녀의 시선, 기울어진 상체 그리고 한쪽 발끝을 세운 모습을 통해 바다를 염원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소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달리, 달리의 사실주의 그림이라서 그런지 소녀는 더 특별해 보인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달리




2015년 10월 5일


시벨레스 광장의 우체국


싫증- 만사나레스 강


드디어 내 앞에는 톨레도 다리가 보였다. 주홍색 가로등에 석조 다리를 비추니 운치가 있었다. 다리에는 조각들도 보였다.

만사나레스 강은 생각보다 좁아서 놀랐다. 리피강과 비슷한 폭이었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찾지 않는 이곳 강변에서 마드리드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강이었지만 정말 좋았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51'                                       


여행에 새로움이 없다면?


장기 여행자들은 매일매일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적응력이 없이는 여행을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주어진 상황에 편하게 안주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즐거움이 크다고 해도 여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행은 점점 일상처럼 무뎌져 간다.


장기여행에 대한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유럽여행은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장기여행이라고 부른다. 100일 여행 중 딱 절반을 넘어선 나에게 유럽은 더 이상 신기한 장소가 아니었다. 통일성 있는 건물, 높게 솟은 성당, 볼 것이 넘쳐나는 박물관, 감탄이 터져 나오는 미술관, 오래된 성과 궁전, 네모난 광장과 넘쳐나는 관광객들 그리고 그곳을 바쁘게 빠져나오는 나...   


프라도 미술관 입구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내부
마요르 광장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평상 시라면 사람들에게 웃으며 ¡Hola!라고 인사를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더 이상 내가 하는 게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자 모든 것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내 머리 속에 런던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런던에서는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돌아다녔어도 기어코 야경을 보러 갔었는데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핸드폰을 키고 구글 지도를 열어보았다. 마드리드에도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무기력해진 내 모습이 싫어서 억지로 몸을 이끌고 만사나레스 강변으로 이동했다. 관광지가 몰려있는 북쪽과 다르게 만사나레스 강변이 있는 남쪽은 마드리드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저녁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드리드 사람들은 늦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조금 더 이동하자 강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만사나레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만사나레스 강변은 현지인들이 운동을 하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했지만 오히려 고요한 분위기에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리 위에서 강변을 내려다보며 왠지 모를 기쁨이 몰려왔다. 관광객들이 찾는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톨레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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